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머니는 지난 주에 퇴사하셨다. 한 주가 지나고 시댁에 들리니 어머니의 안색이 좋아 보인다. 출근에 대한 스트레스 없이 푹 쉬니 잠도 잘 오고 좋으시단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어머니께서 차려주신 식사 두 끼를 편하게 똑 따먹고, 오후 늦게까지 아이랑 빈둥빈둥 놀다가 돌아오는 여유로운 일요일을 보낼 수 있었다. 일을 하실 때는 오전에 시댁에 들려서 점심만 먹고 1시쯤 서둘러 나가야만 하는 풍경이었다면, 퇴사를 하시니 동네 뒷산에도 함께 오르고 두 끼나 챙겨 먹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긴 것이다. 아이도 할머니와 함께 산책을 나간다고 하니 신이 났다.
30년 동안 워킹맘이셨던 어머니의 삶.
요즘 우리처럼 자아실현이나 성장을 위한 워킹맘이 아닌 생계를 위한, 불가피한 워킹맘이셨다. 나는 그러한 어머니의 삶을 존경한다. 철저한 자기 관리와 자기 계발로 앞으로 나아가는 훌륭한 사람들의 삶은 '와 대단하다' 싶어도 나의 가슴 끝까지 느껴지는 감동을 전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하지만 어머니의 삶을 생각하면 잔잔한 감동과 존경심, 삶에 대한 의지가 일어난다. 그것은 가방 끈의 길이나 지식으로 전할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었다. 지혜였다. 어머니의 삶은 그 자체로, 그 어떤 멘토보다도 나에게 영향을 주었고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 주셨다.
개인 브랜드를 해보겠다고 일을 벌여놓고, 수습이 안 되어서 캐리어 끌고 백화점으로 판매를 다닐 때 힘들어서 많이 울었다. 몸이 힘든 것보다 마음이 힘들었다. 온갖 고객들과 권위적인 관리자들의 감정을 다 받아내면서도 웃으면서 판매해야만 하는 노동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목표한 금액까지 도달하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나갈 수 있었던 것은 힘들 때마다 어머니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른 체격에 조용한 성격이신 어머니가 최근 10년이 넘도록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셨던 곳은 대형 마트였다. 처음에는 적성에 맞지 않아서 많이 힘드셨음에도 어쩔 수 없는 현실 때문에 버티셨고, 일을 하셨다.
백화점 마켓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을 때면, 마트에서 나와 비슷한 일하고 계실 어머니를 생각했다. 그러면 저절로 마음을 다 잡게 되었고 '그래, 조금만 더 힘내 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랑이 어렸을 때는 형편이 더 어려웠다. 게다가 아버님이 일을 하시다가 사고를 당하게 되어 몇 년 동안 일을 하지 못한 때가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가장 역할을 하시면서 시아버지의 병시중을 들어야 했고, 또 아들 두 명의 육아까지 하셔야 했다.
그렇다고 본인의 어려운 현실을 부정하거나 누구와 비교하며 스스로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지거나 혹은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으셨다.
그래서인지 우리 어머니가 겪으신 삶 자체는 고단하셨을지언정 어머니는 참 곱다. 고생에 절은 모습이 아니다. 삶이 고생스러웠다고 그 탁한 분위기가 육신과 언어를 통해 절절하게 퍼진다면 시댁에 편하게 들리지 못할 텐데, 언제 놀러 가도 어머니는 지나침 없이 우리를 편안하게 대해 주신다.
나는 그런 어머니의 삶을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던 어머니를 닮은 삶에 대한 태도로 나이 들고 싶다.
그렇게 어렵고 힘들게 30년 워킹맘을 하신 어머니께 우리는 퇴사를 축하하는 기념의 돈봉투를 드렸다. 봉투에 그동안 고생하셨다고, 감사드린다고 간단하게 메시지를 써서 드렸는데 어머니는 그만 눈물을 흘리셨다. 나도 울컥하고 신랑도 울컥했다.
다음 날 어머니께 문자가 왔다. 힘들게 모은 돈일 텐데, 봉투가 왜 이렇게 두껍냐고, 상상도 못 하셨다고 고맙다고 하셨다.
30년 일하신 어머니의 노고에 비하면 사실 택도 없는 금액이다. 어렵게 아들 키우셨는데 이런 재미도 있으셔야 하지 않으시겠냐고 더 많이 벌어서 더 많이 드리고 싶다고 했더니 마음이 이쁘다고 하신다. 우리도 잘 먹고 잘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앞으로는 돈 주지 말라고 하신다. ㅎㅎ 그리고 잘 살아 주어 고맙다고 하신다.
때때로 힘들 때면 어머니의 삶을 상상한다.
나보다 더 젊었을 때의 어머니가 지금까지 살아내신 삶을.
그 자체로 나에게는 감동이고 메시지가 된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우리 곁에 계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