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재미있다.
흥미로운 생명체 같다.
마구잡이로 그려놓은 낙서도 아이에겐 자신이 만든 귀한 작품이다. 커서 화가가 되겠다고 한다.
익숙한 동요 멜로디에 하고 싶은 말을 붙여 개사한 노래를 부르더니 이번에는 가수가 되겠다고 한다. 자신의 노래가 만족스러운 듯하다.
길거리 한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이리저리 되는대로 몸을 흔들더니 춤추는 사람이 될 거라고 한다. 춤추는 자신이 좀 멋지게 느껴진 듯하다.
블록으로 자동차를 만들다가 느닷없이 자동차를 연구하는 과학자가 될 거라는 아이의 말에 웃음이 났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부럽기도 했다.
아이는 스스로 만든 무언가와 자신의 것들을 진심으로 좋아했다. 점수도 넉넉하고 결과물에 대해 부끄러움 따위는 없었다. 그런 아이가 신기했고 아이의 모습에 나를 비춰보곤 했다.
자존감이란 아이의 저런 모습일까.
나도 아이와 같을 때가 있었을 텐데.
지금은 뭐 하나 하려고 생각만 해도 ‘어려울 거야. 잘 안될 거야.’이런 생각부터 떠오르는 건 왜일까.
열심히 그려놓고도 ‘이것 밖에 못 그리나, 이렇게 밖에 못하나’ 박한 평가와 구박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정보육으로 아이와 꽤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 속에서 아이의 자유로운 태도와 생각을 관찰하다 보면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었다. 아이는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쉽게 해내기도 하고, 자신 만의 방법을 창의적으로 시도하기도 했다.
어느 날 아이는 30cm 자 하나를 들고 한나절을 놀았다. 뭐하고 노는지 궁금해서 지켜보니까 자기 마음대로다. 아이 손에 쥐어진 30cm 자는 기차가 되었다가, 크레인이 되었다가, 드럼 채가 되었다가, 미끄럼틀이 되기도 했다. 자 하나가 자신이 갖고 놀고 싶은 장난감이 모두 되었다.
나에게 30cm 자는 30cm 자 밖에 되지 않는데, 아이에게 30cm 자는 자 외에 모든 것이 다 되는 것이었다.
'저렇게도 놀 수 있구나.' 신기했다.
뭐하나 시작하려면 최소한의 준비물은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늘 미루었다. 준비되지 않았으니까.
아이는 즉시 무언가가 될 수 있었다. 거리낌이 없었다. 생각과 함께 바로 실행하는 아이를 보면서 나도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미루지 말자고. 이미 있는 것을 활용해서 해보자고 생각했다.
아이가 행동으로 내게 메시지를 주는 느낌이었다.
아이를 가까이에서 관찰하다 보면 아이에게 배우는 점이 많았다. 여러 권의 자기 계발서보다 더 마음에 남곤 했다.
마음 상하는 일이 있으면 계속 곱씹으며 기분 나쁜 상태를 지속하는 나와는 달리, 아이는 속상한 일은 금방 털어버렸다. 돌아서서 웃을 수 있는 마음의 힘을 보여줬다.
아이의 순수한 행동들은 나에게 영감이 되었다.
아이의 유연함과 자유로움을 보며 나도 행동하고 싶어 지곤 했다.
서너 살의 예쁜 모습을 보여주는 아이를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어서 시를 써보기도 했고 그림을 다시 그릴 용기를 얻기도 했다. 끊임없이 자극을 주는 아이 덕분이었다.
온몸으로 다양한 메시지를 전해주는 아이는 내게 영원한 뮤즈 같은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