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박사 레오 Feb 20. 2021

'학교 폭력'과 '어릴 때의 철없는 행동' 간의 차이

Photo by Kat J on Unsplash



0. 왜 논란이 확대되는가?


체육계 및 배구계의 학교 폭력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습니다. 

일견 피상적인 흐름만 보면 "'학교폭력 폭로' - '가해자 사과'"의 순서로 갔습니다. 

그런데도 이 논란이 잠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본인들의 행동이나 주변 사람들의 부적절한 처신이 더욱더 불을 지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해당 가해 선수들에 대한 양해와 배려를 구하는 가장 큰 논리인 '어릴 때의 철없는 행동'이라는 부분과 관련해서만 언급하고자 합니다. 



1. '어린 시절'의 조건 


우리나라에는 촉법소년 제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만 10세 미만의 경우 형사적 사건의 경우에도 스스로 잘못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형사처벌 자체를 면제해줍니다. 

그런데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경우에도 유사한 이유로 형사적인 처벌을 면하게 해 줍니다. 

이 연령대를 촉법소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내용에 따라서는 보호처분이라는 것을 해서 관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제가 법률 전문가가 아니라서.. 틀린 점이 있다면 언급해주시기 바라며, 수정/반영토록 하겠습니다)


즉, 만 14세 이상이 되면 기본적으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인식이 있으며, 그에 대한 책임도 따른다는 것을 수용해야 합니다. 

특히 그 행위 내용이 타인에게 심각한 심리적 및 신체적인 손상을 줄 수 있는 행위라면 더욱더 그렇습니다. 

게다가 그 행위 내용이 문제의식 없이 반복되고 지속되었다고 한다면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사과나 반성도 잘못된 수준을 고려하여 진지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가해자들이 '어린 시절'이었기 때문에 잘못을 용서해주어야 한다면, '어린 시절'이었기 때문에 더 상처를 받았을 피해자들 생각도 해야 합니다. 


특히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내 자식이라는 이유로, 혹은 나와 가까운 사람이라는 이유로 이를 주관적으로 판단하여 함부로 선처나 용서를 바라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린 시절 양육과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본인들의 책임을 먼저 반성하고 사과해야 할 것입니다. 



2. '철없음'의 조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사회적 성숙의 완성되지 않았으며, 시행착오를 통한 자아정체감을 형성하고,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 성장하고 있는 단계의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성인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소위 '철없을 때'라는 점을 인정해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철없는 행동'이라고 양해해주는 데에도 조건이 있습니다. 


첫 번째 조건은 의도의 문제입니다. 

악의적인 의도가 없었다면 '철없는 행동'으로 인정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친구에게 장난을 쳤으나 그 정도가 과했다고 하면 그 정도는 철없는 행동이라고 봐줄 수 있겠지요.

그런데 행동의 내용이 악의적이라고 하면 이는 '철없음'으로 봐주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두 번째 조건은 행동의 결과입니다. 

아무리 철이 없는 행동이며, 악의적인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가 타인에게 심각한 손상이나 위해가 되었다고 하면 그 책임을 면할 수는 없습니다. 

'철없는 시절'에 '악의적인 의도'는 없었으나 타인의 팔을 부러트리거나 신체적 상해를 입힌 것이라면 어떨까요?

아마도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상해가 심리적인 것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피해를 당한 사람이 성인이 되어서도 후유증이 남을 정도로 심각한 정도의 심리적 상처와 손상을 주었다면.. 아마 쉽게 용서받기 어려울 것입니다. 


세 번째 조건은 후속 조치입니다. 

철없는 행동으로 양해받기 위해서는 핵심적인 몇 가지 조치들이 필요합니다. 

그 첫째는 철없는 행동에 대한 문제 인식이며, 둘째는 행동에 대한 '사과' 등과 같은 적절한 조치를 했는지 여부입니다. 셋째는 이후 철없는 행동이 반복되지 말아야 합니다. 

즉, 철없는 행동에 대한 문제 인식이 없다면 이는 그들의 관리나 교육을 담당한 어른들이 큰 잘못을 한 것이며, 사과 등과 같은 조치가 없고 문제를 지속적으로 반복했다면 이는 양해받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단순히 '철없음'으로 보기에는 '의도적이고, 목적적이며, 악의적인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3. 용서의 조건


아무리 '어린 시절'의 '철없는 행동'이라고 하더라도 용서를 받을 수는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는 '진지한 사과와 반성'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여기에서의 핵심은 단순한 사과가 아니며 '진지한 사과'와 '반성'입니다. 

만약 사과의 진지함이 결여되어 있으며, 깊이 있는 반성이 없다면 용서받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피해자들의 상처가 회복되기 위한 아주 기본적인 전제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적어도 피해자들의 피해 호소문의 양보다 몇십 배는 많은 사과문이나 반성문이 있거나 그 내용 상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고통스러운 반성과 후회, 그리고 피해자들에 대한 공감과 그로 인한 더욱 깊은 반성과 후회 정도가 나타난다면 그래도 용서를 고려해볼 만한 상황이 됩니다. 


둘째는 '피해자의 손상 수준 및 회복 여부'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진지하게 사과를 하더라도 피해자의 손상이 극심하고 문제가 되는 행위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상황이라면 이는 용서받기 어렵습니다. 

