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 지루할 틈이 없는 곳

아이도 좋고 엄마도 좋은 곳 1

by 마인드카소

아이는 태어나기 전부터 숲에 다녔다.


아침 7시 50분. 남편 출근길에 임신한 배가 봉긋하게 나온 나도 따라나선다.

집에서 2km 정도 거리에 남편 회사가 있었다. 운동 삼아 걸어서 출퇴근했는데 1.3km 지점까지 같이 걸었다. 횡단보도에서 인사를 나누고 남편은 회사로, 나는 왔던 길을 돌아왔다.


사람에게 사는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한 후 알게 되었다.

언제든 갈 수 있는 자그마한 공원이 있다는 것, 가까운 곳에 걸으면 행복해지는 길이 있다는 것, 매일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등... 강남 테헤란로 뒤 쪽 빼곡한 다세대 주택에 살 때에는 느낄 수 없었던 귀한 것 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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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나기 전 4월쯤으로 기억한다. 남편의 출근길 배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도서관에 들렸다. 육아에 관한 책을 빌려서 주변을 산책하다가 도서관 뒤 쪽에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계단을 발견했다.

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임신 중기가 훌쩍 지나 제법 배가 나왔던 나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그 산행 길을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숨이 차고 힘들면 내려오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데 기분이 서서히 상쾌해졌다.

조금씩 연둣빛으로 물들어가던 숲, 포근한 흙길, 진달래꽃. 해발 109M의 완만한 능선은 임산부였던 내가 운동하기에 좋은 장소였다.

그 날 이후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숲 산책이라는 새로운 코스가 추가되었다. 배 속의 아기와 함께였다. 도서관 뒤 쪽 입구에서부터 정자가 있는 곳까지 15분 정도 천천히 오르면서 보았던 자라나는 풀, 나뭇잎, 꽃을 기억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숲의 봄 이야기를 즐기며 자연스럽게 숲 태교를 했다.


정자에 올라 주변을 걷고, 마련되어 있는 운동 기구를 가볍게 했다. 정자에 앉아 자연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느꼈다. 지저귀는 새소리를 듣고, 푸른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열심히 몸을 움직여 운동하는 이웃들을 보며 행복하다고 느꼈다.



아이야 이 세상은 이렇게 흥미로운 곳, 다양한 사람들과 동물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란다. 우리 건강하게 무탈하게 만나자.



아기와 숲에서 느꼈던 평온함과 세상의 다양함을 이야기 나누었다.

숲을 걸을 때만큼은 출산에 대한 두려움과 육아에 대한 막막함이 거쳤다. 아이와 함께 할 미래를 긍정적으로 그릴 수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날 약하게 진통이 시작되었을 때도 이 숲을 걸었다. 한결같고 듬직한 숲에 의지했고 초록색의 힘에 위로받았다.


뱃속의 아기는 태어난 후에도 이 작은 숲과 깊은 인연이 되었다.

아이가 걷지 못할 때는 주말에 아기띠에 안겨서 다녔다.


아이가 두 돌이 지나고 나와 함께 적극적으로 도서관 뒤 쪽 작은 숲을 다녔다. 일부러 숲 유치원에 보내기도 하던데, 내가 숲 유치원 원장이요, 원아는 내 아이 한 명으로 바지런히 다닌 것이다.


숲에는 볼거리와 이야깃거리가 많았다. 매일매일 다른 이야기가 피어났다. 오늘은 진달래가 대여섯 송이 피어있었다면 다음 날에는 더 많이 피어있었다. 진달래꽃이 지고 나면 벚꽃 나무의 벚꽃이 만개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아름답고 흥미로운 곳이었다. 아이는 개미를 관찰했고 다양한 새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뛰어넘는 청설모라도 만나면 그 움직임에 시선이 따라가느라 바빠졌다. 청설모와 다람쥐의 다른 점을 이야기하며 할 말이 더 많아졌다. 약수터에 물 먹으로 온 새는 얼마나 반가운가! 나비가 날아오면 쫓아다니느라 즐거웠다. 한마디로 숲은 지루할 틈이 없는 곳이었다.


‘장난감을 버려라 아이의 인생이 달라진다.’ 책 내용 중 독일 슈투트가르트 숲에 있는 부모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숲 유치원에 대한 이야기 나온다.

이 곳에서 아이들의 하루가 인상적이다. 노래 인사로 숲 유치원의 하루가 시작되고 낙엽 위에 둥글게 서서 노래와 율동으로 준비운동을 한다. 아이들은 돋보기로 자연관찰 수업을 한 뒤에 각자의 소감을 발표를 하는데 이때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표현한다고 한다.

발표 시간이 끝나면 수레에 담아온 스케치북과 크레용으로 아이들이 숲에서 보고 느낀 것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 유치원의 하루라고 소개한다.

인지와 학습보다는 관찰하고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 다인 것이다. 심플한 하루가 인상적이었다.


숲이라는 넓은 공간을 아이가 다 사용할 수 있다는 느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경험은 아이들 뇌의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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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내 아이도 흙, 돌멩이, 꽃, 나뭇가지, 나뭇잎 등으로 자유로운 형태, 다양한 질감을 느끼며 더 재미있는 것들을 만들어냈다. 나뭇가지 끝에 잎사귀를 꽂아서 우산을 만들거나, 나뭇가지에 모자의 끈을 걸어서 크레인을 만드는 식이었다. 돌멩이는 죽 이어서 기차가 되었고, 낙엽이 으스러지는 소리는 과자 소리처럼 맛있게 들었다.

공장에서 찍어낸 플라스틱 장난감으로는 만들 수 없는 것들이었고, 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아이의 체력은 덤으로 좋아졌다.

거의 매일 숲에 오른 세 살 아이의 다리는 탄탄했다. 아이들이 흔하게 걸리는 중이염은 걸려본 적이 없었고 감기에 걸린 적도 한 손가락에 꼽힐 만큼 건강했다. 무조건 약을 먹지 않아도 며칠 쉬고 나면 금방 회복했다.


나에게 숲은 좁은 집을 벗어나 한 숨 돌리며 걷는 곳, 여유를 충전하는 곳이었다. 바깥공기, 햇빛은 육아로 지친 친 심신을 뽀송하게 해 주었다.

숲에 가면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존재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은 육아는 부담스럽고 엄마는 희생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숲이 내게 전하는 것 같았다.


그 느낌을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