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심연]무의식 속으로 들어가다
무속인> 뭐 때문에 왔어?
나> 다 포기하고 그냥 죽고 싶어요.
무속인> 객사한 조상이 있어. 네 친할머니도 아직 저승 문턱에도 못 갔어. 억울하게 죽은 조상들을 위로해야 네가 앞으로 사는 게 편해.
나> (...) 어떻게 해야 되는데요?
무속인> 돼지 온마리 잡아서 굿하는 게 젤 좋지!! 부적도 하나 써 줄게.
나> 비용이 얼만데요?
무속인> xxx만 원
나> 네에??!!
뭐 어차피 죽을 목숨. 굿이라도 시원하게 한 판하고 죽지 뭐. 나도 모른다. 내가 왜 나빠졌는지. 사실 정신과 초반 2년은 병원 치료에 불성실하게 임했다. 약도 잘 안 먹었다. 그래서 나빠졌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정신과 다니기 싫다는 무의식적 저항이었으리라 판단된다. 삶에 대한 마지막 미련. 오늘 자살할 예정이 아니었기에 오늘의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었다.
며칠 후
나> 할게요. 근데.. 좀 깎아 주시면 안 돼요? 퇴직금인데..ㅠㅠ
무속인> 그래! 내가 네오 살린다 생각하고 그렇게 해줄게.
굿하던 당일. 내가 지불한 굿 비용으로 돼지 온마리가 잡혀있고 접신을 시도하는 의식을 하신다. 내 조상에게 뭐라 뭐라 하신다. 나에게도 뭘 하라고 시킨다. 쭈뼛쭈뼛 거리니 성의가 없다고 야단도 맞았다. 아ㅋㅋㅋ 우낀다. 우리 조상님들 마음 씀씀이가 너무 야박하신 거 아닌가? 내 부모가 평생 뼈 빠지게 제사를 얼마나 지냈는데!!!! 산 사람인 내 목숨보다 죽은 당신들이 더 중요했던 부모님인데!!! 이러시면 정말 곤란하죠!!! 아ㅠㅠ 슬푸다. 굿으로 지불한 내 퇴직금이여. 아무튼 난 그분들 덕에 살아남았다. (라고 해야 돈이 안 아깝겠지???)
굿보다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그분들과 함께한 밥 한 끼와 날 위해 애를 써주시던 모습. 나도 나를 버린 마당에 나를 살리겠다고 누군가 날 위해 애를 써주는 모습은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변화의 포인트는 참 아이러니하다. 죽든지 해탈하든지 둘 중 하나. 하루라도 편안함을 얻어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굿하고 나서 한 달 뒤 벨리 댄스를 시작했다. 나는 벨리댄스로 삶의 활력을 되찾고 다시 정신과를 찾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운(?) 주치의를 보며 굿을 했다는 고해 성사를 시작으로 멈췄던 치료가 다시 시작되었다. 주치의의 온화한 미소와 따듯한 음성이 치료의 의지를 되살려줬다.
나> (의기소침하게) 샘... 저 굿도 했어요...
주치의> 잘 하셨어요.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