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생산한 쓰레기들과 마주하다

by 마인드카소

30대 초반. 결혼 2년 차였던 나는 오랜만에 친정에 들렸다. 찾을 것이 있어서 창고를 뒤지다가 심장이 쿵하고 떨어졌다. 무엇을 보고 그렇게 놀랐을까.


거기에는 내가 20대에 끄적였던 일기장과 그림을 그렸던 수십 권의 드로잉 북, 과제로 작업했던 캔버스들이 켜켜이 쌓여있었다. 1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의 먼지를 수북하게 뒤집어쓴 채로...




나는 2002 월드컵 학번. 지방 분교에서 제품 디자인을 전공했다. 고3 때 입시미술을 할 때 순수 미술학과에 가기를 간절히 소망했지만, 원하는 대학, 원하는 과에 갈 만큼 수능을 잘 보지 못했다. 원서를 넣는 날 미술학원 선생님은 “이 점수로 네가 원하는 학교의 회화과는 못 간다. 디자인과에 하나, 같은 학교 지방 분교의 디자인 학부에 원서를 넣어라!” 윽박지르는 선생님의 한마디에 1년을 소망했던 나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고, 디자인을 전공하게 되었다.


인생에서 딱 한번 돌아갈 수 있다면 대학 원서를 넣는 그때, 그 장소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다. 그때의 나는 왜 나를 믿지 못했을까.


미술학원 선생님들 포함하여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순수 미술보다는 디자인이 돈 벌기가 낫다며 잘한 결정이라고 축하해주었다.


나도 그렇게 합리화하며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디자인 전공은 뭐 나쁘지 않았다. 그냥저냥 따라갔다. 학기 점수도 중간 정도. 과제에 대한 열정도 중간 정도. 동아리 활동도 중간. 교우 관계도 중간. 연애도, 노는 것도, 재미도 중간. 모든 것이 중간에서 왔다 갔다 했다.


그럼에도 나의 마음에는 그림에 대한 욕망은 늘 있었다. 그래서 다른 과의 미술과목을 이수하기도 했다.




20대의 내가 갖지 못한 그림에 대한 욕망을 담아 그렸던 그림들을 친정 창고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10여 년 만에...


풋풋했던 20대에 그렸던 그림들을 보고 내 마음은 애틋했을까?


전혀. 나는 끝까지, 똑바로 나의 그림들을 대면하지 못했다. 창고에 남아있는 스케치북들을 몽땅 끌어냈다. 가정용 수레에 실어 폐지 버리는 곳으로 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미련 없이 버렸다.


지금도 그때 버린 그림들에 대해 죄책감이나 후회가 전혀 없다.


‘내가 창작이랍시고 엄청난 쓰레기를 생산했구나.’

죄책감이 들었다면, 세상에 쓰레기를 너무 많이 생산했다는 사실이다. 그 스케치북들은 쓰레기로 보였다. 쓰레기.


왜 쓰레기로 보였을까.

잘 그리려고 했던 노력보다는 그림에 대한 욕망만을 색으로 표출해 놓았다고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고작 이런 그림들을 그려놓고는, 지금은 디자인을 전공하지만, 나중에는 그림을 그려서 성공할 거라며 속으로 우쭐대던 20대의 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그림을 그냥 그려주는 것은 나의 수고가 엄청나게 아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림 실력도 쓰레기였지만, 노력은 없고 자만심만 가득했던 나의 마음도 쓰레기였다.


그렇게 20대에 생산한 엄청난 쓰레기를 버리고 나는 그림과 물리적으로 더 멀어졌다. 마음에는 늘 작게나마 그림을 품고 있었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멀리 미뤄 두기만 했다. 다시는 쓰레기를 생산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마트에 가지 않아도 장바구니를 항상 챙겨서 다닌다. 택배 포장에서 사용되는, 버려질 아이스 팩 생각에 냉동식품은 택배로 주문하지 않는다. 1회용 물티슈도 출산 준비물에 있어서 한번 샀을 뿐, 다시는 사지 않고 육아를 할 만큼 쓰레기를 줄이는데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 내가, 나의 시간과 에너지, 물감 값을 들여서 내 손으로 이 세상에 쓰레기를 생산하고 싶지 않았다. 진심으로.



KakaoTalk_20200306_182843847.jpg 그 이후에 천천히 쌓인 드로잉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