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에서 현실로, 현실에서 순수로
찬 바람이 폐부 깊숙이 박히던 그 겨울날들, 나의 세계는 두 번 무너졌고 나는 두 번의 장례를 치렀다.
첫 번째 죽음을 선택했을 때, 나는 감정을 모르는 기계가 되기로 결심했다. 나약함은 곧 죽음이라 믿었기에 내 안의 모든 감정 회로를 스스로 끊어버렸다. 소년의 눈에 비친 세상은 다정하지 않았다. 내게 남은 것은 정제되지 않은 분노와 세상을 향해 나를 증명해 보이겠다는 서슬 퍼런 복수심뿐이었다.
지독한 가난, 나를 외면했던 외&친가와 아버지에 대한 원망. 어머니를 제외한 누구도 내가 세상에 오길 원치 않았다는 생각에, 모든 결핍은 내 인생이라는 엔진을 돌리는 뜨겁고도 슬픈 연료가 되었다. 나는 그 분노와 복수심을 동력으로 삼아 오직 '열심히'라는 이름의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증명하고 싶었다 세상에 , 나의 생명력은 누구보다 간절하다고. 그것은 나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었으나, 동시에 나를 서서히 마모시키는 잔인한 오버홀의 시작이었다.
기계처럼 앞만 보고 달리던 나의 삶에 한 여자가 찾아왔다. 진심으로 사랑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와 너무도 다른 궤적을 그리던 사람이었다. 감정의 회로를 끊어낸 기계의 사랑은 서툴고 메말라 있었다. 그녀를 사랑할수록 내 깊은 곳에서는 불안함이 독버섯처럼 피어올랐다.
'이대로라면, 나의 아이들은 나의 유년 시절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내가 증오했던 가난과 분노, 그리고 차가운 침묵의 카르마가 내 자녀들에게 그대로 대물림될 것 같다는 공포. 평생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살아왔는데, 역설적이게도 나는 '나쁜 아빠'가 될 준비를 마친 고장 난 엔진과 같았다. 내 인생의 사명이었던 꿈이 나의 결핍된 자아 때문에 무너지고 있었다. 19년을 지탱해온 질주가 잘못된 방향이었다는 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두 번째 에고를 스스로 무너뜨렸다. 그것은 사랑했던 그녀를 위한 선택이자, 미래의 아이들에게 내릴 수 있는 유일하고도 처절한 부성애였다.
두 번째 에고가 죽고 난 자리에는 지독한 허무가 찾아왔다. 하지만 그 허무는 파멸이 아니었다. 그것은 모든 것이 비워진 완벽한 공 상태였다. 엔진을 완전히 분해해야 비로소 결함이 보이듯, 에고가 박살 난 후에야 나는 나를 볼 수 있었다.
오히려 무엇이든지 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없다고 생각하면 있는 것이고, 있다고 하면 없는 것이니 모든 것은 나의 인식에 따라 바뀌는 것이더라.
나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본질은 구축해가면 된다.
"12월은 더 이상 죽음의 계절이 아니다. 그것은 가장 뜨거운 부활의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