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가 읽어주는 세상 이야기
최근 모-연예인의 카톡 단톡방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폭로전이 점입가경이다. 매일 새로운 사실들이 터져 나오고 있으며, 그에 따라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연예인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가고 있다.
그동안 이런 일들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당연히 많은 사람들에게 분노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에 대한 논란도 분분하다.
어떤 이들은 인성에 문제가 있는 일부 연예인의 일탈이라고 생각하며 그들에 대해 분노하기도 하며, 그동안 암묵적으로 진행되던 썩은 상처가 드디어 터졌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또한 이번 기회를 통해서 보다 건강하고 합리적인 사회가 되기 위한 성장통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이런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부작용도 일어난다.
전혀 사실이 아닌 일들이 찌라시라는 이름으로 유포되어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받기도 한다. 또한 냉정하고 법률적인 판단이 필요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감정적인 마녀재판처럼 흘러가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감정적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판결이 나오는 경우 부정적인 법감정이 생기거나 사법부에 대한 불신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특히,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보면 특종을 터트린 방송사는 시청률과 관심 차원에서 대박을 터트렸다. 이로 인해 다른 방송사들도 너나 할 것 없이 해당 사건과 연예인들의 뒤를 캐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그로 인해 다른 방송사나 언론에서 발표되지 않은 사건들을 특종이라는 이름으로 보도하고 있으며, 그 선정성과 감정적 표현들이 더욱 자극적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염려하게 된다.
급기야는 대표적인 공영방송이 자사의 최고 인기 프로그램의 핵심 멤버들의 골프 중 일어났던 도박 사건을 자사 뉴스에서 특종으로 보도하는 무리수(?)까지 일어났다.
이를 무리수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그동안 해당 연예인들로 인하여 크게 이득을 얻었던 방송사들이, 그리고 묵인했던 것이 아니었는가 의심을 받던 방송사들이, 특종 경쟁에 그들을 이용(혹은 희생/왜냐하면 결국은 그들을 버리거나 그들에게는 큰 타격이 되기 때문이다)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더욱 기이한 현상은 방송사가 문제라고 보도한 후 막상 본인은 사과하고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를 했는데, 오히려 시청자들이 하차 반대를 하고 보도 내용을 비판하는 현상마저도 생기고 있다.
이 글에서는 누구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기회에 대단히 애매하거나 혼란스러울 수 있는, 우리 사회나 조직을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도와줄 수 있는 ‘건강한 내부고발’과 다소 애매하고 부정적일 수도 있는 ‘고자질쟁이’의 차이에 대해서 한번 되돌아보고자 한다.
‘건강한 내부고발’과 ‘애매한 고자질쟁이’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음의 세 가지 차원에서 볼 수 있다.
‘건강한 내부고발’과 ‘애매한 고자질쟁이’의 첫 번째 차이는 해당 행동의 “의도”이다.
‘건강한 내부고발’의 경우에는 ‘의도’ 자체가 건강하고 선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비록 고발을 통하여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사회적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모두 함께 분노나 고통을 겪을 수는 있지만, 고발을 통하여 심각한 문제점을 제거하거나 혹은 보다 성숙한 조직과 사회가 되고자 하는 선한 ‘의도’가 있다.
반면에 ‘애매한 고자질쟁이’의 경우에는 의도 자체가 ‘사사로운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거나, 혹은 타인에 대한 일방적 비난이거나 혹은 개인적 감정 상의 불편감을 해소하는 방편인 경우가 많다. 이런 의도를 가진 경우에는 폭로 내용도 지엽적이거나 단편적이며, 충분한 근거나 논리를 가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폭로나 고발의 의도가 선하거나 혹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건강한 내부고발’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개인의 사사로운 목적을 위한 것이라면 ‘애매한 고자질쟁이’ 수준의 고발인 것이다. 회사 내 비리나 잘못된 점을 공익적 의도를 가지고 고발한다면 이는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당한 불이익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고자질쟁이’가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공익 신고 후 신고의 대상자들은 신고의 내용보다는 신고자의 의도를 걸고넘어진다. 신고자도 부도덕하며 문제가 있다고 비난하면서 관점을 흐리고 자신들의 과오를 피해 가려고 한다. 하지만 순수한 의도로 신고를 한 경우에는 아무리 의도를 걸고넘어져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로 인한 개인적인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건강한 내부고발’과 ‘애매한 고자질쟁이’의 두 번째 차이는 해당 행동으로 인한 “결과”이다.
비록 사회적 이슈를 불러일으키고 대중의 분노를 자극하며 상당수의 사람들이 피해를 받더라도 ‘건강한 내부고발’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즉 성장통을 겪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다 건강하고 성숙한 사회와 조직이 되는 계기로 작용한다. 그래서 경찰과 업소 간의 불법적인 유착관계가 정리되고 보다 합리적인 법질서의 운영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동안 부지불식 간에 이루어졌던 불법적인 행동들에 대한 진지한 각성과 반성이 일어난다.
