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사라마구 (해냄)
지난 1부에 이어 <눈먼 자들의 도시> 리뷰를 이어가고자 한다. 필사한 내용을 기반으로 이어지는 사고들을 정리해본다.
인간의 본성과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은 우리를 무너뜨린다. 그러나 그 안에서 찾은 아주 자그마한 희망들은 결국 우리를 다시금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어쩌다 나한테
이런 끔찍한 비극이
일어났을까,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왜 하필이면 나일까.
그동안 봤던 디스토피아 중 가장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소설이다.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악함이 그 안에 있었다. 이 세계에서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답게 살기를 포기하는 것과 동의어였다.
우리는 지금
냉혹하고, 잔인하고, 준엄한
장님들의 왕국에
들어와 있는거야.
수용소에서는 인간의 추잡한 온갖 행태들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결국 생존욕구에 짓밟힌다. 그 무엇보다 식욕, 배설욕, 성욕이 우선된다. 음식을 위해 성을 내다 바치고,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서로를 죽이는 상황이 반복된다.
책을 읽는 내내 그 모든 장면들이 너무도 있음직해서 공포감을 느낀다. 한편으로는 저 인간이 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사실이 온몸에 돋아난 소름으로 다가온다.
글쎄요.
나는 불행이나 악에
한계라는 게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성악설이 궁금하다면, 인간이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그들이 살아가는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는 인간의 맑은 영혼이 지나간 흔적조차 찾기 힘들다.
흔히 사람들의 마음을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의 눈을 바라보라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단 한 명을 제외한다면 – 눈을 잃었다. 눈에 담긴 영혼마저 잃었다. 인간성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아니 이미 영혼마저 잃어버리고 없는 인류의 처절한 밑바닥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나는 내 이웃의 불행을
감당할 수 있다.
우리가 가진 연민에 한계선은 과연 어디일까. 수용소에는 각각 좌측과 우측으로 난 복도가 있고 각각의 병동들이 있다. 사람들은 점차 자신의 병동에만 신경을 쓸 뿐 옆에 있는 병동에 무슨 일이 있든지간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 이웃의 불행을 감당한다. 작가는 인간이 착하다고 말하는 위선자들에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결국 남들의 고통에 고개를 돌려버리는, 심지어 무관심하기도 한 마냥 좋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의 사실적이고 추악한 본성에 잔뜩 두드려 맞은 후 기진맥진해 뻗어 있을 때 작가가 물 한 잔을 건넨다. 그럼에도 우리는 삶을 살고 있다고, 이런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의사의 아내처럼 남들을 위해 헌신하고 서로를 돌볼 줄 아는 사람들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다독인다.
우리가 이루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기적은
계속 살아가는 거에요.
기적은 허무맹랑한 헛소리가 아니다. 우리에게 기적은 일어날 수 있다. 우리는 생의 발자국을 꾹꾹 눌러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삶의 기적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인간이다.
우리가 완전히
인간답게 살 수 없다면,
적어도 완전히 동물처럼
살지는 않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합시다.
눈을 잃은 상황에서 오히려 그들의 인간상은 뚜렷하게 대비된다. 우리는 추악한 인간들 사이에서도 꿋꿋이 자기 자신을 지키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본다.
모든 세계의 민낯이 제 모습을 드러낸 지금, 그럼에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사투하는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그곳에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존엄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
어쩌면
눈먼 사람들의 세상에서만
모든 것이 진실한 모습을
드러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실은 때로는 거짓보다 무서울 때가 있다. 거짓으로 도망가버리고 싶은 순간도 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진실을 마주볼 수 있는 인간만이, 두려움을 이겨 낼 수 있는 인간만이 이 세계의 진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중략)...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소설 끝부분에 이르러 작가는 자신이 하고팠던,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를 내놓는다. 작가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 역시 눈먼 자들임을 이야기한다. 이웃의 고통에 못 본 척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 여전히 세계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전쟁들을 그저 바라만 보는 사람들, 자신의 이득만을 좇아 남들을 짓밟고 일어서는 사람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눈이 보이는, 눈먼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눈먼 사람들은 자신이 눈이 멀었다는 것을 인지해야 비로소 삶을 바로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우리들의 삶을 오롯이 바라볼 수 있는가. 두려움 때문에 눈이 멀었다면 그 두려움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By. 민트별펭귄.
사진 출처 : pixabay
인용 출처 :『눈먼 자들의 도시』주제사라마구, 해냄
본문 출처 : 민트별펭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