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의 철학 ⑨] 블랙아웃(Blackout)

실수라는 어둠을 뚫고 다시 일어서는 법

by 자아

항해 중 가장 공포스러운 순간은 모든 전력이 꺼지고, 엔진이 멈추는 '블랙아웃'이다. 시끄러웠던 소음이 정적으로 바뀌는 그 찰나, 엔지니어의 심장은 차갑게 식고, 쿵하는 마음에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의 사소한 실수일 수도, 예상치 못한 기계의 결함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왜 이런 실수가 일어났나'를 탓하며 주저앉아 있을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1. 비상 발전기는 어둠 속에서 돌아간다

모든 전력이 차단된 절망적인 순간, 배는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다. 암흑이 찾아오는 것과 동시에 비상 발전기가 가동되기 때문이다. 비상 발전기는 평소에는 존재감이 없지만, 시스템이 무너진 최악의 순간에 항해 장비와 최소한의 조명을 살려내는 회복의 보루다.

우리 삶의 회복탄력성도 이 비상 발전기와 닮아 있다. 실수를 저질렀을 때, 혹은 예상치 못한 실패로 삶이 깜깜해졌을 때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은 대단한 성공의 기억이 아니다. "실수할 수도 있어, 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돼"라고 스스로에게 건네는 내면의 비상 전력이다. 이 회복의 에너지가 살아있다면, 아무리 거대한 실수라도 그것은 침몰이 아닌 '잠시 멈춤'일 뿐이다.


2. 알람(Alarm)은 비난이 아니라 피드백이다

기계는 실수를 숨기지 않는다. 온도가 높으면 알람을 울리고, 압력이 낮으면 정지한다. 초보 엔지니어 시절에는 알람이 울리면 마치 내가 무능하다고 기계가 소리치는 것 같아 괴로웠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알람은 나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고장을 막기 위해 "여기 정비가 필요해"라고 알려주는 정직한 피드백이라는 사실을. 삶에서 저지르는 실수도 일종의 '인생 알람'이다. 실수는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거나, 특정 부분에 과부하가 걸렸음을 알려주는 신호다. 실수를 저지른 자신을 자책하는 데 에너지를 쓰기보다, 그 알람이 가리키는 곳을 열어보고 무엇을 고쳐야 할지 분석하는 트러블슈팅(Troubleshooting)의 자세가 필요하다. 실수를 통해 배운 데이터는 다음 항해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가장 귀한 자산이 된다.


3. 복구 순서(Sequential Start)를 지키는 침착함

블랙아웃 이후 전력을 복구할 때는 모든 기계를 한꺼번에 켜지 않는다. 과부하를 막기 위해 중요한 기계부터 차례대로 살리는 '순차 기동(Sequential Start)' 과정을 거친다.

마음의 회복도 마찬가지다. 실수를 수습하려는 조급함에 한꺼번에 모든 것을 되돌리려 하면 마음의 엔진은 다시 과부하로 멈춰버린다.

먼저 거칠어진 숨을 고르고(비상 전력),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하나씩 해결하며(순차 기동),

천천히 일상의 출력을 높여가야 한다.

완벽하게 실수 없는 항해는 없다. 다만 실수를 마주했을 때 얼마나 침착하게 복구 과정을 가동하느냐가 숙련된 엔지니어와 초보를 가른다.실수해도 괜찮다. 배가 블랙아웃을 겪고 나면 시스템이 더 견고해지듯, 우리도 실수를 복구하는 과정을 통해 더 깊은 지혜를 얻는다.



오늘 나의 하루에 '실수'라는 기록이 남았더라도 좌절할 필요는 없다. 내 안의 비상 발전기가 돌아가고 있고, 다시 엔진을 올릴 순차 기동의 의지가 있다면 나의 항해는 결코 실패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둠을 뚫고 다시 켜지는 엔진룸의 불빛처럼, 우리의 회복탄력성은 시련 속에서 비로소 그 눈부신 가치를 증명한다.



작가의 이전글​[바다 위의 철학 ⑧] 자존심과 자존감의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