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박사 레오 Feb 14. 2021

오늘의 심리학. 폭력의 심리학

Photo by CHUTTERSNAP on Unsplash



1. 송포유라는 프로그램을 아십니까? 


2013년 모방송국에서 'Song for You'라는 프로그램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가수 이승철씨와 엄정화씨가 두 학교를 담당하여 합창 배틀을 하였으며, 이를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의 성장과 변화(?!)를 보여주고자 했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원래 취지는 비행청소년을 노래를 통해 갱생시키겠다는 공익성 예능 프로그램이었지만 많은 '비행 행동에 대한 미화'나 '변화의 진정성' 등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프로그램의 적절성이나 실패 여부를 떠나서 관련 전문가로서 저의 초점은 '해당 학생들로부터 괴롭힘을 받았던 조용한 시청자들'이었습니다. 

방송사 측에서는 무슨 생각과 의도로 그들을 화면에 내보냈으며, 그들이 깨닫고 변화하고 있는 뉘앙스(?)의 편집을 하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그들의 모습이 TV에 나오는 것만으로 소스라치게 놀라고, 과거의 아픈 기억에 대한 재경험으로 고통받았을 피해자 친구들이 떠올라 내내 불편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마도 지금과 같으면 첫 회를 방영하자마자 아마 인터넷이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그들로부터의 폭력을 당했던 피해자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며, 이제는 더욱 성숙해진(?) 시청자들도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분명히 문제를 지적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당시는 이와 같은 폭로를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으며, 인터넷 상의 이슈화의 강도가 지금 같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중간점검 후 두 학교가 피를 보는 칼부림을 했다는 일부 SNS 저격글들이 있었으나 방송에서는 아무 언급도 없었고 사실 여부 확인도 없이 조용히 넘어갔습니다. 



2. 2021 체육계 (과거) 학폭 사건


최근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충분히 책임지고 성숙한 문제 해결 방법을 하는 것이 마땅한 성인 운동팀에서 웃지 못할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특정 선배를 저격하고 그에 따른 피해자 코스프레로 분위기를 만들던 모 체육인이 오히려 자신의 과거 행동이 폭로되어 사과문을 발표하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신속하고 진지한 사과로 인하여 진정되는 듯한 국면이었던 사건이 자신이 비난했던 특정 선배와 언팔을 하면서 그 진정성이 의심되어 논란이 지속되는 결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와 같은 사건들을 조망할 때에는 가능하면 객관적으로 명백한 팩트 및 팩트에 준하는 합리적인 의심 정도 수준의 가설들만을 가지고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억울한 일이 발생하거나 여론에 휩쓸려 자극적이고 무가치한 감정적 싸움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팩트야 당사자들만 알겠지만 현재의 알려진 정보에 의거하면 몇 가지 확실한 사실(혹은 사실에 준하는 가설)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이슈가 된 선수들은 과거 심한 학폭의 가해자였음 

2) 가해자분들이 유명 배구선수가 되어 사회적으로 주목받고 방송에 나오더라도 피해자들은 과거의 일을 덮고자 하고 침묵하고 있었음

3) 본인들이 주축으로 활동하던 팀에서 감독도 함부로 못하는 대장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됨 (최고 연봉급의 선수였으며, 감독의 SNS 통제 등이 먹히지 않았던 사실들을 고려할 때..)

4) 그런 팀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배가 들어왔음. (단, 그 선배의 경우 선배로서의 책임감도 강하고 체육계 및 세간에서 인성이 좋기로 소문난 사람이었음)

5) 갈등이 발생하였으며, 본인들이 불편감을 겪은 것으로 판단됨 (정황 상 어떤 갈등인지는 추론이 가능하나 개인적 의견이 될 수 있으므로 생략함)

6) 본인들의 불편함을 SNS에 흘림. 단, 흘리는 방식이나 내용이 좀 자극적이고 감정적인 경향을 보임. 

7) 그들이 SNS에서 표현한 것과 유사한 피해를 그들로부터 받았던 과거의 피해자들의 상처와 분노를 자극하였음. 

8) 피해자분들의 SNS 공격으로 인하여 사회적인 이슈가 됨. 

9) 곧바로 인정하고 사과하며 자숙하겠다고 사과문을 발표함. (실제 피해자들에게 연락을 취하였다고 함) 

10) 자신들을 불편하게 했던 선배와 언팔을 하고 하루 만에 SNS에 묘한 뉘앙스의 글을 남김 (언팔을 한 행동의 의미에 대해서는 본인들에게 확인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추청에 불과하므로 생략함)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각 항에 대한 해석과 판단은 개인적으로 하는 것이며, 제가 확인하고 면담한 것도 아닌 것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 자제합니다. 

