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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박사 레오 Mar 28. 2019

하고 싶은 일만 할 수는 없다

노박사의 직장생활 클리닉. 유능한 '나' 만들기 : 직장인의 성과관리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즉 사람이란 다른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밖에 없다. 


이는 세상을 살면서 ‘내 마음대로만 할 수는 없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왜냐하면 어울려 사는 각 사람들의 요구가 서로 다를 것이며, 각자의 다른 요구와 기대는 서로 부딪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과정에서, 나의 내적 요구와 타인들의 요구 간에 타협과 조정은 필수적이다. 각기 다른 요구를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만 다 할 수는 없다. 어느 정도는 내가 원하는 것을 포기하거나, 어느 정도는 내가 원하지 않는 것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 


본인의 방에서, 본인 혼자 있을 때에는 마음대로 해도 된다. 단, 다른 방에서 다 들릴 정도로 너무 크게 음악을 듣거나 심하게 쿵쾅댄다면 바로 항의가 들어올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혼자 식사를 하러 갈 때에는 마음대로 메뉴를 골라도 되지만, 다 같이 식사를 할 때에는 타인과의 협의와 결정이 필요하다. 


특히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모인 집단인 직장생활에서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조직의 목적 상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되는 활동이 있으며, 이를 구성원들이 나누어 수행하는 것이 직장이다. 그리고 직장 내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활동 목록 중에는 누구나 하고 싶어 하는 폼나는 일들도 있지만, 누구도 하기 싫어하는 것들도 많다. 


게다가 이 수행 목록들은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대부분의 업무는 리더가 정해주거나, 같은 조직의 구성원들과 합의에 의하여 결정된다. 즉, 조직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좋건, 싫건 간에 이와 같은 수행 목록들을 따라야 하는 의무와 책임도 함께 부여되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이고 직장인의 운명이다. 



1. 행복한 직장인의 비율


‘당신은 행복한 직장인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답하겠는가? 사실은 이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행복’에 대해서 이와 같이 이분법적으로 질문하는 것 자체가 오류이다. 


더 정확한 질문은 ‘당신은 직장에서 행복한 때가 더 많습니까, 아니면 불행하다고 느끼는 때가 더 많습니까?’, 혹은 ‘당신은 직장에서 행복한 비율 대 행복하지 않은 비율 중 어떤 것이 더 높습니까?’라고 묻는 것이다. 


즉 행복이라는 것은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대상이나 문제는 아니며, 내가 느끼는 주관적 비율 상의 문제이다. 행복한 비율이 높으면 전반적으로 행복한 경향을 보이는 것이며,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편감을 느끼는 비율이 높으면 불행하다고 느끼게 된다. 


그럼 행복감은 어디에서 오며, 불만족은 무엇으로부터 오는가? 직장 내에서의 행복감은 내가 원하고 바라는 바를 행하는 것에서부터 올 것이다. 반면에 내가 원하지 않는 일들을 해야만 할 때에는 불만족이나 스트레스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직장에서는 내가 원하는 것보다는 조직의 일원으로써 감당하고 수행해야 하는 일이나 업무를 해야 하는 경우가 다수 발생한다. 이로 인해 직장생활이란 태생적으로 스트레스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이를 보통 ‘월급값’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전제 하에서 효과적인 대응은 어떤 것일까? 이대로 스트레스에 매몰되어 불행감을 느끼면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이에 대해 현명한 해결과 대처를 할 것인가? 


나는 나의 능력과 자원을 회사에 제공하고, 회사는 나에게 일과 급여를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상호 간에 의무와 책임이 발생한다. 회사는 적절한 업무 환경과 내 노동의 가치에 상응하는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 반면에 직장인은 회사에서 요구하는 기본적인 업무와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의무나 역할 중에는 내가 원하지 않는 과업들도 포함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업들을 어느 정도 수용하고 감당해야만 그에 따른 보상과 만족도 받을 수 있다.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당연히 수행해야 하는 의무적 과업인 것이다. 


그런데 조직의 일원으로써 기왕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하고 싶지 않은데’ 해야 하는 일보다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에 방점을 두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을까? ‘하고 싶지 않은데’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불만족과 스트레스가 찾아온다. 반면에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의무적 과업이라는 것도 나의 만족과 행복을 위한 과정의 일부가 된다. 


즉 행복한 직장인이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균형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며, 불행한 직장인은 스트레스와 불행을 일으키는 사고에 방점을 두고 사는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어느 곳에 방점을 두는지에 따라 행복한 직장인이 될지, 아니면 불행한 직장인이 될지가 결정된다. 



2. 의무적 과업을 처리하기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것은 어떤 생활 사건에서든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결혼을 하는 순간, 가정에 대한 책임과 배우자 및 자녀와 관련된 의무적 역할이 부여된다.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거나 익숙하지 않은 일이지만, 가사를 분담하고 양육을 위한 역할을 나누어야 한다. 학생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학생은 학생으로서의 의무가 있으며, 지켜야 할 규율과 교칙이 있다. 


공부는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다면 안 해도 된다. 하지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지는 것이다. 학교 시스템이나 교사의 자질을 탓해봐야 본인 손해인 것이다. 결과는 달라지지 않으며, 과정에 대한 불만과 불평만 늘어날 뿐이다. 


직장생활에서도 조직의 일원으로 가져야 할 의무와 과업이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이것들은 학교나 혹은 가정에서의 의무나 역할과는 사뭇 다르다. 


