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디자인과를 졸업하는 해에 바로 취직했다. 4년 내내 중간의 점수를 유지했던 나는 대기업은 지원해 볼 생각조차 못 하고 적당한 곳에 입사하게 되었다. 가방을 디자인하고 생산해서 대기업이나 브랜드에 납품하는 ODM 회사의 디자인실이었다.
당연히 디자인실 신입 새내기 막내였다.
이 곳에서도 나의 몹쓸 자만심이 날뛰는 통에 1년을 못 버텼다. 대기업 디자이너의 디자인을 받아서 샘플을 제작하고 무사히 생산하게 하는 중간 역할을 하는 것이, 그것이 하루 종일 해야 하는 나의 일이라는 것이 그렇게 자존심이 상했다.
일을 배울 생각보다도 막무가내로 타인의 디자인은 받기 싫고 나도 내가 직접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욕망뿐이었다.
퇴사를 하고, 작은 국내의 핸드백 브랜드로 이직했다. 막내 디자이너의 고단함을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 월급이 밀리기까지 했다.
그 이후 한번 더 이직을 했고 신규로 론칭한 브랜드의 디자인실에서 하게 되었다. 하지만 신규 사업은 투자 대비 수익은커녕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출이 나오지 않았다. 희망이 없었다. 결국 회사에서 내 몸을 담고 있던 신규 브랜드 사업을 접기로 결정하면서 나도 함께 직장인 디자이너로의 삶은 접기로 했다.
총 경력 8년을 채우고 퇴사를 했다. 결혼 3년 차였고, 아이는 없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 나 스스로 경제적 자립을 하고 싶어서 퇴직금으로 나의 브랜드를 해보기로 결정했다.
8년 동안 해온 일이고, 한창 디자이너 브랜드라는 이름으로 작은 개인 브랜드가 생기던 때라 나도 그 길에 들어서 본 것이다.
작은 건 오래오래 생각하고, 큰일에는 참 생각이 짧고 과감했다.
판매처도 갖춰지지 않은 한 개인이 판매를 해야 하는데, 나는 회사에서 생산하던 수량만큼, 지갑과 클러치, 소품들을 생산했다. 최소 50개, 보통 80개, 어떤 건 100개씩. 스타일도 하나두 개가 아니라 컬러별 나누면 몇십 가지였다. 내가 만들면 잘 팔릴 줄 알았다. 이 놈의 근거 없는 자만심이 또! 나를 끝없이 추락하게 했다.
치열한 공부와 노력 없이 해왔던 과거의 경험에 의존해서 브랜드를 꾸려나가기에 현실은 냉정했다.
당연히 사무실 구할 여력이 되지 않아서 집에서 일을 했다. 공장에서 그것도 베트남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되어 물 건너온 제품의 박스들이 거실도 없이 좁은 다세대 주택 102호를 신발장에서부터 침실 한편, 부엌까지 테트리스처럼 가득, 가득 채웠다. 테트리스는 일자로 딱 맞추면 사라지기라도 하지만, 현실은 상자가 넘어지지 않고 잘 쌓일 뿐이었다.
신랑이 출근하고 혼자 집에서, 책상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박스 안 제품들이 날 비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웃지 마!
너희를 어디다 팔지?
막막했다.
처음에는 카페 24에서 도메인을 사서 사이트를 만들었다. 오픈 소식을 알렸을 때 지인들이 조금 사주었다. 그러고 사이트는 조용해졌다.
한 명의 개인이 물건을 만들어서 온라인에서 판매한다는 건 마치, 망망대해에서 물건 살 사람을 찾는 모양새랑 비슷했다.
그다음에는 온 오프라인의 편집샵에 입점 제안서를 넣었다. 이름 있고 유명한 곳은 거절당하기 일쑤였기 때문에 규모를 따지지 않고 다 넣었다. 스타일이 많아서 제품을 등록하는 일도 만만하지 않았지만 어디서든 당장 하나라도 판매하는 것이 중요했다.
입점 후 담당 MD가 신규 브랜드로 메인 페이지 한 구석에 띄워주었을 때만 조금 팔릴 뿐이었다. 그때 확 치고 나가서 긍정적인 매출을 보여주지 못하면 재기할 수 있는 기회는 다시없었다. 입점 이벤트 이후로 많은 온오프라인 편집샵도 조용해졌다.
나도 조용해졌다.
집안 곳곳에 적재되어 있는 상자들을 보면 조용히 눈물이 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프리마켓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캐리어에 물건을 들고나가서 할인가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판매할 수 있는 사람이 당장 내 눈앞에 지나다니까 집에 앉아서 온라인 주문을 기다리고 있을 때보다는 돈이 벌리긴 벌렸다. 즐겁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팔았다. 당장 하나씩이라도 판매해서 재고를 소진하는 것이 너무 중요했다.
새벽마다 캐리어를 끌고,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많은 외부 프리마켓, 백화점 마켓을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솔직하게 프리마켓에서도 매출이 0원, 아니 교통비와 밥값이 들었으니 마이너스였던 날도 왕왕 있었다. 진정한 고달픈 나날의 시작이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일의 보람보다는 고단한 노동, 해결해야만 하는 숙제 같은 것이 되어버렸고, 목표도 하나였다. '내가 쓴 돈만큼만 벌자.' 그렇게 1년을 미친 듯이 캐리어를 끌고 다녔더니 내 인건비는 없다고 쳤을 때 끝은 있었다. 그리고 아기가 생겼다.
폐업신고를 하며 생각했다.
‘내가 또 과거 경력만 믿고 자만심으로 엄청난 쓰레기를 생산했구나. 굳이 이 세상에 생산하지 않아도 될 물건들을 내 돈, 내 시간, 내 에너지를 들여서 만들었구나.‘
내가 또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나의 실패를 다시 한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잘 팔리고 있고 멋진 물건들이 많은데 나까지 비슷한 물건을 만드는 것이 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일까? 혹은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일까? 대답은 고민할 것도 없이 "NO"였다.
공장에서 생산되어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이 필요로 하지 않는, 경쟁력 없는 물건은 결국 심각한 쓰레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하나 개별로 비닐 포장되어 있는 멀쩡한 쓰레기. 공장을 돌리느라 에너지를 낭비하고 환경을 해치고 나의 노동력을 포함하여 누군가의 노동력이 불필요하게 사용되기 때문이다.
다 팔지 못하고 남은 일부 재고는 여전히 집에 쌓여 있다, 나의 처절했던 시절을 함께 해서인지 짠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20대에 그렸던 그림처럼 쉽게 버리지 못하고 함께 이사를 다닌다.
지금도 재고 박스들을 볼 때마다 다짐한다.
다시는, 다시는 이 세상에 쓰레기를 생산하지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