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언어로 배우는 사별
남편과 사별 후 몇 년이 흘러 내 마음이 좀 정리되었을 때,
중학생이 된 큰아이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제는 아빠 이야기를 해도 마음이 좀 편해졌니?"
아이들이 아빠 이야기를 편하게 하길 바라는 마음에, 종종 말을 꺼냈지만 매번,
"아빠 이야기하면 마음이 이상해요. 엄마, 우리 다른 얘기하면 안 될까요?"라며
하고 싶지 않은 내색을 했었다.
"처음보단 괜찮아요"
잠시 나를 한 번 보고 이내 고개를 숙이며
"엄마는 아빠를 잃은 적이 없으니 제 마음을 다 알 수는 없을 거예요."
조심스러웠지만 단단한 대답이었다.
"그래도 엄마가 아빠 말 하고 싶으면 하셔도 돼요. 그 대신 짧게..."
엄마가 안쓰러웠는지, 말을 덧붙였다.
그 말이 딱 맞았다.
'난 아빠가 살아 계시니 너의 마음을 모를 수도 있겠구나.'
첫째가 그렇게 말하던 그때,
다섯 살이던 둘째 이현이의 또렷한 그날의 장면이 떠올랐다.
장례 끝나고 일주일 정도 지난 어느 날,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10명가량의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아이 귀여워라. 몇 살이니?"
"저는 5살이고요. 며칠 전에 우리 아빠는 하늘나라 갔어요."
엘리베이터 벽에 등을 기대고, 웃으며 말했다.
순간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웃어야 할까? 슬픈 표정이어야 할까?'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해 아이만 보고 있었다.
이현에게 그 말을 하지 말라고 하고 싶지 않았다.
부끄러운 일도 숨겨야 할 일도 아니니까.
다만, 그 말은 듣는 사람의 가슴을 덜컥 내려앉게 할 만큼, 조용히 아픈 말이었다.
하필 그날 저녁,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 이현이가요."
선생님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이런 말씀을 드릴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아빠 얘기만 나오면 아빠가 하늘나라 갔다고 이야기해요.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선생님의 곤란함이 짐작이 갔다.
"곤란하셨죠?...
그래도 이현이에게는 '아빠는 하늘나라 가서 잘 계실 거야.'라고 말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밝은 모습이라고 했다.
통화 후 가슴을 쓸어내렸다.
'내 아들 잘 지내고 있구나.'
택시를 타도, 마트를 가도 이현이는 그 말을 웃으면서 불쑥 내뱉었다.
몇 달 후, 조용히 이현이 손을 잡고 최대한 침착하려 노력하며 말했다.
"아빠가 하늘나라 가신 건 맞는데,
이현이가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깜짝 놀랄 수도 있어.
그래서 그 말을 좀 아껴주는 건 어떨까?"
그 후 이현이는 고맙게도 그 말을 정말 아껴줬다.
이현이의 배려는,
그날 이후에도 내 마음에 남아 아이의 마음을 더 조심스럽게 살피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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