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가 읽어주는 세상 이야기. 세대 간 적응과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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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밀레니엄 세대나 90년대생, 즉 신세대들에 대한 대대적인 열풍이 일어나고 있다. 그들에 대한 책과 자료들이 넘쳐나며, 그들을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접근들이 말그대로 휘몰아치고 있다! 이와 같은 열풍은 새롭게 사회에 진입하는 신세대들에 대한 긍정적 관심과 지지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하여 그들이 낯선 조직문화에 효과적으로 Soft-landing하는데 유용한 도움이 되는 바람직한 현상임에 틀림없다.
한편 이와 같은 밀레니엄 세대 혹은 90년대 생에 대한 급작스러운 관심 및 열풍과 관련하여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기도 한다. 왜, 90년대생만 이런 유난한 관심을 받는 것인가? 그럼 비-90년대생들은? 그들은 90년대를 이해하고 수용해주기만 해야 하는가? 90년대생이 다른 세대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필요한 것은 아닌가? 시류에 따르느라 크게들 말은 못하지만 속으로는 내심 이런 불평이나 의문들을 가지기도 한다.
과연 이와 같은 90년대생이나 밀레니엄 세대 열풍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까?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런 신세대에 대한 관심과 열풍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계속해서 반복되는 현상임에는 틀림이 없다. ‘세대’라는 말이 가장 먼저 쓰였던 것은 “베이비붐 세대”라는 말에서 시작되었으며(학문적으로는 그 이전 세대를 ‘silent 세대’라고도 칭함), 이후 ‘오렌지족’이라고도 불리웠던 “X세대”가 있었다. 그 다음세대는 본격적인 ‘Native Digital’이라고 불리우는 ‘N세대’ 혹은 밀레니얼 세대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통찰력 있는 저자분의 좋은 저서 덕에 ‘90년대생’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아마도 이 기간을 다 경험하였던 세대들은 알겠지만 새로운 세대들이 본격적으로 사회로 진출하고, 특히 직장 초년생으로 입사하는 시기가 되면 새로운 세대에 대한 이해 및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관한 글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들의 특징은 무엇이며, 어떤 것을 원하고 어떤 것을 싫어하므로 업무를 할 때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식의 가이드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한세대에 대한 공부와 더불어 그들과의 관계가 익숙해졌다 싶으면 그 다음 세대로 또 등장하는 과정이 반복되어 왔다.
즉, 새로운 세대의 등장은 반복되는 현상이며,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점을 인정할 때에 우리는 특정 세대에 대한 학습과 이해를 반복할 것이 아니라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원리에 기초한 근본적인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럼 끊임없이 새로운 특성을 가진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결국 그들의 경험의 차이에 기인한다. 즉, 성장과정 중 특정 시기에 특정 사건들에 기초한 경험들이 모여 그 세대로의 특징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특정 세대가 가졌던 특정 경험들을 고려하는 것이다.
소위 밀레니엄 세대들의 특징은 자기 위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인터넷을 경험하였으며, 대부분의 경험들이 IT에 기반을 둔 세대들이다. 이들은 궁금한 것이 있을 때 굳이 선배나 어른을 찾지 않아도 컴퓨터를 통해 스스로 검색할 수 있었으며, 조직 중심의 집단적 문화보다는 혼자서 컴퓨터를 하거나 스마트폰만 가지고 있으면 충분히 즐거울 수 있었다. 당연히 텍스트 보다는 동영상이나 이미지 중심의 콘텐츠를 선호한다. 이는 상당히 역동적인 자극으로써, 이에 익숙해지면 지루하고 단편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경향도 나타난다.
이와 같은 일반적인 세대 구분과는 별도로 우리나라에 특정적으로 있는 ‘386 세대’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들은 80년대에 대학을 다니며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이를 통해 ‘민주화’를 쟁취하였다. 따라서 이들은 조직적 학생운동이 솔루션이라고 생각하며, 모두 함께 노력하고 참여한다면 긍정적 결과와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들은 일을 하는 방식에서도 동일한 관점을 취한다. 이들이 현재 우리 사회의 리더집단의 주를 이루고 있는 상태이다.
즉, 개인들 간의 경험, 특히 시대적 상황이나 혹은 사회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특정 사건에 대한 경험은 한 개인의 성격과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Cohort Effect”라고 한다. 즉 특정적이고 독특한 문화나 환경을 경험한 사람들끼리 보이는 동질적 특성을 말하는 것이다. 억압과 통제 중심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과 자유롭게 개성을 추구하였던 사람은 서로 생각과 가치관이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보통 세대 간 갈등과 관련된 언급 중 부정적인 의미를 담은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요즘 친구들은 싸가지가 없어!’라던가, 기성세대에 대해서 ‘꼰대’라고 지칭하는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 두가지 언급의 공통점은 바로 자기들 세대를 중심으로 다른 세대를 평가한다는 점이다. 즉, 기성세대는 기성세대대로, 신세대는 신세대대로, 자신들의 경험에 기초한 자기들의 기준으로 타세대를 평가할 때 나오는 부정적 평가인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외국인에 대해서는 이와 같은 평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딱히 존대말이라는 것이 없는 나라에서 온 외국인이 반말을 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저런 싸가지 없고 예의가 부족한 놈’이라고 욕하지 않는다. 혹은 우리 문화를 잘 몰라서 하는 실수에 대해서 너그럽게 이해해준다. 역으로 우리가 외국에 나갔을 때에는 ‘나의 기준과 가치’에 따라서 외국 문화를 폄하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일본이나 영국에 가서 ‘여기는 왜 차들이 반대방향으로 다니지? 이상한 나라이네, 이해할 수가 없군!’이라고 하지 않는다. ‘아.. 여기는 이렇구나!’라고 생각하고 그에 맞추려고 노력한다.