하지만 그 핵심은 '본인들이 타인에게 강요했던 나쁜 행동에 대해서는 문제의식이 없다가, 본인들이 (유사한) 피해를 받았다고 느끼면서 이슈화 했던 것'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혹자는 이를 '피해자 코스프레'라고도 하며, '내로남불'이라고 칭하기도 하더군요. 

그런데 본인들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문제가 터졌으며, 사회적으로 대단한 반향을 일으키는 사건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어찌 되었건 사건의 정황은 이렇습니다. 



3. 폭력 가해자의 심리학


습관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몇 가지 전형적인 특징을 가집니다. 


첫째, 자기 통제력이 부족합니다. 

솔직히 세상을 살다 보면 왜 화나는 일이 없겠습니까?! 누구라도 화가 나고 짜증이 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감정들, 특히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감정들은 함부로 표현해서는 안 되는 감정이며, 적절한 방법으로 해결하고 관리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며, 심한 경우 법적인 처벌을 받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잘 관리하고 통제하지 못하며, 순간적으로 욱하거나 화를 표현하는 경향이 높습니다. 

그리고 그 형태가 폭력(언어적 및 비언어적 모두 포함)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둘째, 이기적 & 자기중심성입니다. 

세상사에 대한 모든 판단을 자기 입장에서만 판단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중심으로 하여 자신에게만 이익이 되거나 혹은 자신의 만족이나 불편함을 중심으로만 판단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거나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입장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리 큰 문제인 것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셋째, 타인의 입장(특히 고통)에 대한 진지한 공감과 이해가 결여되어 있는 것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가장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가해자들이 자기 자신이 가해를 했음을 깨닫지 못하는 핵심적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타인의 고통이나 심리적인 어려움에 대해서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반사회적 성격 장애의 핵심적인 특징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문제 행동이나 괴롭힘을 하더라도 죄의식이 없으며, 단순히 개인적인 재미나 흥미를 위해서(즉, 자기중심적) 혹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 한 행동이기 때문에 그 심각성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맞은 사람은 심각한 고통을 겪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장난이었을 뿐..'이라는 말이 나오거나 오히려 상대방에게 '네가 욕먹을 짓을 했잖아!'라는 비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 본인들도 폭력의 피해자인 경우가 아주 흔합니다. 

실제 임상 장면에서는 폭력의 피해자가 많이 오기는 하지만 (학생의 경우 혹은 정신감정을 위해서) 가해자들이 오는 경우들도 자주 있습니다. 

그런데 깊이 있는 면담을 하다 보면 그들도 폭력의 희생자인 경우들이 많습니다. 

게다가 학생들의 경우 보호자와 같이 오게 되는데, 보호자들이 가해사건을 일으킨 자식에 대해 심한 폭언과 비난을 하는 등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인간적으로는 왠지 짠~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마지막은........... 불행히도 그들은 쉽게 안 바뀐다는 점입니다. 

인간 행동 변화의 원동력은 진지한 문제의식, 그리고 문제의식에 근거한 변화의지입니다. 

이것이 없다면 아무리 강력한 처벌이나 비난을 하더라도 짜증과 불쾌함만 늘어나지 스스로 변화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은 진지한 문제의식이나 (변화 과정을 견디고 과정 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자기통제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끝까지 변화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자진사퇴나 진지한 반성에 준하는 행동보다는 억울하다는 표현이나 어설픈 변명이나 남 탓을 하다가 일을 더 그르치는 일이 자주 발생하는 것입니다. 



4. 잘못된 사과는 안 한 것만 못하다


보통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면, 가해자가 혹은 문제를 유발한 측에서 사과를 하거나 사과문을 발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과들은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은 사과도 있습니다. 


첫 번째는 '어설픈 사과'입니다.

어설픈 사과란 간단한 사과가 있기는 하나 변명이 더 많은 사과입니다. 

보통 이와 같은 사과들은 '잘못했습니다! 그런데..'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아직 정신 못 차렸네~'라는 피드백이 오게 됩니다. 

사과란 진정으로 피해자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행동입니다. 


두 번째는 '적반하장식 대응'입니다. 

자신에 대한 공격을 공격으로 대응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학원강사 배달원 폭언' 사건의 경우 학원 측에서는 상황을 설명하고 사과를 하였으며 재발 방지를 약속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학원 이름 유포자에 대한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 사과의 진정성을 믿기 어려운 것은 당연합니다. 


