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트별펭귄 Dec 29. 2023

잘가요 2023 (1부)

[책 리뷰] 2023 제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문학동네)


올해가 다 가기 전 <2023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어보고 싶어 연말에 부랴부랴 글을 읽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읽고 싶어지는 책들이 많아진다.


본 책은 수상작품, 작가노트, 해설 순으로 수상작 7편이 수록되어 있는 작품집이다. 나는 내 의견이 오롯이 들어간 서평을 쓰기 위해 해설을 읽는 건 나중으로 미루고 먼저 각각의 작품들과 작가노트를 읽고 글을 쓴다.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 이미상



 못해서 못하니까 좋은 거예요.
무능해서 귀한 거예요.

 저자는 이 말이 얼마나 많은 위안을 주는지 알까. 우리들이 사는 세상은 끊임없이 팽창했다. 그만큼 내가 못하는 부분이 점점 더 넓어졌다. 세계가 팽창한 만큼 더 좌절하게 되는 요즘, 작가는 못해서 좋은 것이라 이야기한다.


 우리들은 저마다 못하는 부분이 있다. 당연하다. 무능하다고 귀하지 않은 게 아니다. 무능해서 귀한 거다. 저자는 넓은 세상에서 자꾸만 못하는 것들을 발견하고 자존감을 깎아먹는 우리들에게 못해서 좋은 것이라며 다독여준다.


 

 이 이야기는 목경이 카페에서 다른 테이블의 이야기를 건너들으며 시작된다. 건너편 테이블에는 자신의 소설에는 '한방'이 없다고 비판받은 한 소설가가 계속 대화를 이어나간다. 소설에 쓰인 모든 문장이 단 '한방'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 불쌍해서 '한방'을 안친다는 그의 말에서 나는 작가의 마음을 설핏 엿보았다.


모든 자잘한 문장 하나 하나도 다 귀히 여기는 마음. 나는 저 문장에서 모든 이들은 세상 각자 맡은 자리에서 쓰임을 다 하고 있다는 작가의 소중한 마음을 느꼈다. 문장들 역시 제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이야기는 크게 융기된 산맥 없이 깊은 산 골짜기 시냇물처럼 잔잔하게 흘러간다. 중간중간 묘한 기시감과 긴장감이 울룩불룩 튀어나온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소설은 물처럼 돌 사이의 틈으로 비좁게 지나 웅덩이를 만들고 폭포를 만들며 계속 흘러갔다.


 다만 내가 신기하게 여겼던 건 한 단어의 존재감이다. '총'은 등장만으로 서사에 긴장감을 주었다. 총은 소유하고 있는 사람에게 독자들을 긴장시킬 수 있는 귄능을 부여한다.


더블 배럴 샷건. 이름조차 낯선 총기의 이름은 내 기억에 선명하게 한 획을 그었다. 사냥하는 고모, 빨간 남방과 파란 남방. 권위를 받은 어른들은 묘한 삼각 대치를 이룬다.



왜 할 수 없는 일보다 할 수 있다고 믿는 일이
 사람에게 더욱 수치심을 안겨주는 것일까


 삶이란 원래 불공평한 것이다. 목경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기도 했겠다 싶었다. 늘 모래고모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한 것은 자신인데, 인생에서 중요한 기억을 함께 공유했다는 것만으로 무경에게 그 지위를 빼앗겼으니 말이다.


 무경은 고모가 할 수 있지만 죽어도 하기 싫은 일을 대신해낸다. 무경은 삼각형의 날선 대치구도를 끊고 모래 고모가 잃은 권능을 되찾아온다. 무경과 모래고모는 그렇게 대관식의 주인공들이자 삶의 중요한 기억을 공유하는 사이가 된다. 





백 마디 말보다 이런 뇌리에 박힌 한 순간이
결국 인간을 바꾸는 거 아닐까

 한편 카페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또 다른 사람이 나에게 깊은 잔상을 남겼다. 일회용품을 절대 사용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그녀는 살아간다. 그러나 꽤 심하게 덜렁거리는 그녀는 종종 장바구니를 놓고 다녔다. 하지만 자신의 철칙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팔에 꾸역꾸역 물건들을 쌓아 다닌다.


 정말 괴짜구나 싶다가도 저 사람이 저렇게 행동하면서까지 실천하고자 하는 신념을 존경했다. 연일 뉴스에서, 우리가 평상시 느끼는 날씨 속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심각성을 느끼고 있었으면서도 정작 실천을 하지 않았던 우리들에게 그녀는 사람들의 뇌리에 박히는 길을 꿋꿋이 걸어간다.