성과라는 목표를 가지고 모인 직장에서는 주어진 의무나 역할도 성과와 밀접한 연관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성과 중심의 의무나 역할이란 상당한 에너지와 노력을 기울여야만 하는 것들일 수밖에 없다. 직무 중심적일 수밖에 없으며, 의무나 책임의 강도도 상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걸 가지고 백날 불평해봐야 아무 소용없다. 직장에서 부과하는 의무와 책임이 싫으면 직장을 그만두면 된다. 자신의 구미에 맞는 일만을 제공해주는 그런 직장은 없다. 


그럼 이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 것인가?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은 너무 가혹하다. 머리로는 되지만 실제로 즐겨지지는 않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의무적 과업과 역할에 대해서 별다른 고민이나 생각 없이 수용해 버리는 것이다. 남자들의 경우 예비군 훈련을 간다고 해서, 미리부터 계속 고민하고 스트레스받아 봐야 소용없다. 그냥 가면 된다. 가서 얼마나 고생할지, 그리고 얼마나 더울지에 대해 아무리 고민해봐야 본인만 스트레스받는다. 해야만 하는 일이니 아무 생각 없이 하고 오면 된다. 


두 번째는 언젠가, 그리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면 빨리, 그리고 적극적으로 처리해서 끝내 버리라는 것이다. 기왕 해야 하는 빨래라면 빨리 해치워 버리고 쉬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하기 싫어서 미적거려봐야 시간만 더 오래 걸리고 그에 따라서 스트레스도 오래간다. 빨리 처리해서 빨리 끝내는 것이 덜 스트레스받는 지름길이다. 



3. 원하는 일 늘리기


그런데 직장생활에는 의무적인 과업이나 역할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나의 회사에서, 그리고 내 업무를 수행하면서 가질 수 있는 긍정적인 만족과 성취도 분명히 있다. 


내 직업을 통해서 나는 돈을 벌고, 그 돈을 가지고 가족을 부양하며, 내가 하고 싶은 여러 가지 일들을 할 수 있다. 또한 지금 내 주변 사람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으면서 즐거움과 만족을 나눌 수 있고, 외롭거나 지칠 때에는 서로 위로와 힐링을 나누기도 한다. 


즉 직장생활이란 재미없기만 한 것도 아니고, 마냥 즐겁기만 한 것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둘 간의 적절한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일단 지금의 직장은, 내가 가고 싶은 회사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서 들어간 것이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랬다. 지치고 힘들어져서 그 설렘과 기대감이 없어졌는지는 모르지만, 어찌 되었건 내가 원하고 선택해서 들어간 직장이다. 그리고 최선의 선택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분명 차선책이었으며, 어떻게든 나름대로 적응하고 노력해서 현재의 위치에 있는 것이다. 


첫 마음을 다시 기억하고 되살리는 것이 필요하다. 입사 통보를 받았던 날의 기쁨과 첫 출근할 때의 설레임을 기억하라. 어렵게 노력해서 이루었던 본인의 성취와 그때의 만족감을 되짚어보라. 이것이 현재 직장에 대한 균형적 판단을 위해 가장 필요한 노력이다. 자신의 노력과 자신이 선택한 일에서 경험했던 만족감과 성취를 반드시 기억하고 즐기라. 


이와 더불어 현재 환경과 상황을 고려할 때, 자신이 변경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수준에서 원하는 일을 늘리는 작업도 동반해야 한다.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하였거나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스스로 원하고 만족할 수 있는 요인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현재 나의 동료나 친구들은 접근 가능한 전형적 즐거움 중 하나이다. 퇴근 후 즐길 수 있는 취미나 동호회 활동들도 도움이 된다. 또한 업무 상으로 재미있어 보이거나, 나의 경력을 고려할 때 미래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일이라면, 조금은 부담이 되더라도 선택해 보는 것이 좋다. 일시적, 혹은 단기적으로는 업무가 많아지고 부담스럽겠지만 그것이 나의 성장과 미래에는 큰 이익을 가져올 수도 있다. 


즉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에서 원하는 일, 혹은 만족을 늘릴 수 있는 요소들을 찾아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라. 그렇게 한다면 조직 내에서 의무적인 역할을 수행하느라 고단해진 내 마음을 위로할 수 있다. 그리고 직장생활에서의 만족 요인과 의무적 요인 간의 균형과 조화를 맞추는 데에도 도움될 것이다. 





인간의 삶이란 주변 환경과의 타협과 조화 속에서 존재한다. 강의할 때, 농담조로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기는 생후 딱 1년 반 동안 밖에 없다고 말해준다. 왜냐하면 생후 1년 반이 되면서부터 배변훈련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즉, 그전까지는 먹고 싶을 때 먹고, 소위 싸고 싶은 대로 싸면서 살 수 있으나, 배변훈련이 시작되면서부터 대소변을 가리라는 부모의 요구와 상충하면서 환경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만약 부모의 통제를 거부하게 되면 ‘맴매’라고 하는 처벌이 들어오며 어쩔 수 없이 이에 따라야만 하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이렇듯 인간사는 어떤 시기이든,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 만의 판단이나 요구에 따라서만 살 수는 없다. 환경으로부터 요구되는 역할에 어느 정도는 맞추어야 하며, 주변 사람들의 요구와 타협하고 서로의 기대를 조절해 나갈 필요가 있다.  


그래서 리더가 되면 더 힘들 수밖에 없다. 내 업무 하나만 관리하기도 벅찬데 부하직원들 및 그들의 성과를 관리해야 하는 책임도 부과되기 때문이다. 부모가 되는 것은 기쁘고 감동적인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자녀에 대한 책임과 양육이라는 역할도 동시에 따라오게 되는 것이다. 

 결국 모든 세상사가 그러하듯이 직장생활도 만족과 스트레스 간의 균형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다. 어떻게든 만족은 늘리고 스트레스는 줄이는 것이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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