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향해 한 걸음씩 걷기 시작했나요?

그 과정 중 마음이 힘들 때 보는 그림

by 마인드카소

우리 아이가 벌써 5살이다. 갓난아기의 여린 몸이 으스러질까 조심히 안고 언제 클까? 생각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두 돌 전의 육아는 수면 부족으로 오는 육체적으로 힘듦이었다면 두 돌 이후의 육아는 아이의 생각과 고집이 자라나면서 육체의 고단함에 정신적인 피로감까지 더해진다. 아이에게 '어허~'가 아닌,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진짜 화를 내게 되는 것이 두 돌 전후가 아닐까 싶다.

모든 것은 처음이 중요하다. 술도 안 마시려면 처음의 '딱 한잔'의 유혹을 이겨내야 하는 것처럼 한번 화를 내기 시작하면 두 번째는 조금 더 쉽게 화를 내고, 세 번째는 더 쉽게 화를 낸다. 그러다가 아이에게 별것도 아닌 것에도 째려보고 짜증 내게 된다. 네 번째 술부터는 술술 넘어가는 것처럼 화도 습관이 되어 술술 내게 되는 것이다.


아이가 3돌이 되기 전 이 한심한 패턴을 반복하던 어느 날 밤, 아이를 재우고 핸드폰으로 sns을 보던 중 한 장의 그림에 시선이 멈추었다. 그 그림은 나를 돌아보게 했고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빈센트 반 고흐 첫걸음


우리에게 참 친숙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first step 첫걸음이다. 제목 그대로 한 여자 아기가 첫 걸음마하던 때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이 그림을 보는데, 나의 마음은 우리 아이의 첫걸음을 하던 때로 돌아갔다. 돌 전후로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더니, 수없이 넘어져도 혼자 서기를 연습하던 기특한 아이의 모습. 넘어지면 너무 안타까워서 괜찮냐고 위로하고, 다시 몇 걸음 걸으면 엄청난 환호로 아이와 함께 기뻐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크고 작은 아이의 서툰 실수에도 '괜찮아, 엄마가 도와줄까?' 꽤나 다정했던 내 모습도 함께.


딱 걸음마를 막 시작하려 할 때 내가 아이를 대했던 것처럼 커가는 아이를 한결같이 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의 실수에 '그게 뭐야!'가 아닌 '괜찮아. 다시 하면 돼'라고 격려해 주고, 스스로 걸을 때까지, 아이가 해낼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는 여유 있는 마음과 이룬 것의 크기와 상관없이 아이가 해낸 것에는 온몸과 온 마음을 다해 환호하며 반응해주는 엄마.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의 마음에 깊게 들어온 그 느낌이 오래도록 남았다. 그 뒤로 아이와 하루하루 보내면서 육아에 실패했다고 느껴지는 날이면, 혹은 육아가 힘들다고 느껴지는 날이면 이 그림을 꺼내보았다. 나에게 말했다. 아이가 걸음마할 때 내가 아이에게 대했던 태도를 잊지 말자고. 딱 이때처럼만 하자고.




아이가 4살 때 가정 보육하는 짬짬이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 나가기 시작했다. 블로그를 시작으로 온라인 미니 강의도 해보고 나만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나의 꿈을 향해 용기 내어 한 걸음씩 내딛던 중이었다. 그 과정 중에서 참 어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나는 왜 이것밖에 못하지, 내 목소리가 별로야, 나 버벅된 거 같아. 그냥 하지 말까...' 등 나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 특히 그랬다.


분명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왜 이렇게 마음이 힘든 걸까?



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마음이 들던 중 다시 꺼내 보게 된 반 고흐의 첫걸음.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그림이 보였다. 그림 속에서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기는 나였다. 적당한 거리에서 팔을 벌리고 있는 아빠는 나의 꿈이었다. 뒤에서 잡을 듯 놓을 듯 보살피는 엄마는 다양한 방면에서 나를 도와주고 있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었다.


아기는 한 걸음 걷는다. 나도 이제 한 걸음 걷는다.

엄마가 뒤에서 손을 놓는다. 주변 사람의 도움은 뒤로 하고 스스로 걸어간다.

가고자 하는 방향은 확실하다.

나는 내 꿈으로, 아기는 아빠를 향해 걸어간다.

꿈은 나를 향해, 아빠는 아기를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려 기다리고 있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거리.

내가 넘어지면 언제라도 달려와서 나를 일으켜 세워줄 것이고, 내가 이루면 누구보다 환호하며 기뻐해 줄 존재. 아기에게는 그 존재가 아빠이고, 나에게는 그 존재가 나의 꿈, 꿈을 이룬 나였다.


걸음마하고 있는 아기를 담은 반 고흐의 그림이 이제 해보고 싶은 일들을 시작하려는 나에게, 그 과정에서 왜 이렇게 부족하냐고 스스로 냉정하게 평가하는 나에게 이렇게 의미 있게 다가왔다.




줄리아 카메론은 그녀의 책 아티스트 웨이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루에 몇 번씩 자신에게 기분이 어떤지 물어보고 그 대답에 귀 기울여 친절하게 대응한다. 만약 힘든 일을 하고 있다면 휴식과 위로를 자신에게 약속해 준다. 자신을 아기처럼 다루라는 말이다. (...) 창조적인 존재인 당신은 자신을 잘 보살필 때 보다 생산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라고.


그렇다. 나는 아기이다. 이제 꿈을 향해 한 걸음씩 걷기 시작한 아기. 넘어질 것이고, 다시 일어설 것이며, 실수할 것이고, 다시 나아갈 것이다. 언젠가는 내가 걷는다는 의식 없이 자연스럽게 걷는 것처럼 꿈과 하나가 되는 날이 올 것이다.


내가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이 시점, '잘한다 못한다.'내가 나를 냉소적으로 평가하는 자세보다 내가 나의 마음과 감정을 보살피는 따뜻함이 필요했다. 꿈을 향해 끝까지 가려면 말이다.




다시 우리 아이 걸음마할 때를 생각해본다. 자신의 성공적인 한, 두 걸음에도 자신감이 넘치던 아이의 표정이 생각난다. 말은 하지 못해도 표정으로 알 수 있었다.


'엄마, 나는 할 수 있어요. 나는 해낼 거예요. 나는 될 때까지 할 거예요'


이제 나는 나에게 말한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해낼 것이다.

나는 될 때까지 할 것이다.


나는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으려 하는 나를 따뜻한 마음으로 믿어보기로 했다.

그림 속의 두 팔 벌려 기다리고 있는 아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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