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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별펭귄 Feb 02. 2024

우리는 어떤 것들은 잊는다. 그것이 인생이다.

[책 리뷰]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사라마구 (해냄)


 처음에는 비유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 세계는 정말 '눈 먼 자들의 도시'였다. 작가는 극사실주의 화가가 피부의 미세한 솜털까지 표현하듯 인간들의 행동과 생각들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너무나도 세밀한 나머지 혐오감과 공포감이 밀려들었다. 순간순간 감정에 압도되어 당장 책장을 덮어버리고만 싶었다. 그리고 이내 깨닫는다. 안된다고, 나도 같은 인간으로서 끝까지 이 책을 읽어내야 한다고 마음 속 무언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책 속 문장들 몇 구절들을 필사했다. 책에 대해, 책을 통해 본 인간과 삶에 대해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다. 책에 대한 리뷰를 쓰고 싶기도 하고 쓰기 싫기도 하여 꽤 오랜 시간을 고민했다.

     

 그리고 편을 나누어 <눈 먼 자들의 도시>를 리뷰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책을 읽고 난 감상, 디스토피아를 통해 본 인간의 모든 것을 여러 편에 걸쳐 리뷰해보고자 한다.





코로나19와

흰색악마



 코로나 시대를 겪고 나서 본 <눈먼 자들의 도시>는 우리에게 한층 더 강하게 와 닿는다. 전염병, 격리, 해제, 수용소 등 책에 나오는 단어들이 익숙하다. 우리에게 눈이 머는 '흰색 악마'는 더 이상 소설 속 얘기만으로 가볍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우리를 할퀴고 지나간 코로나에 대해 생각한다. 인간의 기억은 유한하다. 벌써 까마득한 옛날 일 같이 느껴진다. 우리는 망상의 축복 덕에 지금의 삶을 살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코로나 이전의 삶은 어째서인지 더 이상 상상할 수 없다.


     

 우리는 마스크 대란을 겪었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기침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납게 흘겨보고 자리를 은연중에 피했다. 대부분 인간관계의 단절을 겪었다. 인간이 비워진 자리는 로봇과 기계가 대체하게 되었다. 코로나 종식을 선언한 이후에도 여전히 실업난, 경제 위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소설 속 도시 사람들은 결국 다시 눈을 떴다. 앞으로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까.


 눈 먼 이전의 삶을 까맣게 잊고 다시 예전의 삶을 그들의 일상을 살 수 있을까. 인간의 축복인 망각에 기대어 다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우리는 코로나를 겪으며 각종 전염병 문제가 더는 일부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우리는 세계화 시대를 살고 있다. 얼마나 더 끔찍한 질병이 우리를 찾아올지 모르는 일이다.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은연중에 스며나온 질문들이 마음속에 메아리쳐 들려온다. 정말로 눈이 한순간에 멀어 버리고 마는 바이러스가 퍼지면 어떡하나,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과연 책에 등장한 사람들과는 다르게 인간적으로 이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우리도 저들처럼 인간의 존엄성과 모든 가치를 훼손해버린 채 짐승만도 못한 삶을 살게 될 것인가.

      

씁쓸하고 현실적인 미래가 나도 모르게 그려져 마음 한 켠이 아려온다.






책을 보고 느낀

다소 엉뚱한

질문과 생각들



 책을 읽으면 자연스레 나였다면 어땠을까 상상을 하게 된다. 처음으로 문득 들었던 엉뚱한 생각은 1차 산업적 기술을 좀 배워 놔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농업, 임업, 어업 등 직접 먹을 것을 조달하고 만들어 낼 수 있는 산업이야말로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다.

      

 그렇게 나는 ‘눈이 멀면 시골로 내려가서 농사를 지어 채소라도 먹고 인근 계곡물에 몸이라도 씻으며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해야지’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작가가 이 책을 쓴 의도와는 다른 생뚱맞은 생각이라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책을 볼 때 드는 엉뚱한 생각마저 우리의 사고와 창의성을 넓혀준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논외거리를 말하자면, 세상 사람들 중 단 한 사람, 의사의 아내만이 눈을 볼 수 있었다면 그녀가 실험실로 잡혀가는 전개로 이야기가 전개되면 이야기가 어떤 방식으로 흘러갔을까 상상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의 눈을 되살리기 위해 보이는 단 한 사람인 그녀를 실험쥐 삼아 연구하는 것은 올바른 것일까. 공리주의적인 입장에서는 당연히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하는 것이 사회 전체의 쾌락을 증대시키는 정의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의사의 아내의 인권은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 그녀의 자발적인 의지가 있다 하더라도 이렇게 한 인간을 실험실 연구대상으로 삼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일까.


새로운 철학적 사유가 퐁퐁 새어나온다.


      




무능함을 통해 느낀

일상의 감사함




 한편 소설을 통해 오늘날 현대인들이 얼마나 무능했던가 새삼 깨닫는다. 갑작스레 닥친 불행한 미래에 모든 행정, 시스템, 도시 자체가 마비된다. 사람들이 그동안 미덕으로 여겨온 위생관념, 도덕, 정치적 관념, 사회조직 등은 순식간에 붕괴되어 버렸다.

      

 지금 당장 소설 같은 전염병이 퍼진다고 하면 우리 사회는 제대로 작동할까라는 질문에 ‘예’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더하면 더했지 소설 속 상황과 크게 다른 점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사실이 독자를 정말이지 비참함에 가득 차도록 만든다.

          



 우리는 모든 이들의 도움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감사함보다는 당연한 것이었다. 상수도를 통해 들어오는 따뜻한 물, 전기 배선을 통해 들어오는 전기, 내가 직접 재배하지 않고 누군가의 수고로움이 깃든 하루의 한 끼 한 끼들.

      

 그렇게 생각해보면 당신 혼자만의 힘으로 해낸 것들이 우리 일상에 얼마나 있던가. 당신은 오늘 식료품 가게 점원의 도움을 받아 오늘 하루 일용할 양식을 산다. 정부가 만들어놓은 공공재 인프라를 통해 전기와 물을 공급받는다. 기업이 정성스레 만든 제품들을 사용한다.


 작가는 극사실주의적인 디스토피아로 현대 사회의 모순과 무능함을 일깨우며 이 모든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우리들에게 각인시킨다.

      


 지금 이순간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건 관련된 모든 이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브런치 플랫폼을 관리하는 관리자 분들, 구독자 및 여러 작가님들이 관심을 가져준 덕분이다. 컴퓨터를 만들고 여러가지 시스템을 만든 기업들의 노력도, 정부의 관계부처의 노동으로 인해 끊기지 않은 수많은 공공 서비스들도 모두 감사할 따름이다.


 우리의 평온한 일상에 많은 이들의 손길이 닿아있음에 감사하며 <눈먼 자들의 도시> 1부를 마친다.







By. 민트별펭귄.


사진 출처 : pixabay

인용 출처 :『눈먼 자들의 도시』주제사라마구, 해냄

본문 출처 : 민트별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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