충분한 사과 및 진정성 있는 사과를 통해서 피해자들의 심리적 손상과 트라우마가 해결되었는지에 대해서 우선 검토되어야 합니다. 

즉 용서를 하고 안하고의 문제는 피해자의 피해 수준과 입장에서 결정되어야 하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만약 피해자들이 아직 고통 속에 있거나 그들이 충분히 사과라고 느끼지 못한다면 이는 용서받기 어렵습니다. 


셋째는 이후의 '가해자들의 손해 수준'입니다. 

피해자들이 용서를 했다고 하더라도 가해자도 그에 준하는 처벌이나 불이익이 있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는 피해자들이 입었던 손해에 준하거나 혹은 사회적 통념 상 충분히 문제 행동의 대가를 치렀는지에 대한 판단에 따르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법적인 처벌뿐 아니라 사회적 불이익이나 부당한 행동을 한데 대한 개인적 손해나 그 대가는 있어야 합니다. 

만약 가해자들은 이전과 동일한 수준의 대우나 부귀영화를 누리며, 피해자들의 손상만이 남는다면 이는 공정하다고 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4. 왜 논란이 지속되는가?


현재 문제가 진정되지 않고 지속되는 이유는 이상에서 언급한 요건들이 잘 해결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 밝혀진 학교 폭력의 내용이 악의적이고 폭력 수준 자체가 과하고 반복적으로 일어났음. 

2) 자신이 피해를 당했을 때에는 고통스러워하면서 자기가 했던 행동으로 인한 피해자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깊이 공감하지 못하는 등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약함. 

3) 단 한차례의 사과 이후로는 별다른 사과나 반성의 행동이 보이지 않음. 

4) 사과 이후의 행동이 진지한 반성이나 다시는 문제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나 노력보다는 '용서'나 '선처'해야 한다는 기류가 더 크게 감지됨. 

5) 이 문제를 해당 선수들의 문제로만 치부하고 마치 본인들은 책임이나 문제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그 당시의) 어른들이나 (현재의 이익 때문에) 문제를 끝내려고 하는 기관들의 행동이 더 문제를 확대함. 

6) 그 어디에서도 피해자들에 대한 배려나 관심을 찾아보기 힘듦 ㅠㅠ



5. 올바른 해결방법은?


이와 같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문제들이 생기면 저 개인적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특히 이와 같은 고통을 겪었으면서도 침묵하고 있는 다수의 말없는 피해자들이 받고 있을 고통을 생각한다면 더욱더 좋은 방향으로 빨리 해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바라는 해결방법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문제가 된 선수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그리고 다양한 방법으로 사과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누가 봐도 '아.. 잘못을 뉘우치고 있구나!',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네..!', '앞으로는 안 그러겠네!'라는 확신이 들 정도로 적극적으로 사과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피해자들이 '그래 그 정도면 됐어! 나도 이제 마음의 한을 풀게!! 나도 이제 예전 일을 정리하고 다시 열심히 살 테니, 너도 열심히 바르게 살아라!'라는 글이 올라오면 좋겠습니다.  


2) 본인은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처럼 말하는 부모들이나 관련 기관들도 진지한 반성과 사과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가만히라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만 10세 미만의 사리분별력이 없는 아동들이거나 촉법소년의 경우에도 부모는 민사상의 책임을 면제받지는 못합니다. 그만한 관리나 양육 상의 문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본인들이 '몰랐다'라고 하는 것은 올바른 행동이 아닙니다. 기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일이 몇 번을 발생했어도 해결한다고만 말로 하면서 반복된데 대한 문제의식과 사과부터 하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3) 가해 선수들에 대한 용서나 배려는 나중에 논의하였으면 합니다. 그 전제로 '본인들이 충분한 사과와 반성을 했다는 증거'들을 보일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우리가 아닌, 특히 가해자의 부모나 관련자들이 아니라 '피해자들의 용서'가 이루어진 후에 언급하거나 고려하기를 바랍니다. 엉뚱하게도 피해자들은 빠져있고 다른 사람들이 나서서 용서와 배려를 운운할 때는 아닌 것 같습니다. 




임상 현장에서는 이와 유사한 일들은 많이 보게 됩니다. 

학교 폭력뿐 아니라 성희롱이나 직장 내 괴롭힘의 피해자와 가해자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이 글을 통해서 바라는 것도 피해자들의 고통이 가능한 한 줄어들고 해결되기를 위하는 마음입니다. 


만약 성희롱이나 성폭력, 혹은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가 단 한 번의 사과만으로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어느 정도의 노력을 해야 그나마 피해자들의 마음이 치유되고 용서할 마음이 생길까요?

아직도 피해자들은 고통 속에 있는데, 가해자의 인권과 용서와 배려를 언급하는 것이 적절할까요?

특히 주변 사람들이 나서서 피해자들에게 '잘 몰라서 철없이 한 행동'이나 봐주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근본적으로 우리 모두의 관심이 가해자에 집중되지 말고 피해자에게 기울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정 피해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유사한 피해를 받았던 피해자들을 위한 배려와 더 이상의 동일한 피해자들이 발생하지 않기 위한 노력들에 집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피해자의 고통과 우리의 분노를 해결되지 않을 것이며, 똑같은 문제로 고통받는 피해자들이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의 심리학. 폭력의 심리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