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치유] 지금 나를 만나러 갑니다
2001년 당시 인문계 고교 고3 학사 일정
등교시간: 07시 10분
하교시간: 22시 00분
등교일수: 월화수목금토(주6일)
지금 생각하면 교육부가 제정신인가 싶을 정도로 잔인했던 학교 체류 시간.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다녔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병맛. 버텨줘서 나한테 정말 고맙다. 학교는 그야말로 끔찍한 체험의 장소였다. 그래서 학교에 대한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음악 미술 체육을 좋아한 나는 학교에서 듣고 싶은 수업이 없었고‘대입 준비’라는오로지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서 모두가 똑같이 짜여진 수업을 강제적으로 들어야만 하는 공교육의 커리큘럼은 나처럼 마음이 아픈 아이들에게는 잔인함 그 자체였다. 요즘은 자퇴를 권유하기도 하고 대안교육도 잘 되어 있지만 그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그래서 나는 자발적 앗싸를 자청했다. 외국에 홈스쿨링*제도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은 우리나라도 홈스쿨링을 활용하는 학부모가 있다. * 홈스쿨링(home schooling): 집에서 학교의 업무를 대행하는 일 나는 기질적으로나 성격적으로나 단체 생활을 못 하는 사람이다. 여기에 사람에 대한 트라우마는 기름을 붓는 격. 심지어 중학교 때는 수학여행도 안 갔다. (그 당시에 안 간다는 건 정말 드문 경우였다.)
집단 숙식이라... 아... 아.... 악!!!!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나는 공교육에서는 부적응 학생*이었지만 대학 생활은 여러 면에서 두각을 보일 만큼 적응을 잘했다. *내가 부적응 학생이라는 데에 수긍할 친구와 선생님은 없다. 왜냐하면 나는 생존 본능처럼 아주 모범적인 학교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선생님도 친구들도 지금까지 내가 아주 모범적인 아이인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교가 좋았던 이유
첫째, 내가 듣고 싶은 수업을 스스로 찾아서 수강할 수 있었다는 것.
둘째, 내가 수업을 듣건 말건, 학교를 오든 말든, 졸업을 하든 말든 간섭이라곤 일도 없는 대학 문화가 내게 맞았다는 것. 나처럼 자립심과 독립심, 자기 주체성이 강한 아이는 구속과 간섭, 틀에 박힌 커리큘럼은 고통만 안겨줄 뿐이다. 요즘 학교에서는 '학생 정서행동 특성검사'라는걸 한다. 초1/초4/중1/고1, 총 4번 실시하게 된다. 4월에 실시하며 정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유무를 가려내는 일종의 선별검사(screening test)이다. 점수에 따라 정상군과 관심군으로 나뉜다. 이 검사 얘기를 하는 이유는 그때는 그런 검사가 없었지만 있었다면 나는 분명히 관심군으로 나왔을 것이다. 그것도 우선으로. (관심군은 또 위험도에 따라 '일반'과 '우선'으로 나뉜다.)
그런 내가 전문상담교사로 학교에 근무했을 때 관심군 학생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어땠을지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 책을 계속 읽으신 분들이라면 이해하시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