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전쟁에서 평화로

더 이상에 갑옷은 필요없어졌다.

by 자아


세상은 내게 전쟁터였다. 지독한 가난, 나를 외면했던 친척들과 어른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원망. 내 어린 시절을 지배했던 것은 슬픔이 아니라 서슬 퍼런 분노였다. 나는 결심했다. 반드시 성공해서 이 세상을 비웃어주겠노라고. 복수심은 나의 가장 강력한 연료였다.


그 연료 덕분에 나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지점들에 닿았다. 높은 연봉을 받고, 어머니께 번듯한 집을 사드리고, 좋은 차를 굴리며 세상이 말하는 '승리자'의 전리품을 챙겼다. 하지만 이상했다. 목표를 이룰수록 갈증은 심해졌고, 단 하루도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없었다.


어느 날 거울 속에서 나는 가장 두려워하던 얼굴을 마주했다. 그토록 증오했던 아버지의 서늘한 눈매가 내 얼굴에 서려 있었다. "나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달려왔는데, 정작 나는 분노라는 갑옷을 입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내가 그토록 혐오하던 그 모습 그대로 변해가고 있었다. 지독한 모순이었다.


인문학을 공부하며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나를 지키기 위해 '에고(Ego)'라는 너무 무겁고 단단한 갑옷을 입고 있었다는 것을. 그 갑옷은 외부의 공격을 막아주었지만, 동시에 따뜻한 사랑과 공감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길마저 철저히 차단하고 있었다. 세상을 온통 싸워 이겨야 할 적으로만 간주했기에,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진심을 느낄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는 성숙한 위치에서 과거의 나를 응시한다. 내 안에는 여전히 가난과 무관심에 떨고 있는 어린아이가 살고 있다. 그 아이에게 필요한 건 더 좋은 차나 더 높은 연봉이 아니었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이제 싸우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하며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지금의 내 품이었다.


니체는 운명을 사랑하라고 했다. 나의 가난과 분노조차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고통은 철학으로 승화된다. 나는 이제 복수라는 연료를 버리고 '평온과 성장'이라는 빛을 따라가려 한다. 에고의 갑옷을 하나씩 벗어 던지는 과정은 아프고 낯설지만, 그 틈새로 비로소 진정한 사랑과 평온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야 진짜 항해를 시작한다. 타인을 이기기 위한 항해가 아니라, 나를 온전히 사랑하고 그 사랑을 세상에 전하기 위한 여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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