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둘과 함께
"이도하 님, 15시 48분 사망하셨습니다."
그 한 문장이, 내 삶 전체를 무너뜨렸다.
울음바다가 된 병실에 도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 울음 뒤로 내 안의 텅 빈 공간이 나를 찾아왔다.
'이제 남편이 없다......'
'둘이 있던 추억은 오롯이 나의 기억 속에만 남았다.'
“그랬었지?”라고 되묻는 순간은 이제 혼잣말일 뿐...
그 순간부터 나는 혼자가 되었다.
이어진 현실은 잔인했다.
"장례식장은 어디로 하시겠어요?"
미리 생각해 두었단 게 이상하게 미안했다.
"안치는 생각해 놓은 곳이 있나요?"
"네... 가까운 곳으로요..."
"수육은 몇 인분을 할까요?"
"몇 인분 하면 되나요?"
말은 하고 있지만 내 마음은 거기 없었다.
내 마음은 그저 잠시 묻어 두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질문들이 쏟아졌고, 나는 정신을 붙잡고 눈물을 삼킨 채 대답을 이어갔다.
"꽃은 제일 좋은 것으로 화려하게 해 주세요."
"영정 사진은 다정하게 웃고 있는 사진으로 할게요."
"리무진 차량은 하지 않을 거고요."
"화장할 거예요."
잠시 숨 돌리는 틈에
빈소 한켠,
간병하느라 미뤄두었던 내 아이가 보였다.
"엄마, 이 옷 말고 다른 옷 입으면 안 돼?"
"이 냉장고에 있는 거 다 먹어도 돼?"
5살 이현이가 검정 바지에 흰 셔츠가 반쯤 빠진 채로, 한 손엔 장난감 로봇, 다른 손으론 바지를 붙잡은 채 뛰어다녔다.
조금 큰 옷을 입혔는데 아이가 더 작아 보였다.
맞는 상복도 없을 만큼 어린아이에게 아빠의 부재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막막했다.
"그거 다 돈 내야 해. 막 먹으면 안 돼!!
넌 그런 것도 모르니?"
9살 이준이가 동생을 놀리듯 나무랐다.
웃고 있는 두 아이가 가슴에 돌덩이처럼 내려앉았다.
남자아이 둘만 남기고 사별한 나를 보는 이들의 시선이,
어쩌면 나보다 더 슬퍼 보였다.
그리고 그날,
어떻게 주변에 암환자가 그렇게 많았는지, 엄마나 아빠 없이 자란 지인들이 그렇게 많았는지, 처음 알았다.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나를 위로해 줬고, 무슨 말을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위로들은 분명 내 마음에 닿았다.
도하의 회사 사람들이 부의금과 장례용품을 모자람 없이 마련해 주었다.
"웃으면서 인사를 참 잘해주셨던 분이에요."
"묵묵히 성실하게 일하셨었는데..."
"좋은 분이었는데 너무 안타까워서 찾아왔습니다."
회사 일을 통 말하지 않던 사람이라, 그 말들이 처음으로 도하의 삶을 들려주는 듯했다.
도하 인생의 위로 같은 말들이었다.
그땐 괜찮다고 믿었지만, 돌아보면 나는 아픈 나를 다른 곳에 둔 채 그저 견디는 껍데기였다.
잊고 있던 그 진심들이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씩 나를 찾아와 조용히 위로한다.
장례는 끝났다.
하지만 이별은,
그제야 시작됐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남편과 멀어지는 여정을 시작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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