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ILD 2 ∙ 03 파사드 철거

탈피│가짜 나를 벗고 순수를 마주하다

by 마음건축소
타인을 속이기 위해 가면을 쓰지만,
결국 자기 자신을 가장 오래 속인다



오랫동안 나는

내 마음의 설계도를

타인에게 맡기고 살았습니다.


그들이 보기 좋도록,

그들이 편안해하도록 지어진

내 마음의 집.


그 집의 외벽에는

민낯이라는 정직한 골조를 가린

매끄러운 대리석이 발라져 있었지요.


틈 하나 없이 완벽해 보이는

그 외장재 뒤에서,


정작 집주인인 나는

숨이 막혀가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로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

파사드의 외장재를 철거하기로 합니다.




소음의 현장, 외장재라는 겉치레


실시 설계가 한참이다.

디테일과 마감재 리스트를 마무리 중이다.


나는 내가 좋아한다고 믿는 것으로 선정한다.


남을 돕는 일.

남을 가르치는 일.


소외된 아이들을 위한, 재능 기부 현장으로 향한다.


잘하는 일로 누군가를 돕는 보람은 달콤하다.

그러나 그 달콤함은 서서히 형태를 바꿔

내 일상 깊숙이 스며든다.


"선생님, 이번에도 부탁드려도 될까요?"

조심스러운 물음 앞에서

나는 생각보다 빠르게 답한다.


"... 네, 그럼요."

나는 또다시 "좋아요"를 반복한다.


전화를 끊고 다이어리를 펼치는 순간,

숨이 턱 막힌다.


이미 빈틈없는 일정 위에,

나는 또 얹는다.


‘착한 선생님’이라는 마감재를.


파사드의 외장재가 다시 화려하게 빛난다.




기울어진 마음의 구조


센터 아이들을
내 아이처럼 보살피느라,
정작 내 아이의 알림장은 놓친다.


저녁 식탁에 앉아서도
마음은 내일의 봉사 준비물에 가있다.


"나, 오늘 학교에서..."

내 아이의 말을 끊고,
나는 또 다른 아이에게로 향한다.


아이의 비어버린 눈빛을 외면하며,

나는 되뇐다.


나는 좋은 일을 하고 있어. 나는 착한 사람이야.


하지만 그것은 나를 속이는 기만이었다.


타인의 칭송을 위한 익스테리어에 집착하느라,

가장 소중한 입주민인
내 가족을 비워두고 있었다.


다시 외장이 두터워진다.



비움의 순간, 외장재를 철거하다


파사드를 지키며 지쳐가던 어느 날 밤,

어둠 속에서 알아차린다.


나는 다시 하중에 눌리고 있다는 것을.

가짜 미소로 나를 소모하고 있다는 것을.


그날 나는,

오래된 설계도로 지어진

파사드의 외장재를 철거하기로 용기 낸다.


가설되어 있는 마음공사 현장으로 나간다.


타인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발랐던

매끄러운 외장재를 뜯어낸다.


유용함

착함

너그러움

완벽함

강함


그리고

이 모두를 만든,

성인이고 싶었던


그 특별함까지.


나는 더 이상
타인의 기대에 맞춘 모델하우스로 살지 않겠다


그렇게 가짜 나를 비운다.




반듯한 외장재를 벗겨내자

외면할 수 없는 정직한 민낯이 드러난다.


그런데 해방감이 아니라, 두려움이 온다.


나의 골조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드러남의 불안'이었다.


마치 설계도도 없이

거친 공사 현장에 서 있는 기분이다.


하지만 용기를 낸다.

모델하우스에서 나온다.


내가 직접 발 디딜 흙바닥을 확인한다.


매끄러운 외장재 아래

거칠고 울퉁불퉁한 나를 마주한다.


내가 가장 숨기고 싶었던 민낯이 보인다.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아무런 역할도 수행하지 못하더라도

나 자신을 가치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나.


나를 의심하는 내가 보인다.


그렇게 내 마음의 공간 가장 깊은 곳,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울퉁불퉁한 골조를,

나는 정직하게 대면했다.




이제 나는,

용기 내어, 나의 민얼굴을 인정한다


나는 유용하지 않다.

나는 언제나 쓸모 있을 수 없으며,

때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 채

그저 웅크리고 있는 존재다.


나는 착하지 않다.

거절당할까 봐, 미움받을까 봐

미소를 벽처럼 쌓아 올렸다.

그 벽 안에는

거절하고 싶은 마음,

등을 돌리고 싶은 마음,

차갑게 식어 있는 마음이 고요히 남아 있다.


나는 너그럽지 않다.

넓은 바다인 척했지만,

나는 작은 물결에도 흔들리는 사람이다.

나는 때로

서운해하고, 질투하고, 옹졸해지는 사람이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

오차 없는 설계도를 믿었지만,
내 삶의 기초는 흔들렸고, 벽에는 금이 가 있었다.

나는 그 틈을 가리며 살아왔음을 인정한다.


