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도 좋고 엄마도 좋은 곳 3
아이를 임신하고 이사를 준비할 때 지역 지도를 보며 구하려는 집과 도서관의 거리를 본능적으로 탐색했다. 도서관을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거리여야 했다. 책을 끼고 사는 다독 가는 아니었지만 글을 좋아했다.
내가 초등학생쯤, 30대 후반의 늦깎이 대학원생이셨던 아빠를 따라 주말마다 도서관에 갔다. 아빠의 공부가 끝날 때까지 도서관에서 놀았던 기억이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는 즐거움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나는 어린이 열람실에서 책을 보고, 점심때가 되면 아빠를 만나서 식당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도서관 마당에서 놀던지 어린이 열람실에서 책을 보던지 여유롭기만 한 시간을 보내다가 어둑어둑해지면 책가방을 매고 아빠가 나를 찾아오셨다.
그렇게 고려해서 이사한 집에서 도서관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이다. 딱 좋다. 도서관에 가기 위해 왕복 차비를 쓰지 않아도 되고 걸어가면서 틈새 산책을 할 수 있는 위치. 덤으로 가는 길의 차도는 왕복 4차선에, 차가 많지 다니지 않아 조용하다. 인도도 넓지 않아서 아담하다. 인도 안쪽으로는 학교나 아파트 단지, 공원 내의 나무와 식물들이 자라나고 있다. 바깥쪽으로는 때론 키가 큰 가로수 나무가 때론 키가 작은 나무들이 서 있다. 걷는 내내 지루하지 않다. 여유가 느껴지는 길이랄까. 걷다 보면 강아지도 지나가고 자전거도 지나가고 아이들 웃음소리도 지나간다. 때론 사춘기 중학생 소년, 소녀들의 거칠지만 아직은 어린 목소리도 들린다.
이사 온 날부터 그 길 따라 참 많이도 걸어 다녔다. 아이가 태어나고 매일 자라나는 아이와 함께한 추억들이 길 곳곳에 스며있다. 첫눈에 반한 길이지만 아이로 인해서 더 의미 있는 길이 된 것이다.
아기 띠로 안아서, 유모차에 태워서, 걸음마를 연습하며, 킥보드를 타고, 잡기 놀이를 하면서 뛰거나, 손잡고 걸어서 도착한 곳은 도서관이었다. 아이가 걷기에도 딱 좋은 1km 남짓 거리.
가정 보육의 1등 공신은 지역 도서관이다.
코로나 19가 터지기 전 도서관은 돈이 없이도 언제든 편하게 들릴 수 있는 곳이었다.
무수히 많은 어른 책과 어린이 책, 쾌적한 온습도, 갈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정수기, 도시락이나 간식을 먹을 수 있는 휴게 공간, 이야기하며 놀 수 있는 도서관 마당, 나무와 풀, 꽃으로 가꿔진 정원에 벤치까지. 완벽한 곳!
살고 있는 지역 근처에 찾아다녔던 도서관을 생각해보면 대체로 주변 환경이 좋았다. 근린공원 또는 나무가 푸르게 자라고 있는 숲이 있거나, 놀이터가 있었다. 광교 푸른 숲 도서관과 영통 도서관, 기흥 도서관과 흥덕 도서관이 그랬다.
생각해보면 아이가 어릴 때부터 아이와 함께 한 도서관은 단순히 책만 읽었던 장소가 아니었다.
좋아하는 자동차 세계를 책으로 탐험할 수 있는 곳, 책에서 보았던 민들레를 실제로 만날 수 있는 곳, 도서관 마당에서 걸음마를 연습했고, 벤치에 앉아 느긋하게 가을 오후의 햇빛을 느꼈던 곳이었다.
도서관에 들어가기 전 혹은 가면서 아이에게 도서관에서 지켜야 할 예절에 대해서 미리 이야기를 해주었다. 일부러 발소리를 내거나 뛰지 말기, 조용히 말하기, 사서 선생님께 인사하기다.
늘 반복해서 이야기해도 어린아이는 순간적으로 장난을 치거나 뛰어다니기도 했다. 곤란하지만 즉시 주의를 주었다. 그래도 차분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도서관 마당으로 안고 나와서 밖에서 뛰어놀 수 있도록 했다. 때로는 공공장소 예절과 관련된 그림책을 챙겨서 보여주기도 했는데 이런 과정들이 반복되면서 아이도 조금씩 성장했다.
어린이 열람실에서 아이의 그림책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면 성인 열람실로 갔다. 미리 도서관 앱으로 빌리려는 책을 검색해서 위치를 파악해두고 목록을 정리해서 가야 했다. 성인 열람실은 청소년과 어른들이 조용하게 독서를 하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 아이와 함께 머무르는 시간을 최대한 단축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려움은 있었지만 아이와 함께라도 도서관에 와서 읽고 싶었던 책을 빌릴 수 있는 짬은 행복이었다.
아이가 네 살쯤 되자 무조건 책 들고 엄마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혼자 그림책을 찾고 탐독하는 시간이 생겼다. 아직 글씨를 읽진 못하지만 그림을 보면서 상상하고 그림을 읽는 것이다. 그 시간만큼은 잠시라도 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도서관은 아이와 나에게 좋은 곳이다.
도서관이 좋은 또 다른 이유는 엄마랑 함께 활동할 수 있는 어린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다.
아이가 3, 4살 때에는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엄마랑 책놀이’라는 프로그램을 신청해서 매주 수요일마다 참여했다. 또래나 동생, 한 두 살 많은 형, 누나가 있었고 아이들과 상호작용 하시며 재미있게 그림책을 읽어주시는 선생님이 계셨다. 그림책을 다 읽은 뒤 주제와 관련된 만들기나 놀이 등 참여 활동이 있었으니 더없이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심지어 필요한 모든 준비물은 도서관에서 무료로 제공해주었다.
봄이나 가을에는 도서관에서 어린이를 위한 연극을 했다. 인기가 좋아서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행사에 관심을 갖고 있다가 재빠르게 신청해야 하는데, 도서관에 자주 오가다 보니 게시판을 통해서 놓치지 않고 챙길 수 있었다.
코로나 19로 기존처럼 도서관에서 ‘엄마랑 책놀이’를 진행할 수 없지만 언택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매주 수요일 온라인 줌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난다. 환경은 달라졌지만 선생님과 함께 노래와 율동으로 인사를 하고 읽어주시는 이야기를 듣는다. 제공해주신 준비물로 독후 활동과 놀이까지 함께 하는 것이다.
진행되는 형태는 달라졌지만 책 놀이는 여전히 아이에게는 재미있는 시간이다. 엄마가 읽어주는 익숙한 방법이 아닌 선생님이 읽어주시는 또 다른 목소리 톤과 표현법이 아이에게 흥미로운 자극을 준다.
가정보육을 하면서 다양한 방면으로 도서관을 활용했다.
지금은 코로나로 열람실에 앉아서 그림책을 읽어주기는 어렵지만, 아이가 좋아할 만한 책을 빌려볼 수는 있다. 아이와 도서관에 오고 가는 길 위에 추억은 남을 것이다.
지역 도서관 사이트에 들어가서 검색해 보면 온라인으로 운영되는 책 놀이나 샌드 애니메이션, 그림책 저자와의 만남 등 아이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책 문화 프로그램들이 있다.
요즘은 오프라인의 제약은 있지만 여전히 도서관은 아이와 나에게 좋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