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와 현실이 되기를 강요받은 소년
온도가 50도에 육박하는 거대한 엔진룸. 수만 마력의 메인 엔진이 뿜어내는 굉음 속에서 대화는 사치다. 귀마개를 뚫고 들어오는 진동은 뼈마디를 울리고, 기름 냄새 섞인 뜨거운 공기는 폐부를 짓누른다.
하지만 엔진룸의 물리적 고통은 내가 겪어야 할 고독의 아주 일부일 뿐이었다.
그 좁은 철의 감옥 안에서 나는 철저히 이방인이었다. 15년간 배를 타면서 승선원 중 한국 사람은 나 혼자일 때가 많았다. 업무적인 지시와 딱딱한 영어 대화가 오갈 뿐, 내 깊은 속내를 털어놓을 모국어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밥을 먹을 때도, 차를 마실 때도 나는 보이지 않는 언어와 문화의 장벽 안에 갇혀 있었다. 그리움이 목 끝까지 차올라도 그것을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것, 그것은 지독한 형벌이었다.
도피처조차 없었다. 육지에서처럼 퇴근 후 술 한 잔으로 외로움을 달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금기의 공간. 느려터진 위성 인터넷은 세상과의 연결을 끊어놓기 일쑤였다. 스마트폰 속 세상은 저 멀리 돌아가는데, 나만 시계가 멈춘 진공 상태에 버려진 기분이었다.
"이곳에서는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칠 곳이 없다."
도망칠 곳 없는 그 완벽한 고립 속에서, 나는 필연적으로 오직 나 자신과 대면해야만 했다.
내게 그 고독은 지옥이었다. 가난에 대한 분노,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연료 삼아 엔진을 돌렸지만, 정작 내 마음의 엔진은 배출구 없이 과열되어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 처절했던 승선생활의 고립은 나에게 두 가지를 가르쳐주었다.
첫째, 모든 소음과 관계가 사라진 끝에는 결국 벌거벗은 나만 남는다는 것. 외부의 화려한 타이틀도, 타인의 시선도 닿지 않는 좁은 선실 침대에 누우면, 내가 외면해왔던 초라한 내면이 거울처럼 선명하게 비췄다. 내가 나를 긍정하지 못하면 수천 마일의 항해 끝에 도착한 항구도 그저 또 다른 차가운 감옥일 뿐이었다.
둘째, 정비되지 않은 엔진은 반드시 멈춘다는 것. 기계는 정직했다. 기름을 치지 않으면 마모되고, 열을 식히지 않으면 폭발한다. 나는 기계보다 더 기계처럼 살면서, 정작 내 안에서 터져 나오는 경고음에는 귀를 닫고 살았다. 19년 동안 단 한 번도 내 인생을 오버홀(Overhaul)하지 않았던 대가를, 나는 결국 혹독하게 치러야 했다.
이제 나는 육지에서의 휴가를 보내며, 그 바다 위에서 배웠던 고독의 힘을 다른 방식으로 쓰고 있다. 예전의 고독이 독기를 품는 시간이었다면, 지금은 나의 존재를 사랑하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