나는 강하지 않다.

늘 버텨야 한다는 마음이,

나를 더 무겁게 만들었다.

나는 쉽게 흔들리고,

작은 바람에도 기울어지는 사람이다.


나는 특별하지 않다.

남들보다 성인여야만 내 자리가 허락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 고백한다.

나는 그저 길가에 핀 이름 모를 풀꽃처럼 평범하고,

때로는 결핍투성이 인간일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드러낸다.


나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이고 싶다.

나는 나의 무용이라는 여백을 허락한다


미움받을까 봐 지어 올리던 미소 대신,
솔직한 거절의 벽을 세운다.


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바다가 아니다.
나를 위해,

서운함을 풀어놓을 내밀한 방을 선택한다.


내 마음의 부실한 기초와 금이 간 벽을 드러낸다.


나는 약하다. 그리고 기댄다.


나는 특별함을 쫒지 않는다.

평범함에 발을 딛는다.




그런데, 무너지지 않는다


드러남의 불안을 통과하자

'진정성(Authenticity)'이라는 단단한 암반이 만져진다.


용기를 내 비운자리에서

반듯한 익스테리어를 비우고 만난 것은

나에 대한 진정성이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 모든 '없음'의 자리가,


비로소 '진짜 나'가 들어설 빈 공간이 된다.




내 안에서 빛이 번진다


쓸모를 내려놓은 자리로
조용한 평온이 스며든다.


누군가를 향해 손을 내밀지 않아도,
나는 이미 충분한 존재로 남는다.


“아니요”라는 성벽 위로
나를 경호하듯 안전한 무지개가 뜬다.


옹졸한 마음을 두는 자리 덕분에

우리는 서로를 지키면서도
함께 있을 수 있는 관계가 된다.


결함이 채광창이 된다.

결함, 그 틈 사이로 빛이 든다.


연약함이 지지대를 만든다.

단단한 기둥이 아니라,

바람에 흔들릴 줄 아는 유연한 나무가 된다.


풀꽃 같은 평범함이 뿌리가 된다.

특별해지려 애쓰지 않아도,

나는 이미 나로서 특별하다.


비로소 마음의 공간에 볕이 들기 시작했다.

비로소 시방서(specifications)를 완성하고 실시설계를 마친다.




나에게 건네는 사랑으로


나는 사랑받기 위해 나를 지워왔다.

하지만 이제는

나에게 건네는 사랑으로 나를 다시 짓는다.


있는 그대로의 흙바닥을 딛고 서서,

본래의 결로 씨앗을 뿌린다.


그렇게 내 마음건축의 기초 공사가 시작된다.


그 시작은,

내가 나에게 숨김이 없이 서는 것,

나의 본래 결을 품는 일이었다.


이제 나를 고쳐 쓰는 대신,
나를 다시 짓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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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건축 현장일지│비우고 짓고, 비우고 짓는 기록


오늘 우리는

타인의 시선으로 지어진 외벽의 마감재를 철거했습니다.


"당신이 가장 숨기고 싶었던 민낯은 무엇인가요."

"오늘 당신의 외벽에는 어떤 마감재가 시공되어 있나요."


우리가 미덕이라 부르는 것들,
그 안에는
나를 지키려다, 나를 잃어버린 흔적이

머물러 있기도 합니다.


타인의 인정을 벽지 삼고,

누군가의 기대를 기둥 삼아 지은 모형의 삶은

겉보기에는 완전해 보여도,

내가 숨 쉬며 머무를 공간은 내어주지 않습니다.


유용하지 않아도

착하지 않아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 모든 '없음'의 자리가

비로소 진짜 당신이 들어설

빈 공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용기를 내 보십시오.


매끄러운 파사드를 걷어내고,

그 뒤에 숨겨 두었던 본연의 골조를

조용히 마주해 보십시오.


처음에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는 일이

몹시 두렵게 느껴질 것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쓸모없어도 괜찮고,

착하지 않아도 되며,

좁고 예민함조차 나의 일부임을 인정하는 순간,

이전에 없던 선명한 빛이 스며듭니다.


자신의 깊은 내면과 화해하는 경험을 하게 되지요.


나에게 숨김없어지는 순간,
삶은 비로소 다시 시작됩니다.


그 자리에 깃들 당신의

있는 그대로의 얼굴을 응원합니다.


가면을 벗는 순간은
잃어버린 나를 찾는 일이 아니라,
처음으로 나를 마주하는 일이다


다음 주,

BUILD 2 ∙ 3화 ‘황금이 된 폐자재│아픔을 녹여, 나를 세우는 재료로’가 이어집니다.


오늘도 마음건축소와 함께,

머물러주셔서 고맙습니다.

비우고 짓는 반복적인 리듬 속에서,

당신의 마음 공간이 단단해지기를

소망합니다.


SUN드림


당신 삶의 유일한 건축가는 결국 당신 자신입니다


사진: Gemini_Generated_Im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