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에게 다시 아기가 생겼다. 임신 중기가 지났을 때 남편과 나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알리지 않고 조산원 자연출산을 계획했다. 자연출산이 일반적인 출산 방법이 아닌지라 축복받아야 할 출산에 있어서 주변의 편견 어린 시선과 걱정스러움을 미리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출산을 하고 아기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양가 부모님께 출산 소식을 전했다. 왜 이제야 소식을 알리느냐는 전화기 너머의 시어머니 목소리가 기억난다.
배를 움켜쥐고 새벽에 둘이 나가서 셋이 되어 돌아온 그 날 저녁부터 산후 도우미 없이(직장에 다니셨던 시어머니께서 3주 정도 간헐적으로 집안일을 도와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다.) 가정 산후조리를 했고, 가정보육을 했다. 아이가 태어난 날부터 함께였던 것이다.
당연히 병원에서 낳아야지, 퇴원하면 당연히 2주간 산후 조리원에서 지내야지, 아니면 산후 조리원 비용으로 산후 도우미의 도움을 한 달 받는 것이 더 낫다. 등 보통의 출산 과정과 주변의 조언들이 있었지만 희한하게 나는 출산과 육아에 관해서는 본능적으로 내 마음이 원하는 쪽을 믿고 선택하고 싶었다.
육아가 어려운 이유는 매 순간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기저귀를 살까 저 기저귀를 살까 와 같은 일상적인 선택에서부터 어린이 보험을 들까? 실비보험만 들까? 어린이집에 보낼까? 가정보육을 할까? 와 같은 중대한 사안까지.
크고 작은 선택들이 아이 키우는 일을 어렵게 느끼게 한다. 현재는 과거에 했던 선택의 집합체라고 하는데 혹시 나의 선택으로 아이가 잘못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아기를 낳기 전에 내가 했던 대부분의 선택들이 후회와 실패로 얼룩진 경험이 많아서 더욱 그랬다.
하지만 아기가 생기자 달라졌다. 용기를 냈다. 내 마음이 원하는 쪽을 선택하자고. 내 마음이 원하고 끌리는 이유는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거라고.
자연출산, 도우미 없는 가정 산후조리, 가정 보육, 아이를 기관에 보내는 시점 모두 다 아이를 보살피며 내가 선택했다. 후회하지 않는다.
그 과정을 통해서 남들이 하니까 따라 하는 것이 아닌 내가 생각하고 선택했던 것들이 쌓여 마음의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선택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찾아보고 공부하려는 노력도 필요했다.
아이가 4살이 되자 친구들이 물었다. 아직도 어린이집에 안 보내냐고, 아이와 지내기 힘들지 않냐고. 대단하다고. 보수적이신 시부모님도 아이가 4살이 되자 사회성 이야기를 꺼내시며 어린이집에 가야 하지 않겠냐고 물으셨다.
내가 대단해서 가정 보육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육아가 힘든 날도 있었다.
어린이집에 보내도 육아가 유독 힘든 날이 있을 것이다. 육아의 어려움은 당연한 것이라는 기본 값을 마음에 입력했다. 그런 날에는 육아의 고달픔과 힘듦이 자연스럽게 나를 통과하게 두었다. 경험해 보니 그 시간이 한없이 길지는 않았다. 끝이 있었다. 다 통과한 길을 돌아보면 아이도 나도 성장한 시간이었음을 깨닫곤 했다.
엄마가 되는 과정은 한 생명을 위해 선택하고 책임지는 일이었다.
옳고 그른 선택은 없지만 자신에게 맞는 선택은 있었다.
다른 엄마들이 하는 말에 갈대처럼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나만 가게 되는 길이더라도 엄마로서 내 마음이 원하는 방향을 선택하고 싶었고 그것을 믿고 책임지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처음 한걸음이 두렵더라도 말이다.
물론 나보다 먼저 선택하고 경험한 선배 엄마에게 조언은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남들은 어떤 선택을 하나 기웃거리며 어떤 것이 좋겠냐고 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느냐고 남에게 습관적으로 묻는 엄마는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4살 아이를 가정 보육했던 것은 내 마음이 원했던 온전한 나의 선택이었다.
아이와 조금 더 시간을 함께 쓰고 싶었고, 종알종알 말을 하는 아이의 이야기를 더 가까이에서 자주 듣고 싶었다. 돌아서면 쑥쑥 자라 있는 아이를 내 눈과 마음에 가득가득 담고 싶었다.
나의 선택은 나에게 옳았고 그저 감사한 시절을 아이와 함께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