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 최적화된 쾌적함

아이도 좋고 엄마도 좋은 곳 2

by 마인드카소

크레파스를 손에 쥘 수 있을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고 엄마가 되기 전에는 디자이너였다.

아무도 깨지 않은 캄캄한 새벽, 혼자 일어나 그림을 그렸던 유년시절의 내가 아직 마음속에 남아있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풍경. 그림 그리기에 푹 빠진 어린 나의 새벽은 고요하고 평온했다. 내가 선택한 색의 크레파스. 그것을 잡은 내 손의 움직임. 그 움직임에 따라 하얀 도화지에 나타나는 형태. 내가 그으면 형태가 그려지고 내가 멈추면 형태도 멈춘다. 그 행위 자체가 어린 내가 느낀, 그림을 그린다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자 신비로움이었다.


크레파스나 색연필을 살 때는 무조건 색이 가장 많은 것을 사야 했다. 세상에 이렇게 예쁜 색이 많다는 사실이 어린 나를 흥분케 했다. 크레파스에서 느꼈던 색에 대한 환희는 세상으로 확장되었다. 세상의 모든 색이 흥미로웠다.



어릴 때 외할머니 댁에는 작은 마당이 있었다. 그곳에 쓰인 타일은 하늘색과 민트색이었고, 마당에는 석류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언젠가 아빠와 석류 열매를 하나를 따서 열어 보았다. 석류는 ‘짝’하는 짧은소리를 내며 두 동강 나더니 그 안에는 알알의 새빨간 보석들을 품고 있었다. 햇빛에 반사되어 루비같이 투명하게 빛나는 것을 본 어린 나의 입에서‘와’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눈을 뗄 수 없었다. 마당의 민트색 타일과 석류의 빨간색이 대비되어 더 강렬하게 인식되는 보색 효과를 그때 알았다. 이론이 아닌 경험으로.


석류 알맹이를 처음 보았던 순간! 찰나였지만 강렬하게 느꼈던 색에 대한 경이로움이 아직 내 안에 남아있다. 무수히 많은 기억들은 잊혔지만 그것만큼은 영원히 내 안에 머물기를. 석류에 대한 기억은 나만의 감수성으로 성장했다. 그 감수성 덕분에 아직까지 그림을 그리고 그림 보는 것도 즐기는 내가 되었다.




아이가 걷기 전부터 아기 띠에 매고 미술관에 함께 다녔다. 아이에게 그림을 보여주려고 미술관에 갔다기보다는 내가 그림이 보고 싶어서 미술관에 갔는데 아이가 함께 할 수밖에 없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처음에는 한 주의 보상처럼 주말만큼은 내가 좋아하는 것도 즐기자는 마음이었다. 혼자 가거나 친구와 갈 때도 있었지만 남편과 아이와 함께 하는 것도 좋았다. 남편이 아이를 봐주는 배려 덕분에 편안하게 그림을 볼 수 있었다.


누군가의 그림, 작품을 본다는 것은 무뎌지는 나만의 감각을 깨우는 일이었다. 육아로 뭉뚝해지는 나의 감각이 그림을 보는 행위를 통해서 ‘좋다, 그림 그리고 싶다’ 순간적으로 뾰족하게 깨어나는 그 느낌이 좋았다.

물론 당장 집으로 돌아가서 그림을 그리지는 못한 날이 부지기수였지만, 뭉뚝한 채로 방치하지 않고 주기적으로 깨워냄으로써 시간이 지나고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아이가 어린이가 되고 가정 보육을 하면서 미술관은 아이에게도 좋고 나에게도 좋은 곳이 되었다.

1차원적으로 좋은 점은 날씨가 덥고 추울 때 미술관은 시원하고 따뜻하다. 집과는 다르게 온습도가 최적화된 환경으로 쾌적함을 느낄 수 있다.


두 번 째는 평일에 가면 사람들이 많이 없기 때문에 여유롭게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어린이들이 체험할 수 있는 미술관은 주말이면 나들이 나온 가족들로 붐빈다. 반면 평일은 두세 명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한가하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좋은 점은 그림은 어느 누구와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보통의 우리는 그림을 보고 화가의 미술 사조나 미술사를 논하지 않는다. 색으로 선으로 형태로 표현된 이미지. 그 안에는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감성과 시선이 자연스럽게 통과한다. 아이는 어떻게 느끼고 아이 눈에는 그림이 어떻게 보일까. 궁금하다. 물어보면 대답 속에서 아이의 마음이 담겨 있기도 하고 뜻밖의 표현에 놀라기도 한다. 딱히 표현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좋다.




