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이 된 아이는 올해 생애 첫 기관인 유치원에 입학 예정이었다.
아이와 나는 설렘과 긴장감으로 입학설명회를 다녀온 후 준비물을 하나씩 챙기던 중에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터졌다. 금방 지나갈 줄 알았던 코로나 바이러스는 입학식 코 앞까지 와서도 해결되지 못했다. 아이 유치원 입학은 무기한 연기되었고 우리의 일상은 집콕으로 하루하루 이어졌다.
문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니 집 앞 슈퍼, 놀이터에 나가는 것도 여행 가는 것 마냥 큰 이벤트가 되어버릴 만큼 귀찮아졌다. 생필품 중 일부는 자연스럽게 택배로 해결했다.
두 달 가까이 그렇게 아이와 집에서 생활하다 보니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이 아닌 사회적 거리두기, 외출 자제로 인해 몸과 마음에 조금씩 병이 스며들기 시작하는 듯했다. 아이의 아토피성 피부는 밖에서 활발하게 놀면서 땀을 내야 좋은데 그러지 못하니 올라왔고, 나도 무의식 중에 답답함을 느끼며 순간순간 아이와 처한 상황에 예민해지기도 했다.
달력을 보니 4월이었다. 여전히 우리는 집이었다. 밖의 날씨가 추운지 더운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았다. 4월이라... 30여 년 이상 경험했던 4월을 상상하니 4월의 봄바람은 온화하고 꽃이 피어나는 완연한 봄이 아니던가!
작년 4월의 사진첩을 보니 아이와 도시락과 간식을 싸 들고 산으로, 숲으로, 공원으로 하루가 다르게 피어나는 꽃과 나무를 보러 산책 다녔던 기록들이 눈에 띈다.
아이야, 4월이 되었단다. 4월이라 한다.
아주 큰 맘먹고 아이와 외출 준비를 했다. 간단하게 간식을 챙겨서 우리가 늘 다녔던 도서관 뒤 쪽 숲으로 산책을 나갔다. 꽃들의 오케스트라 마냥 종류별로 순서대로 피어나고 있었다. 감탄이 흘렀다.
봄이구나!
개나리는 노랗게 만발하였고,
진달래의 핑크색은 참 여리고 곱다.
목련은 하얗게 만개하여 꽃잎이 떨어지고 있다.
민들레는 명랑한 노란색 이제 막 피어나고 있고,
벚꽃은 연한 핑크로 일부 나무에서만 수줍게 보여준다.
산수유나무 꽃은 어떤가! 진노랑색 작은 꽃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청설모는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점프하여 뛰어오른다. 우리의 시선은 청설모를 따라가기 바빴는데, 그 광경은 마치 서커스를 보는 듯한 즐거움을 주었다.
산비둘기는 먹이 찾아다니고 까치 두 마리가 단짝처럼 함께 날아다니는 모습이 정다워 보인다.
커다란 말벌은 무섭기도 하지만 신기하고,
솔방울처럼 생긴 작은 갈색 열매도 귀여워 보인다.
떨어져 있는 씨앗은 또 무슨 씨앗일까 궁금증이 일어난다.
꽃과 동물, 숲에서는 사회적 거리 없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사람들만 하얀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서로가 서로를 피해 멀찌감치 다닌다. 그것이 서로에 대한 예의다. 마스크로 입을 가리는 모습부터 사회적 거리라는 단어, 이 모든 것이 부자연스럽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람들과의 사회적 거리뿐만 아니라 우리 생애 2020년의 유일한 봄과도 철저히 사회적 거리를 두게 하였다.
문득 이 귀한 봄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고, 보낸다는 것이 슬프게 느껴졌다.
다시 숲을 둘러보고 호흡해본다.
숲에서의 상쾌함이 느껴진다.
내 몸 구석구석에 쌓인 예민해진 감정들이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다.
아이의 아토피 피부염이 가라앉는 느낌이다.
아이와 함께 예쁜 봄 꽃을 종류별로 구경하고 감탄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그 자체로 행복이었다. 잔잔한 행복감이 꽃잎의 보드라움을 통해 느껴졌다.
그럼에도 이 거추장스러운 마스크를 끼고 다녀야만 하는 답답함!
모든 것을 부자연스럽게 하는 코로나가 하루빨리 지나가고 일상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이들이 놀이터로 유치원으로, 학생들은 학교로 돌아가고, 어른들은 일터로 자신이 있던 위치로 돌아가기를. 주말에는 서로 모여 일상의 이야기와 추억을 나누기를. 마음 놓고 꽃구경 다니면서 2020년의 유일한 이 봄을 마음껏 온몸으로 느낄 수 있기를!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지기를 산책하는 걸음걸음마다 간절한 마음을 담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