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면에는 이런 말이 있다. '우리는 팩트를 다루지 않는다, 주관적인 인지만을 다룬다.' 이게 무슨 뜻일까?
최면을 통해서 획득한 정보는 목격자의 기억 재생, 몽타주 작성, 사실관계 파악 등에 참고될 수는 있지만 법적인 증거로는 채택될 수 없다.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닌데 미국에서 1990년대에 최면에 대한 법적 증거 채택으로 아수라장이 된 이후로 이렇게 되었다.
1990년대 미국에서 젊은 여성들이 최면 상담을 받은 후에 어린 시절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을 성폭행했다며 친부를 고소하는 사건이 무더기로 발생했다.
실제로 성폭행을 한 건 아니었고, 나중에 조사해 보니 최면 상담사가 현실의 웬만한 문제는 아동기의 성적 트라우마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며, 특히 아버지가 어린 딸을 성폭행하는 경우가 많다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고, 내담자를 연령 역행 시키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리딩'을 남용했다는 점이 밝혀졌다.
예를 들면 어린 시절로 역행에서 밤에 혼자 방에서 자고 있었는데 누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요... 까지만 듣고 상담사가 이미 부녀간 성폭행 건이라고 확신을 해버리는 것이다.
그때부터는 질문을 '누군가 당신을 만지지 않나요?'라는 식으로 몰아가게 되었고 내담자는 상담사의 유도에 따라 기억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 사건의 전후 관계가 밝혀진 이후로 최면에서 획득한 정보는 단독으로 법정 증거로 채택될 수 없게 되었고, 상담사의 '부적절한 리딩'의 파장이 밝혀져 상담사의 직업윤리에 관한 인식이 매우 높아졌다.
필자도 많이 경험해 봤지만, 최면 상담 중에 내담자가 표현하는 모든 것들은 팩트냐 아니냐를 따질 수도 없고 따져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 표현들을 다루는 게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내담자의 표현이라는 조각들로 구성된 내담자 '무의식' 안의 세계관은 나름의 규칙이 있고 이 규칙 안에서만 내담자의 마음은 다뤄지고 변화될 수 있다.
물론 상담사도 자신만의 신념이 있고 무의식의 규칙이 있다. 그런데 내담자의 긍정적인 변화는 내담자의 규칙 안에서 이루어지고, 따라서 상담사는 내담자의 표현을 충분히 존중해야만 한다. 상담사의 규칙을 내담자에게 강요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심지어 이건 내담자 안에서도 세계관이 다를 수 있다. 내담자의 현재의식, 즉 이성은 기독교 세계관을 믿는데, 내담자 내면의 무의식은 전생이나 내가 인지하지도 못하고 있던 신념, 세계관 등으로 표현을 할 수도 있다.
당황할 일이 전혀 아니다. 우리는 팩트가 아니라 주관적인 인지를 다루니까, 상담사는 물론 내담자도 자신 내면의 표현과 그 세계관을 존중하면서 현실에서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팩트체크는 현실에서만 하고 내면에서의 여행 중에는 자제하자, 차라리 판타지 세계에서 특정 배역을 연기한다고 생각하는 게 훨씬 이로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