즉, 다른 문화적 배경이나 경험 상의 차이로 자연스럽게 ‘다름’이라는 것이 생김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대응은 매우 편파적이다. 우리 내부(즉, 한 조직이나 한 나라)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내 기준에 기초하여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반면에 우리 외부(즉, 다른 조직이나 다른 나라)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존중과 인정을 하는 경향이 높다. 이 무슨 해괴망칙한 결론인가?! 서로 다른 경험을 한 사람들이 다른 생각과 가치를 가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우리의 내부 및 서로 일하는 동료들부터 서로의 ‘다름’을 가진 사람들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다. 나와 다르다고 서로를 비난하는 것 자체가 문제이다.
즉, ‘다름’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이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반응이 문제인 것이다. 서로 ‘다름’을 가졌다면 생각이나 가치관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런 상대방의 생각과 가치관을 존중하는 것이 정답이다.
상대방이 살아온 과정이나 경험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라! 그리고 나면 상대방의 생각과 가치관, 그리고 그들이 보이는 행동들이 이해될 것이다. 우선은 이해가 되어야 이후의 과정들이 진행된다. 이해하지 않고 판단부터 하는 것을 바로 “자기중심적”이라고 한다. 즉, 내 기준에 따라서, 내 가치나 생각만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것은 옳지 않다.
이해가 되면 그것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 쉬워진다. 그들의 경험을 고려한 그들의 ‘다름’을 존중하라. 분명한 것은 누구도 한쪽만을 존중하고 다른 쪽은 존중을 받아야만 하는 관계는 없다. 상호 존중 만이 정답이다. 어느 한쪽이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비-존중하면 틀림없이 다른 쪽도 무시하고 반격한다.
이와 같은 상호존중은 결국 원활한 소통을 낳는다. ‘너는 대체 왜 그러니?!’라고 비난하는 소통이 아니라, ‘아! 그렇구나!! 이제 이해가 되네. 대신에 이렇게 좀 해줄 수는 있어?’라는 상호 존중에 기초한 건강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야 서로 ‘다름’을 가지고 있으나, 이것이 ‘갈등’이나 ‘대립’의 원천이 되는 것이 아니라, ‘타협’과 ‘조화’가 되어야 하는 과제가 되는 것이다.
우리 집에 같이 사는 대학생 한 명(보통은 ‘딸’이라고 함^^)이 요즘 ‘응사’(응답하라! 1994!)라는 프로그램에 아주 몰두해 있다. 그 중 하숙집의 식사장면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개인적 사정에 상관없이(안 오면 못 먹는 것!) 일사불란하게 모여, (메뉴에 대한 선택권은 전혀 업이) 그날의 메뉴인 카레를 나누고 있었다. 그 중 한명이 ‘아, 또 카레야?’라고 투정을 부리자 가장 고학년의 선배가 숟가락으로 머리를 때리면서 ‘잡말 말고 먹어!’라는 투로 혼을 내는 장면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런 문화에서 자란 사람에게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그것 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나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을 보면 당황하지 않겠는가? 그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개인의 의견을 묻고 거기에 맞추어 식사를 하던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장면과 똑같이 하라고 하면 아마도 심하게 불편할 것이다. 적어도 2-3개 정도의 메뉴 중에 고르는 방법은 없느냐고 당연히 되물을 것이다. 그것도 안되면 그냥 나가서 개인돈으로 사먹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슨 문제이겠는가?
‘다름’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서로의 ‘다름’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수용하고자 하는 태도와 행동의 문제이다. 만약 이런 태도와 행동이 분명하다면 어떤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더라도, 혹은 아무리 먼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도, 심지어는 외계에서 온 우주인이라도 건강과 소통이 가능할 것이다. 만약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나의 가치나 기준’만을 주장한다면, 세상 어느 누구와도 함께 행복하고 만족하기 어렵다.
(글쓴이가 개발한) 해외파견자의 글로벌 적응역량을 평가하는 도구 중 파견자로서 현지에서 얼마나 타인들과의 관계를 잘 형성하고 관리하는지에 관한 “관계관리” 차원에는 세가지의 역량이 있다. 첫번째가 “이문화 수용”(cross-cultural acceptance/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이나 이 문화 관습 등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기꺼이 탐색하고자 하는 태도), 두번째가 개방적 태도(Open-mindedness/대인관계에서 자신과 다른 가치관을 배척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개방적이고 수용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역량), 세번째가 대인관계 기술(Interpersonal Skill or Conversation Coin/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는데 필요한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스킬과 노하우) 등이다. 이 역량들이 단지 해외파견자 뿐 아니라 변화 무쌍하고 다양성이 넘쳐나는 우리의 현재에도 반드시 필요한 역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다양성’에 대한 인정 및 ‘다양성’을 수용하는 유연성과 적응력의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자질은 분명 당신의 나이나 환경에 상관없이 어느 곳에서도 잘 적응하는 긍정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