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면 : 오해와 두려움 #1

by Ohana

최면이라는 분야만큼 오해와 두려움이 팽배하게 퍼져있는 곳도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최면(Hypnosis)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든 사람(James Braid)도 나중에 최면이라는 현상이 잠과 비슷하다는 게 자신의 이해 부족이었음을 깨닫고 다른 용어(Monoidesm)로 대체하려고 했지만 이미 널리 퍼진 최면이라는 용어를 대체하는데 실패한 역사가 있다.


시작부터 좀 꼬인 케이스랄까, 이후에도 수많은 매체에서 다뤄준 결과 최면은 누군가에게 '걸려'서 기억을 바꾸거나, 뭔가 환상적인 체험을 한다거나, 내 비밀을 내 의사와 반해서 캐내버리는 식으로 작동한다는 상당히 무시무시(?)한 이미지를 획득하게 되었다.


정말로 최면이 이 정도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면 국가기관의 법적 제재 정도는 당연히 받아야 할 텐데 현실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최면의 이런 대단한 능력(?)을 확신하는 최면사일수록 어떤 사람은 최면에 잘 걸리고 어떤 사람은 잘 걸리지 않는다는 최면 감수성 같은 아름다운 소리를 짖어대는 게 현실이다.


최면은 이런 '걸고 걸리는' 프레임으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비효율적이고 아까운 현상이다.

내담자가 배우라면 상담사는 감독이고, 내담자가 작가라면 상담사는 편집자인 것이다. 최면의 진정한 강력함은 공동의 목표를 위한 확실한 역할 분담 및 협업에 있는 것이다.


이 공동의 목표가 상담사가 이득을 위한 경우를 세뇌라고 하는 것이고 내담자의 이득을 위한 경우를 교육이라고 하는 것이다. 최면에서의 내담자의 체험은 홀로 상상하거나 회상하는 딱 그 정도의 차원이며, 상상과 회상도 꼭 시각적인 이미지로 하지 않고 청각, 촉각, 그냥 인지적인 방식 등 다채롭게 할 수 있는 것과 똑같이 뭔가 시각적으로 환상적인 체험이 아닌 것이다.


명상에서는 스스로 이완하면서 스스로 운전해야 한다. 의식적인 이완과 지금 내 안에서 표현되는 것들을 잘 파악하거나 컨트롤하려고 하는 능동적인 상태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의식적 이완을 제대로 하려면 파악하거나 컨트롤하려는 힘도 빼야 하는 것인데, 이러면 이완 훈련의 의미는 있지만 마음의 표현들을 제대로 다루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반면 최면에서는 '수동적 몰입'을 할 수 있다. 내담자는 상담사에게 다 맡기고 이완과 표현에만 집중하는 것이고, 상담사는 이완과 학습을 독려하면서 표현들의 의미를 잘 파악해 두었다가 내담자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확실한 역할 분담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수많은 사례들을 통해 마음의 표현들을 분류하고, 표현의 종류에 따라 적절한 대처법을 사용하는 게 최면사의 실력이라면 이 공동작업을 위해 암시에 잘 반응하면서 내면의 표현을 잘 허용하는 것이 내담자의 실력일 것이다.


지구 최고 실력의 최면상담사도 내담자가 협조하지 않으면 지하철 안내 방송만큼의 영향력도 발휘할 수 없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단식 : 디톡스 할래? 역노화 할래?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