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고 긍정적인 명랑한 사회라는 허상

[3부: 치유] 지금 나를 만나러 갑니다

by 네오

※ 책에 나오는 ‘주치의’는 과거 치료받았던 정신과 의사이며 주치의와의 대화 내용은 주치의의 허락하에 진료과정을 녹음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 사회 불만 정신과 진료 녹음 파일(1) -

나> 이런 단어에 제가 알러지가 있거든요. <밝고 긍정적이고 가족 같은 분위기, 원만한 성격> 이런 단어를 보면 불편해요.

주치의> 그건 알러지가 있어줘야 됩니다. 그거는 오히려 실존주의. 제대로 그런 단어에... 그런 단어는 허상이잖아요?

나> 그럴 필요 없잖아요?

주치의> 그럴 필요가 없는 게 아니라 그럴 수 없습니다!그런데 그렇게 세뇌를 시키지. 왜? 그래야지 막연하게.. 이게 전체주의 국가 특징인데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그렇게 ‘너는 지금 열심히 일하고 밝게 살면은 나중에 잘될 거야’라고 해줘야지 나라 GDP가 올라가요.

나> 이게 정서 폭력으로 느껴져요. 저는 이런 단어가.

주치의> 맞습니다.

나> 이렇게 느끼는 거 괜찮은 거죠?

주치의> 당연하죠! 그런 말을 남발하면 안 되고 사기야. 사기.




밝고 긍정적인 명랑한 사람만 좋아하는 사회 분위기가 싫었다. 그럼 나 같은 사람은 어쩌라고?!



- 사회 불만 정신과 진료 녹음 파일(2) -

나> 점심시간 때 같이 밥 먹으러 갈 때가 제일 괴롭거든요.

주치의> 혼자 먹을 때는 어때요?

나> 혼자 먹을 땐 정말 편해요!

주치의> 그러니깐! 그게 맞다니깐요! (하략)

나> (주절 주절)

주치의> 본인이 맞아요! 자, 정리할게요. 기준은 늘 본인입니다. 본인 기준대로 하면 돼요. 외국은 밥 먹을 때 왜 편한 줄 알아요? 지킬 거 다 지키거든요. 매너 지키지. 줄 설 때 거리도 다 지키지. 존댓말 이런 것도 없지.

나> 그럼 외국 사람들은 같이 있어도 존중받기 때문에 같이 있어도 편한 거에요?

주치의> 그렇죠! (다른 나라 사례 설명) 그 정도 매너거든요. 그게 사람을 존중하는 거 맞잖아요? 그러니깐 이거는 시스템상의 문제가 많습니다.굳이 같이 밥을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럼 남들은 그렇게 얘기하지. 그러면 왠지 왕따처럼 보일까 봐. 여하튼 그런 이상한... 막말로 그렇게 보이면 어떤데? 그런 이상한 수치심? 우리나라는 뭐냐면 (다른 사람과) 어울린다, 어울리지 않는다에 대한 이상하게 많은 가치를 둬요.

나> 네!

주치의> 직장은 원만하면 그만이다. 직장에 놀러 왔나? 친구랑 왔나? 가보니깐 있는 사람들이지. 어떻게 랜덤으로 다 친할 순 없잖아요. (점심 먹으러) 같이 가자고 하는 사람들도 절반은 예의상 하는 말입니다. 이럴 때 잘 따져 봐야 돼요. 전부 다 눈치 보는 사람들뿐입니다.

나> (주절주절)

주치의> 자, 봐요. 집단의 일방성 때문에 본인의 취향이, 개성이 무시되고 있잖아요. 폭력이죠. 맞잖아요? 그래서 항상 헷갈리지 마십시오.

나> (주절주절)

주치의> 중요한 건 본인이 ‘사회생활을 잘 해야 한다.’ 이 명제만 지워버리면 돼요. (나는 부정했지만 나에게 그 명제가 있음을 주치의가 간파하고 한 말)사회생활을 잘해야 한다는 명제부터 지우십시오.

나> (상략) ‘히키코모리처럼 살다 가지 뭐’라고 (스스로) 단정 지었거든요.

주치의> 근데 이제는 그렇게 하지 마시고 문제는 보편성에 따라갈 것이냐 말 것이냐. 보편성과 특수성, 두 가지를 다 가질 수 없습니다. (하략)




나는 프로 혼밥러다. 직장 다닐 때 가능한 한 혼자 밥을 먹었다. 혼밥을 시작한 지는 23살 때부터였다. 휴학을 1년 하는 바람에 친한 동기들과 학년이 달라져 자연스럽게 혼자 대학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요즘이야 혼밥이 별일이냐 만은 그 당시만(20년 전) 해도 '여자'가 혼자 밥 먹는 일은 한 번 쳐다보게 되는 '특별한 볼거리'처럼 여겨지던 때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남들이 쳐다보는 시선보다 혼밥 하는 나를 바라보는 내 안의 시선이 더 따가웠던 것 같다. 우리가 배워야 하는 건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지 눈치가 아니다.


주치의> 보편적인 모든 가치를 의심하고 또 의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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