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승화와 BOG
LNG선(액화천연가스 운반선)의 화물창은 영하 163도의 극저온을 유지한다. 하지만 아무리 완벽한 단열재를 둘러쳐도 외부의 열기는 기어코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그 열기 때문에 액체 상태였던 가스는 조금씩 기화되어 증발한다. 이를 BOG(Boil-Off Gas, 증발 가스)라고 부른다.
엔지니어의 입장에서 BOG의 발생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물리 현상이다. 외부와 온도 차가 존재하는 한, 가스가 증발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우리 내면에서 감정이 일어나는 것 또한 이와 같다. 세상이라는 열기 속에 노출된 인간이 슬픔, 불안, 분노라는 감정의 가스를 만들어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것은 결코 잘못된 것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화물창 내부에 가득 찬 BOG를 그대로 두면 압력이 높아져 CARGO TANK가 터질 위험이 있다.전체를 위협한다. 그렇다고 이 귀한 가스를 대기 중으로 무의미하게 내뿜어버리는(Venting) 것은 자원 낭비이자 환경 오염이다.
과거의 배들은 이 압력을 감당하지 못해 가스를 허공에 버리거나 태워 없앴다. 하지만 현대의 선박 엔진은 이 가스를 다시 모아 거대한 배를 움직이는 연료로 사용한다. 이것이 바로 공학이 실천하는 승화(Sublimation)다. 쓸모없거나 위험해 보이는 부산물을 가치 있는 동력으로 치환하는 기술 말이다.
우리의 감정도 마찬가지다. 일상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감정의 압력을 그저 억누르기만 하거나(압력 상승), 혹은 타인에게 쏟아부어 버리는(배출) 것은 결코 도움이 되는 방식이 아니다.
일상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감정의 압력을 그저 억누르거나 타인에게 쏟아부어 버리는 것은 하수의 방식이다. 나는 이 감정들을 사유라는 압축기에 통과시켜, 나를 움직이는 가치 있는 에너지로 전환하는 법을 택하기로 했다
분노가 치밀 때 그것을 누군가를 공격하는 데 쓰는 대신, 나를 증명하는 업무의 몰입도로 바꾸는 것. 슬픔이 차오를 때 그것을 자책에 쓰는 대신,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는 공감의 깊이나 한 편의 글로 써 내려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감정이라는 자원을 가장 세련되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승화의 기술'이다.
나는 이제 내 안의 온도가 높아져 감정의 가스가 피어오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가스가 풍부해질수록 내가 더 힘차게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발생은 자연의 섭리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나의 의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