여러 미술관을 다니다 보면 전시 내용과 주변 환경 위치와 교통편 등 다방면을 고려했을 때 아이와 함께 가기 좋은 곳이 있다. 우리에게는 잠실 롯데타워 애비뉴엘 갤러리와 수원 아이파크 시립미술관이 그렇다.


집에서 잠실 애비뉴엘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다는 점. 전시 규모가 크지 않다는 점. 현대 작가 위주의 전시를 여는 편이라 컬러나 형태가 감각적이면서 주제가 무겁지 않았다. 가볍게 보는 즐거움이 있으니 아이와 함께 즐기기 좋은 것이다.

전시를 다 보고 석촌 호수 벤치에 앉아 준비한 간식을 아이와 나눠 먹곤 했다. 아이 텀블러 내 텀블러, 물통, 고구마, 빵, 과자, 과일 등등의 간식들. 꽤나 무거웠던 가방이 순식간에 가벼워진다. 기분 좋은 포만감을 느끼며 홀가분해진 가방을 둘러매고 아이와 걷는다. 호수의 물과 나무를 느끼며!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따뜻하고, 물에 비치는 반짝임이 아름답다. 퇴근 시간 전 귀가하면 아이도 나도 딱 좋은 하루 코스가 된다.


수원 아이파크 시립 미술관은 집에서 멀지 않다는 점. 다양한 전시관이 있어서 어린이를 위한 체험 전시가 종종 열린다는 점. 미술관 내 아이들 메뉴를 파는 카페가 있다는 점. 전시를 보고 미술관 앞 광장에서 놀거나 화성행궁을 산책할 수 있다는 점. 이렇게 다녀오면 그림도 보고 자연도 즐기며 산책도 하는 기분 좋은 일정이 된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5살인 지금까지도 입장료가 비싼 미술관은 가지 않는다. 일부러 무료이거나 저렴하지만 끌리는 전시를 가는 이유는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가 어떤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내 마음껏 관람하지 못하고 나와야만 한다면 속상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무료나 저렴한 곳은 언제고 나갔다 다시 들어와도 되기에 부담이 덜하다.


그럼에도 아이와 함께 많은 아티스트들의 그림을 탐험했다. 장 줄리앙, 김참새, 미사키 카와이, 최정화, 카를로스 크루즈 디에즈, 샘 바이 팬, 크릭 앤 칼, 장콸, 콰야, 하태임, 푸우, 노보 등등...


코로나 19가 터지고 자유로운 외출과 일상에 어려움이 있지만 상황이 조금 더 나아지면 미술관에 아이와 함께 부지런히 다니고 싶다.

그림을 본다고 눈에 보이는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면의 무언가를 튼튼하게 하는 힘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양한 그림의 표현을 보며 사람들의 다름을 품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다.

그림이나 예술이 주는 위안, 편안함, 아름다움, 새로움, 어떤 생각, 철학,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그 모든 것들을 즐길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란다.



다시 생각해보니 미혼일 때처럼 우아하게 그림을 감상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떤 때는 나가자고 용트림하는 아이를 달래느라 힘들었고, 소란을 피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사탕으로 유혹해서 반강제로 유모차에 앉혀놓은 적도 있지만 시간이 흐르니 다 추억이 되었다.


사람의 오감 중 가장 발달한 감각 기관은 시각이라고 한다. 내가 어릴 때 석류의 빨간색이 기억 속에 강렬하게남은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걷기 전부터 엄마 따라 그림 보러 다닌 아이를 보며, 시각적 감각이 발달하여 혹시 유명한 화가로 자랄까? 아니면 그림에 박식한 사람으로 자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지만 모두 괜한 기대라는 걸 안다. 아이의 직업과 취향, 취미 모두 아이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저 아이의 기억 한 편에 엄마랑 그림 보러 다녔던 기억이 행복하게만 남아있다면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내 기억에도 아이와 그림 보러 다녔던 기억이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