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지 프로젝트? 또 쓰레기 프로젝트

by 마인드카소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면서 그림과 나는 더 자연스럽게 더 멀어졌다. 온종일 아기를 돌보다가 아이가 잠들고 내 시간이 생겨도 무언가를 다시 할 의욕도 심리적인 여유도 체력도 없었다. 누군가는 아기를 돌보는 와중에도 영감을 받고 기록하고자 그림을 그린다는데... 나에게는 언감생심이었다.


그러다 아이가 2돌 정도 지나고 나니 조금은 숨통이 틔였다. 나도 무언갈 해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그림을 다시 그려볼까는 생각이 슬쩍 올라왔다.


몇 년 동안 그리지 않던 그림을 그리려니 흰 종이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무서웠다. 내가 이렇게 깨끗한 하얀 종이를 망쳐 놓을 것만 같아서. 아예 시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버릴 그림이라도 그리자는 심정으로 이면지들을 반으로 잘라 집게로 집었다.


그리고 붙인 이름 '이면지 프로젝트'

말 그대로 이면지에 드로잉을 하는 것이다.



선하나 긋는데 훨씬 부담은 줄었다. 이면지니까. 버릴 거니까. 망처도 되니까. 괜찮다. 이런 생각과 함께 마구잡이로 그리기 시작했다. 버릴 그림답게 아무 의미 없는 낙서가 이면지에 채워졌다. 그런 그림? 드로잉? 낙서는 하루에 열 장, 스무 장도 더 그릴 수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쯤 그리고 나니 이면지가 혹은 나의 낙서가 수북이 쌓였고, 그걸 보는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저 그림들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쓰레기통으로 갈 그림을 내가 왜 그리고 있지?


어차피 버려질 그림이라는 마음으로 그리는 것은 혹은 종이에 선을 그어본다, 내 멋대로 표현해본다는 의미로서 그리는 행위 자체의 진입 장벽은 낮춰주었지만 그것뿐이었다.


이면지에는 비싼 오일파스텔은 절대 허용할 수 없었다. 아까우니까! 저렴한 크레파스, 굴러다니는 연필만 썼다. 표현도구에도 제한이 생긴 것이다. 무엇을 그릴까? 어떻게 표현해볼까? 어떤 의미를 담아볼까? 등의 생각다운 생각을 거치지 않고 손을 움직이여 선을 긋는 행위에 그치게 했다.

이것은 마치 엄마가 아이가 남긴 밥으로 허기만 해소하면 되는, 한 끼 때우는 것과 비슷했다.

엄마가 자신을 대접하지 않는 것처럼 이면지에 그린다는 것은 그림을 그림으로 대접하지 않는 것과 같았다.


어차피 버릴 건데 뭐...

이면지잖아?


이런 생각은 딱 그 수준에 맞게 그리게 했다. 그려도 그려도 발전이 없었다. 노력이나 고민이나 의미를 두지 않게 했다. 스스로도 어떤 느낌도 남지 않는 그림이었다. 당연히 그런 그림은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는다. 가족에게 조차도. 의도한 대로 쓰레기통 행이다.


드로잉이나 습작이라면 드로잉북에, 어떤 작품을 염두에 두었다면 캔버스에, 수채화라면 수채화지에, 그것에 맞는 대우 해주어야 한다.

초반에 그리지 못하겠다는 스트레스는 그 위치에서 극복해야 할 문제이다. 드로잉북에 그리다가 망치면 다음장에 그리면 된다. 습작이어도 이면지에 그리면 안 되고 드로잉북에 그려야 하는 이유는 다음 장에 그리려고 종이를 넘기는 순간 '이번에는 좀 더 잘 그려봐야지'라는 아주 작은 발전적인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이면지에 그릴 때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어제 친한 블로그 이웃님이 블로거 1주년을 기념하는 글을 올렸다. 그녀가 쓴 글은 네이버 메인에도 여러 번 올랐고 현재는 브런치 작가로서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심지어 작가의 명함이라는 강의의 인기 강사이기도 하다. 글을 읽어보니 작년 이맘때쯤 그녀가 블로그를 하기 위해 노트북을 샀다고 한 부분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핸드폰으로도 포스팅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가 포스팅을 하기 위해 노트북을 산 시점, 그때부터 매일매일 눈에 보이지 않는 글쓰기에 대한 발전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무언가를 시작함에 있어서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출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 하나쯤은 그것에 맞는 대우를 해주고 준비를 해야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드로잉은 이면지가 아닌 드로잉 북에 그려야 하고, 글은 핸드폰 어플이 아닌 키보드로 10손가락을 다 사용해서 글을 써서 발행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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