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한 땀 한 땀

앞으로 살아갈 힘을 축적하는 일

by 마인드카소

아이와 남편은 아직 잠들어 있는 까만 새벽. 산책을 나왔다.

아이가 5살이 된 지금까지 무수히 함께 걸었던 길을 혼자 걷기 시작했다. 그 길 아래에는 메모리 칩이라도 박혀있는 걸까? 내가 길 위에 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아이와 내가 그 길에서 함께했던 추억들이 하나, 둘, 셋... 은하수처럼 그려지는 것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새벽달이 떠있다. “엄마 자꾸 달이 우리를 따라와요. 어디 가는지 궁금한 가 봐요.” 했던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웃음이 났고 느닷없이 눈물이 고였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그렇겠지만 나도 아이를 떠올리면 마음이 애틋해졌다.

불쑥불쑥 떠오르는 추억이 많아서 마음이 든든해질 때면 내가 했던 선택들의 힘은 더 강해졌다. 신생아 때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고 가정 보육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좋은 걸!


아이가 집에서 밖에서 했던 엉뚱하고도 신기한 말과 행동, 손짓들은 모두 추억이 되었다.

길, 낙엽 하나, 나뭇가지, 돌멩이, 버려진 상자 등 주변의 사소한 것들을 보면 아이와 함께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은은하게 퍼지는 감동과 함께 내게 스몄다.


내향적인 탓에 또래 엄마들과 모여 다니지도 않았고 산후조리원 동기모임도 없어서 아이와 둘이 오붓하게 다녔다.

아무리 잘 맞는 사람도 함께 다니면 신경 쓰이기 마련인데 내가 챙겨야 할 사람은 아이 한 명! 충분했다.

가정보육은 우리의 두 손으로 추억을 한 땀 한 땀 수놓는 시간이었다.

선입견 없는 아이의 시선은 세상의 모든 것을 영감이자 주제로 삼았다. 옆에서 그걸 보는 재미와 놀라움이 있었다. 어느 날은 민들레를 수놓고 어느 날은 낙엽을 수놓았다. 힘들었던 어느 날도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 보면 그것도 추억이었다며 웃을 수 있는 마법의 한 땀이 되었다. 아이와 함께 놓는 수이기에 가능했다.


그렇게 소소한 매일의 추억을 한 땀씩 수놓은 시간들이 지나가고 나서야 우리만의 작품을 만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작품의 완성도와 밀도, 분위기는 추억을 떠올렸을 때 느낌에 비례한다. 떠올릴 추억이 빈곤하면 쓸쓸한 그림이 될 것이고 크고 작은 추억이 다양하면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그림이 될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니 육아는 한 평생에 걸쳐 만드는 각자의 작품 안에 일부분을 컬래버레이션하는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 작품에 엄마의 한 땀이 점점 줄어들다가 더 이상 필요 없거나 수놓을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다.

내 작품에도 다르지 않다. 다만 나는 아이가 커도 언제든지 내 그림에 한 땀만 놓아주기를 그리워할 것이다.

때때로 아이가 신생아 시기에 신랑과 함께 우리 손으로 수를 놓았던 그림을 떠올리면 자신감이 생기고 힘이 난다. 추억을 수놓는 것은 아이나 내가 앞으로 살아갈 힘을 축적하는 일이었다.


나중에 아이가 자라고 물리적 거리가 생기더라도 더 자주 들여다보고 싶은 작품을 컬래버레이션하는 시기. 실수나 눈물의 한 땀도 있겠지만 아이의 유연함으로 웃음 두 땀을 넣을 수 있을 테니 괜찮다.


지난 시간 가정 보육하며 아이와 한 땀 한 땀 수놓으며 그렸던 그림을 꺼내 본다.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을 우리가 만들었다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오늘은 어디에 어떤 한 땀을 수놓을까? 생각하다가 오늘도 아이와 함께 잘 살아낼 힘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