세 번째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는 경우입니다. 

앞으로는 사과를 하면서 뒤로는 다른 행동을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유명한 가수였으나 군대를 가겠다고 했던 약속을 저버리고 미국 국적을 취득해 물의를 빚었던 유 모 씨가 인터넷으로 무릎을 꿇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방송이 꺼진 줄 했던 했던 개인적인 내용이 드러나 사과의 진정성은 날아가고 더 큰 욕을 먹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번 사건의 경우에는 주변인의 이중적 행태가 문제가 되는 경우도 발생하였습니다. 

해당 배구단 소속 회사가 '선수의 안정과 보호가 더 우선되어야 한다'라고 발표했다가 더욱 난리가 났습니다. 

또한 가해자들은 부모님들이 오셔서 '우리 애는 그런 애가 아니에요~'라는 호소도 결코 도움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의정부 중학생들의 노인 폭행 사건에서 신고자가 바로 문제행동을 보인 학생의 부모였다는 점이 사건 진정의 새로운 국면을 만든 것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되실 겁니다. 



5. 폭력은 반드시 없어져야 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직업 상 폭력으로 인한 심리적 손상을 가지고 있는 분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정신건강 관련 전문가로서, 그리고 평화주의자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저 개인적 입장에서도 폭력은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피해자들이 겪는 피해나 고통은 상상할 수 없이 크며 오래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단순히 일순간의 고통에서 끝나지 않고 자기-존중감의 손상이나 인격 자체의 파괴가 오기도 합니다. 

또한 피해자들은 사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학습하게 되어 결국 대인관계 상에서도 문제를 겪게 됩니다.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솔직히 저는 그 사건보다는 제 기억 속에 떠오르는 제 내담자요 환자이셨던 피해자분들 걱정이 앞섭니다. 

사람들이 다들 분노에 치밀어 이번에 문제가 되었던 사건의 가해자들에 대한 비난에 집중할 때,

말없이 자신의 과거 고통이 재경험되면서 그토록 노력해서 잊고자 했던 아픔과 고통이 다시 자극받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이 겪을 고통을 생각한다면, 개인적으로는 이 정도에서 사건이 좀 진정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습니다. 


그래도 정인이 사건이나 이번 사건에서 대중들이 이와 같은 문제들에 대해서 공분하고 해결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된 것만 해도 충분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겠지요. 

아마도 제가 걱정하는 제 내담자와 환자분이셨던 그분들도 본인과 같은 희생자가 더 이상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다시금 학폭을 비롯한 운동계의 폭력 관행, 그리고 사회적인 폭력 문제들이 다시금 논의되면서 건강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해결되기를 원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원래 특정인을 저격하거나 언급하는 글은 피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유독 폭력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서는 나서게 됩니다 ㅠㅠ


며칠 전 아이스하키 감독이 아이스하키에 쓰는 스틱을 풀스윙하며 학생들을 때리는 영상이 공개되었습니다. 

배구계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일이 불과 일년 전에 있었습니다. 

정인이가 부모의 폭력으로 희생된 것은 며칠 지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또 이런 문제들이 사회면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ㅠㅠ


개인적으로 폭력에 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된 다양한 임상적 경험이 있습니다. 

그중 유독 기억이 나는 분은 군사독재 시절 고문 피해자였던 분이십니다.  

그 일을 겪은 지 무려 20년이 지났으며, 그 당시 충분히 성공하셔서 사회적으로는 모든 것을 회복하고 성공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심리검사 결과 상 그분은 최근 심한 고통을 겪은 분의 반응처럼 생생하고 고통스러운 심리적 상태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분을 뵈면서 폭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심하게, 그리고 얼마나 오랫동안 사람을 힘들게 할 수 있는지를 처절하게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얼마 전 있었던 정인이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번 사건이 우리 모두가 반성하고 폭력, 특히 학교폭력과 체육계 폭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건강한 해결책을 모색하는데 기여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모쪼록 당사자들이나 그분들이 속한 회사 차원에서 자꾸 헛다리 짚는 짓은 그만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본인들의 행동으로 인하여 고통받은 분들의 심리적 손상과 상처에 대한 진지한 공감, 그리고 그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는데 따른 진지한 문제의식, 그리고 진지한 문제의식에 기반한 변화의지와 실행이 필요한 때입니다. 




본 글과 함께 읽으시면 좋은 글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https://brunch.co.kr/@mindclinic/480


https://brunch.co.kr/@mindclinic/116


https://brunch.co.kr/@mindclinic/177


https://brunch.co.kr/@mindclinic/10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