그런데 ‘애매한 고자질쟁이’의 경우에는 장기적인 성장이나 발전 없이 단순한 짜증이나 분노, 혹은 더 극한 대립을 일으키는 선에서 그치고 만다. 이 사회의 건강한 발전이나 성숙은 없이 이전투구의 싸움 양상을 보이면서 결국은 고발한 사람이나 고발당한 사람들 모두가 비난을 받는 결과 만을 낳는 경우들이 많다.
이처럼 폭로나 고발의 결과가 사회나 조직의 성장을 가져오는 경우에는 ‘건강한 내부고발’로 볼 수 있으나, 감정적 상처만을 남기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그것은 ‘애매한 고자질쟁이’ 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국회의원들이 다른 당이나 그 당의 국회의원들을 비난하거나 문제점을 폭로할 때 단순히 짜증과 분노만 일어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문제에 대한 성찰이나 반성’ 없이 ‘타인들을 비난’하기만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십 년을 서로 비난해도 딱히 서로 발전하고 성장했다는 느낌은 없다. 단지 국민들만 짜증 날 뿐..
하지만 개인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가지고 어렵사리 발표하는 공익신고자들의 내부 고발을 존중받는 것이다. 공익신고로 인하여 내부적 문제를 해결하고 더욱 건강한 조직과 사회를 만드는 결과를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는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이 사회를 살아갈 이후의 사람들에게도 항상 이익이다.
‘건강한 내부고발’과 ‘애매한 고자질쟁이’의 세 번째 차이는 사회나 조직 전체 수준에서의 “공감” 여부이다.
‘건강한 내부고발’의 경우에는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며, ‘정말 필요했던 내용’이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용기를 낸 사람에 대해서도 큰 박수와 격려를 보내게 된다. 왜냐하면 그 폭로나 고발이 필요했던 것임에 틀림이 없으며, 그로 인한 결과도 긍정적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애매한 고자질쟁이’은 분열과 대립을 불러일으킨다.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으로 나뉘거나 혹은 충분한 공감을 일으키지 못하고 고자질 한 사람이 오히려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 이유는 충분한 사회적 공감을 일으키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즉,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도 충분히 납득이 되고 필요하다고 생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고 박수친다면 그것은 건강한 고발이다. 하지만 의견이 분분하고 논란이 생기며, 오히려 조직이나 사회를 분열시키고 대립을 심화시킨다면 그것은 불필요한 고자질인 경우가 많다.
단, 건강한 고발도 일부에게서는 반발을 살 수도 있다. 하지만 반발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니 자신들의 이익과 관련하여 반발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제대로 한 고발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면, 그것은 건강한 고발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누가 잘못을 했다' 혹은 '안했다'에 대한 판단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혹은 무엇이 문제라고 비판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현상에 대해서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건강하고 합리적인 관점에서 조망하고 평가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관점의 건강한 비판과 반응은 ‘건강하고 필수적인 내부고발’ 만큼이나 필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건강한 내부고발은 증가하고 그릇된 고자질쟁이들이 줄어들면서 우리 사회가 더욱 성장하고 결과적으로 우리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 구성이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로서 현재의 상황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법적인 판단을 떠나서 우리 국민들이 느끼는 ‘공분’이 걱정이다. 누가 우리 국민들을 자꾸 분노하게 하고 행복지수를 떨어뜨리는가? 그나마 세상에서 상처 받고 힘든 마음을 가지고 나에게 찾아오는 나의 내담자분들이 이번 사건을 거론하면서 더욱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화가 난다.
제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발 건강하고 합리적 사회가 되고, 우리 모두가 서로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고자 하는 노력에 집중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 반드시 겪어야 하는 과정 상 고통이라면 이는 어쩔 수 없이 감당하고 이겨내야만 한다. 신체적 상처도 필요하다면 수술이라는 고통을 감수해야 하며, 치료 기간 동안은 참고 견디어 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신체적인 건강이 회복되고 다시금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마찬가지로 작금의 현실은 우리에게 많은 분노와 실망, 그리고 마음의 상처를 가져온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것이 우리 사회와 조직을 위한 성장통이라면, 좀 더 합리적이고 균형적인 마음을 가지고 견디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노력 모두는 보다 건강하고 사회가 되고, 궁극적으로는 구성원들이 결과적으로 만족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하는 데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그래야 과정을 이겨낼 수 있다. 그래야 과정을 견딜 수 있는 것이다.
추신.
부디 이번에 용기내어 이슈를 제기하신 그분께서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의도 자체는 본인만 알겠지만, 결과나 공감 차원에서는 분명히 긍정적이었다고 생각하시기 바라며, 본인의 용기로 인한 긍정적 가치와 앞으로 있을 건강한 변화와 발전에 뿌듯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지금 두려움과 걱정에 떨고 있을 것이며, 현재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로 인한 부담감과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 글이 어렵게 용기를 내신 그분께 다소라도 위안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