제 꿈 꾸세요, 김멜라



 블랙코미디 같은 죽음을 맞이한 주인공은 길잡이 챔버와 다른 이들의 꿈으로 가는 길을 걷는다. 그 길에는 삶의 소중한 이들의 꿈에 어떻게 찾아가고 소식을 전할까 고민하는 고뇌의 여정이 담겨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다. 죽음 이후의 미지의 세계는 인간을 사색의 길로 이끈다. 작가는 죽음을 커피포리 형태의 마음이 연결된 꿈으로 표현한다.


죽은 자, 꿈꾸는 자, 길잡이의 마음이 연결되어 입체 삼각 커피우유와 같은 형태가 되면 우리는 꿈을 꾼다. 삼각뿔 깊은 저변에는 슬픔이 찰랑거린다.



죽기 전 공중에 떠 있던 순간은

첫 주문 시 할인 쿠폰을 쓸 수 있는
신규 가입자의 혜택 같은 것이었는지

나는 방한 부츠를 신은 두 발로
걷고 또 걸었다.


소설은 그 시대상을 담는 거울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젊은 작가분들답게 군데군데 문장들 중 현대적인 비유의 표현들이 자주 엿보인다. 


고전이나 연세가 있는 분들의 작품을 주로 봤던 내게는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현시대의 비유는 아날로그보다는 디지털적이고 청소년 시절의 사춘기와 닮았다.



이 소설의 또 다른 매력은 소설 외적인 부분이다. 폰트와 글씨 크기를 조정하여 독자로 하여금 시각적인 관전 포인트를 제공한다.


폰트의 변형으로 노래 속 '메기'의 정체를 비밀스러운 그림자 형태로 그대로 두는 느낌을 살리며, 글씨 크기 변주를 통해 사고의 끊어질 듯하다가도 이어지는 아슬아슬한 느낌을 되살린다.


제목만큼이나 다정한 소설 내용이 눈이 소보옥히 쌓이듯 우리네 마음을 포근히 덮는다. 언젠가 커피포리를 먹을때면 찰랑거리는 우유 속 가락가락 선율들이 저 멀리서 들려올 듯하다.





버섯농장, 성혜령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그만큼 흡입력이 강한 소설이었다. 문장의 호흡이 원활하게 이어지고 가독성이 좋았다. 또한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아 끝까지 놓아주지 않는 긴장감이 계속되었다.


 소설을 읽고 난 후 정말이지 아리송했다. 글을 써야하는데 뭘 써야하나 싶었다. 소설 내용을 홀로 천천히 곰씹었다. 


 문득 내가 느낀 미묘하고도 이상한 감정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운'이었다.  <버섯농장>은 우리들 삶에 갑작스레 찾아온 '불운'을 이야기한다.




 삶을 살수록 글을 읽을수록 '운'에 대해 사유하게 된다. 인간이 좌지우지할 수 없는 요소이자 때로는 잘 벼린 칼같이 냉정한 '운'은 소설을 관통하는 뼈대이다. 


 버섯농장 주인의 죽음은 운명의 심판대가 보이는 드넓은 관중석에 독자들을 앉혀 놓는다. 그의 죽음은 갑작스러웠고 그렇기에 더없이 사실적이었다. 또한 죽음 이후의 발생한 사건들 모두 운명의 수레바퀴의 바퀴자국을 그대로 밟아나가고 있었다.



 진화가 사기를 당하고 요양병원에 오게 될 것인지 또 그의 죽음을 목격한 것 그 모든 불운은 그녀의 삶을 덮는다. 마치 어느새 저만큼 자라버렸는지 모를 판자 위의 버섯처럼 말이다. 


 누구에게나 삶의 어느 시기에 불운이 찾아온다. 불운을 대하는 우리는 어떤가. 진화 같을까. 기진 같을까. 그녀의 불운은 그녀만의 것이었을까. 우리 모두 헤어나올 수 없는 삼각지대를 걷고 있는 것일까.


 답을 내릴 수 없는 답을 찾아 오늘도 삼각형의 길을 걷는다. 

 





By. 민트별펭귄.


사진 출처 : pixabay

인용 출처 : 『모래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이미상, 문학동네

               『제 꿈 꾸세요』김멜라, 문학동네

               『버섯 농장』성혜령, 문학동네


매거진의 이전글 민트별펭귄의 브런치 스토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