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기의 엄마아빠 이야기, Bedtime story
우리 직업이 독특하긴 한가 보다. 나는 "연극배우랑 살면 어때요?" 하는 질문을 많이 받고, 남편은 "심리학자랑 살면 어때?" 하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한다. 배우랑 사는 게 어떠냐면, 잘 모르겠다. 나는 배우랑 사는 게 아니라 내 남편이랑 산다. 내 남편도 마찬가지이겠지. 심리학자랑 사는 게 아니라 나랑 산다. 나는 놀라울 정도로 퇴근하면서 정말로 퇴근해 버리기 때문에 상담실 아닌 곳에서 남의 마음을 분석한다든지 사례개념화를 한다든지 하진 않는다. 물론 다른 사람 눈에는 내가 이미 패시브 스킬로 장착하고 있는 심리학적 분석 과정이 보일 수도 있겠지. 어쨌거나 의도적, 의식적으로 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배우 남편도 패시브 스킬로 장착하고 있는 발성과 큰 움직임 때문에 내가 웃으며 면박 주고 째려보기 일쑤이지만, 그닥 배우같이 살지는 않아서 가끔만 멋있고, 자주 귀엽고, 이따금 밉상이다.
우리의 이야기는 여러 버전이 있다. 딸에게 해주는 버전으로 시작해 보자. 우리 아기가 "엄마아빠 이야기해 줘"하고 자기 전 이야기를 의뢰하면 줄줄 나오는 우리의 짧은 연애사다.
엄마랑 아빠 이야기를 하려면 엄마 아빠 이름을 알아야 해. 엄마 이름이 뭐지? 아빠 이름이 뭐지? 맞았어. 엄마 아빠는 어릴 때부터 아는 사이였어. 어릴 때는 저런 친구가 있구나 하는 정도였지.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시간이 흐르고 10년이나 지나서 둘은 사랑에 빠지게 돼. 엄마는 아빠를, 아빠는 엄마를 사랑하게 되지. 그런데 엄마는 공부를 하느라 너무 바쁘고, 아빠는 연극을 하느라 너무 바빴어. 그리고 둘이 너무 멀리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되었어. 그렇게 시간이 지나 서로를 그리워하기도 하고 다른 일을 하느라 바쁘기도 하면서 살다가, 시간이 흐르고 시간이 흐르고 10년이나 지나서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됐어. 다시 만났는데, 둘은 다시 서로를 사랑하게 됐어. 엄마는 아빠를, 아빠는 엄마를 사랑하게 되지. 둘은 서로를 너무 사랑해서 "우리 평생 같이 살자"하고 약속을 하게 돼. 그리고 "우리가 서로 많이 사랑하니까 우리 둘을 닮은 예쁜 아기를 낳자"했는데 정말로 아기가 태어났어. 그 예쁜 아기 이름이 뭘까? (자기 이름을 수줍고 자랑스럽게 대답하는 딸. 딸이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맞았어. 우리 아기지. 우리는 가족이야. 그렇게 엄마, 아빠, 우리 아기는?
그러면 우리 아기가 "내가내가 (말할 거야)" 하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이제 자자. 잘 자"하고 마무리를 한다. 보통 아기를 재우는 것은 나의 몫인데 며칠 전 할 일이 있어 아빠랑 같이 자라고 둘을 먼저 들여보냈다. 남편은 내가 아기 재울 때 보통 남은 집안일을 해서 잠자리 스토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잘 모른다. 소위 '엄마아빠 이야기'를 이번에는 아기가 하고 있다. 엄마 아빠 이름을 들먹이며 서로를 사랑했다는 이야기를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엄마는 공부하느라 바빴고, 아빠는 또또, 음, 바빴고 헤어질 수밖에 없었어. 그런데 다시 만나서 서로를 사랑하게 됐어. 하고 종알종알 아기의 목소리로 우리 이야기를 듣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남편은 아기가 이런 이야기를 알고 말로 하는 걸 듣고 정말 놀랐다고 한다.
모든 이뤄진 사랑에는 마법 같은 순간들이 있다. 우리에게도 몇 번, 믿기 어려운 마법의 순간들이 있었다. 순간의 결실이 지금의 우리를 만든 것 같다고 생각한다. 소중한 순간들을 글로 박제해 두면, 두고두고 회자되는 이야기가 되겠지. 아기가 자라면서 우리는 더 자세한 버전의 엄마아빠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살이 붙은 이야기가 더 재미있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