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은 가정보육 황금기

올해는 어린이집 가야지? NO!

by 마인드카소

3살까지는 가정보육을 그럭저럭 이해하는 분위기다. 아직 어리니까.

4살이 되면 주변의 시선이 조금씩 달라진다. ‘올해는 어린이집 가지?’와 같은 질문을 많이 받게 된다. 마치 4살이면 아이를 위해 보내야 한다는 암묵적인 약속 같기도 한 느낌이다.

나도 그랬다. 아이가 4살이 되니 올해는 보내야 하나 싶어서 어린이집 상담을 다녀왔다. 내 눈에는 아직도 아이가 기관 생활하기에 한참 아기 같은데 주변에서 사회성을 위해서라도 보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서둘러 다녀온 것이다.

원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아이는 주변에 관심을 갖기도 했지만 긴장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상담 시간 내내 아이를 어린이집에 적응시켜서 온전히 내 시간을 갖고 싶은 마음 반, 아이와 한 해 더 시간을 쓰고 싶은 마음 반. 두 마음이 크게 갈등했다. 상담의 마무리는 설 연휴 지나고 아이를 등원시키겠다는 여지를 남기고 나왔다.

이상하게 마음이 홀가분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찝찝함이 남아있었다.


그날 밤 아이를 재우고 A4 종이를 꺼내서 반으로 접었다. 어린이집에 보냈을 때와 가정 보육할 때의 장단점을 하나씩 써보았다. 내 마음이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알고 선택하기 위해서였다.

소소한 가지들은 쳐내고 보니 어린이집 보냈을 때 확보되는 내 시간과 가정 보육했을 때 아이와 함께 쓰는 시간 사이에서의 고민이 가장 컸다. 3년쯤 아이와 함께 했으니 충분하지 않을까? 이제는 나만의 온전한 시간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던 때였다.


치열한 생각 끝에 한해 더 아이랑 함께 하자고 마음을 정했다. 그러고 나니 고민한 시간이 무안할 만큼 편안해졌다. 진짜 내가 원하는 마음이 이거였구나! 좋아, 가정보육 한 해 더!


내 시간에 대한 아쉬움은 새벽시간과 아이 낮잠시간을 더 밀도 있게 잘 쓰기로 했다. 신랑에게도 주말만큼은 나의 시간을 덩어리로 확보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6월 생인 아이가 세 번째 생일을 지나고 여름과 가을 육아를 하면서 4살이 가정보육의 황금기라는 걸 깨달았다. 연초 무수한 고민 끝에 가정보육을 선택했던 나에게 스스로 엄지를 치켜세울 만큼 아이와 함께 하는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가정 보육해서 좋구나 였다.


3가지 이유에서였다.


첫 번째 기저귀 안녕

아이는 3살에 기저귀를 뗐지만 천천히 떼는 아이들도 대부분 4살이면 기저귀와 작별하고 팬티 입는 어린이가 된다.

육아 시기를 둘로 나눈다면 똥 기저귀를 치우는 육아와 그렇지 않은 육아로 나눠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을 만큼 아이가 기저귀를 떼면서 육아의 질이 상당히 쾌적해졌다.

얼마나 홀가분한지 어디로든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가 기저귀를 차고 다닐 때는 동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자가용도 늦게 생겼고 처음에는 운전을 잘 못해서 대중교통을 타고 다녔다. 기저귀 짐까지 바리바리 싸서 다닐 자신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밖에서 기저귀 갈아입히는 일이 상당히 수고스러웠다. 기저귀를 차고 있을 때는 유아 휴게실이 잘 되어 있는 쇼핑몰이나 배변 루틴을 고려해서 안 갈아줘도 괜찮을 시간을 예측하고 가까운 거리를 다녔다.

기저귀를 떼고 나니 동네와 다니던 쇼핑몰에서 벗어나 지역 곳곳으로 다닐 수 있는 범위가 더 넓어졌다. 아이도 엉덩이가 가벼워졌겠지만 나도 심리적으로 가벼워진 것이다.



두 번째 낮잠 안녕

아이가 낮잠을 떼면서 아이와 나의 생활 루틴은 심플해졌고 하루는 풍성해졌다.

처음에는 아이가 낮잠을 떼려고 한다는 걸 알지 못하고 낮잠을 안 자려는 아이에게 화가 났다. 아이 낮잠시간이 곧 내 시간이라는 공식이 딱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 시간이 깨지는 것이 싫었다.

이런 갈등이 한창일 때 블로그로 인연이 된 ‘9시 취침의 기적’ 저자 김연수 작가님께 댓글로 고민을 말씀드렸더니 대략적인 루틴을 물어보셨다. 당시 아이는 낮잠을 2-3시간씩 자고 밤에 10시 반 11시쯤 잠이 든다고 남겼다. 작가님께서 보통 아이들이 36개월 전후로 낮잠을 떼려 한다고 하시면서 안 자려는 낮잠을 억지로 재우지 말고 밤잠을 일찍 재워보라는 조언을 주셨다. 생각지도 못한 관점이었다.

다음날부터 바로 적용했다. 꼭 그 시간에 낮잠을 재워야 한다는 틀 하나가 없어지니 오전에 외출했다가도 아이 낮잠 시간에 맞춰 집에 돌아오지 않아도 됐다. 쓸 수 있는 시간이 더 자유로워진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의 활동 범위는 더 넓어졌다. 늘 다니던 곳을 벗어나 서울까지 다니게 되었다. 서울을 갈 수 있다는 것은 보고 즐기고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더 많다는 뜻이었다. 이동 중에 잠이 오면 버스에서 자면 되고 밤에 일찍 잠자리에 드니 내 시간을 갖기도 더 수월했다. 정말 9시 취침의 기적이었다.



세 번째 아이와 대화가 된다.

4살이 되니 아이의 언어도 자라고 생각 주머니도 커졌다. 무턱대고 떼쓰고 고집만 부릴 때와는 다르게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고 언어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육아 수준을 높여주었다. 물론 여전히 어려운 날도 있었지만, 대화로 설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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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산책을 하는데 어디선가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높은 나무 꼭대기에 새가 앉아있었는데 아이는 이렇게 물었다. “엄마 새가 떨어지지는 않을까요?” 생각도 못해본 시선이었다. 잠시 나무 위의 새를 한참 바라보았다. 아이가 던지는 시선과 언어는 신선했고 삶의 활기가 되었다.

4살 여름에 아이와 둘이 부산 바다에 놀러 갔다. 시원하게 철썩거리는 파란 파도 소리를 들으며 걷는데 아이가 파도를 불렀다. “파도야 뭐하니~ 노래하니~”

풍성해진 언어 표현으로 아이의 보물 같은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머릿속이 맑은 공기로 환기되는 느낌이었다. 웃음이 나기도 했고 때로는 생각하게 했다.

아이 가까이에서 아이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덤으로 4살에는 아직 친구를 많이 찾지 않는다. 5살만 되면 또래를 찾아내는 안테나가 있는 것처럼 찾아낸다. 엄마보다는 친구랑 더 놀고 싶어 한다. 다행히 4살은 여전히 엄마품이 최고인 것이다. 이 모든 조건들이 가정 보육하기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미운 네 살이라고 한다. 심하게는 미친 네 살. 나도 아이가 미웠던 순간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그려보면 4살은 가정보육의 황금기였다.

이 시기에 아이와 함께 쓴 시간들이 귀하고 값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