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또 이사를 한다. 결혼하고 살다 보니 4년 주기로 이사를 하게 되었으니 두 번째 이사이다.
주말부부를 끝내고 싶어 하는 신랑과 합치려고 했지만 불안정한 신랑의 회사 상황 때문에 고민하다가 결국 살던 동네에 살기로 결정했다. 단지 내에서 이동이다. 누군가는 그럴 거면 왜 돈 들여서 이사를 하느냐고 물었지만, 돈이 들더라도 환경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컸다.
우리 집 거실 등은 프로펠러(선풍기)가 달린 꽃무늬 갓이었고 방방의 문짝은 옥색이었다. 작은 방은 내 얼굴만 한 빨간 장미 꽃무늬에 노란색 장판이었다. 20년 전 처음 지어진 주공아파트 그 상태 그대로였던 것. 전직 디자이너였지만, 카페 같은 집이나 북유럽풍의 집으로 한껏 꾸민 집은 사실 와 닿지 않았다. 눈으로는 예쁘네 하면서도 마음으로는 먼지 많이 쌓이겠다 생각뿐. 집은 그냥 자연스럽고 편안한 게 최고라며 신혼 때부터 딱히 인테리어는 안 하고 살았다.
이 집에 처음 이사 들어올 때 옥색 문짝이 거슬리긴 했지만, 임신 중이어서 꾹 참고 살았는데 4년쯤 살다 보니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이가 좀 크니까 무엇보다 프로펠러 거실 등이 가장 문제였다. 호기심 넘치는 아이는 창고에 넣어둔 커튼봉을 꺼내와서 툭툭 치며 돌리기 시작하는데 떨어질까 봐 늘 불안했다.
이사 전날, 아이와 신랑이 잠든 새벽 집안 곳곳의 눈에 띄는 먼지와 때를 닦아냈다. 어차피 나갈 건데 뭣하러 청소를 하냐는 신랑의 입장에 반대다. 여자라서 그런지 집 안의 더러움을 보고 욕먹을 건 나라고 생각하니 평소에 잘하지 않는 청소를 이사 전날에 하게 되었다. 싱크대와 배수구도 닦고, 화장실도 청소하고...
잠깐 변기에 앉아 쉬는데 순간 마음이 울컥했다. 4년 전 이 집에 이사 올 때는 둘이 었는데 이사 나갈 때는 셋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변기에 앉아 화장실 문고리를 잡고 홀로 진통을 이겨내던 2016년 6월 13일 새벽이 생각났다. 그때도 새벽 5시쯤이었던 거 같다. 눈물이 고인 채로 천천히 화장실 내부로 눈을 돌려보았다. 파란 대야에 시선이 머물더니 한 편의 영상이 고인 눈물 너머 아른아른 나의 눈 앞에 펼쳐진다.
갓 태어난 아기를 안고 와서 목욕시키던 그 유월 여름날에서 부터 5살 어린이가 되기까지 이 집안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추억들이 이어졌다.
안방 한편에 누워서 걸어둔 모빌 바라보며 바둥바둥 놀던 아이, 나의 가슴에 얹혀서 함께 낮잠 잤던 신생아 시절, 100일 되었을 때 소서에 앉혀서 케이크에 촛불 불던 시간, 가족들 초대하여 요리했던 주말 저녁, 거실 끝과 끝에 신랑과 내가 앉아서 아이 걸음마를 지켜보며 환호하던 돌 무렵, 사촌 형아들 놀러 와서 한바탕 신이 났던 아이, 사소한 걸로 깔깔거리던 아이의 모습, 오전에 깊숙이 들어오는 햇빛의 따스함 안에서 아이와 책 읽던 여유로운 시간들, 새벽까지 춤추고 노래하던 두 돌 무렵, 세탁실 수도관이 동파되어 불안감에 떨었던 시린 겨울날, 잠깐 얹혀살았던 남동생이 독립하던 날 등등...
한참 아이와의 추억을 떠올리다 보니 서서히 동이 튼다.
청소를 마무리하고 짐을 대충 정리했다.
8시 30분이 되자 이삿짐센터에서 짐을 싸기 시작한다.
그 사이 나는 아이와 아랫집에 선물을 챙겨서 인사를 갔다. 그동안 아이의 쿵쿵거림을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고 배려해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경비아저씨께도 작은 선물로 인사를 드렸다. 덕분에 안전하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어서 감사드린다고.
우리 아파트 청소해주시는 할머니께도 작은 선물로 인사를 드렸다. 덕분에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어서 감사드린다고.
집주인분께도 문자를 남겼다. "4년 잘 살다가 나갑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새로운 집에서도 행복하길 바란다는 답문이 왔다.
살던 집에서 인연이 된 모든 분들께는 감사함을 남기고, 우리 가족의 추억은 이삿짐 사이사이 빈틈없이 챙겨서 이사를 간다.
새로운 집.
새로운 시작이다.
새로움은 설렌다.
새로 이사한 집에서도 감사한 사람들과 기억하고 싶은 추억 많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