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심연]무의식 속으로 들어가다
나> 선생님, 저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불시착한 것 같아요.(하략)
정신과 주치의> 저도 이 나라(한국)에만 있으면 아이컨텍(눈 맞춤)이 안 되고 말을 더듬어요. (중략) 귀국해서 인천 공항 합류하는 순간부터 기분 확 잡치잖아요. 툭툭 치고 가고. 그죠?
어릴 적부터 가요보다는 팝송이 끌렸다. 나는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지 않는다. 한때 김치, 된장, 고추장도 냉장고에서 다 제거했을 만큼 혐한嫌韓이 강한 사람이었다. 물론 이민도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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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인 특유의 한恨의 정서와 유교문화가 불편했다. 원소 주기율표 외우는 것보다 어려운 가족 호칭들. 반말과 존댓말이 있는 것도 불편했고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내 의견을 묵살시키고 반말하는 어른들이 싫었다. 이름 아닌 ○○과장님, ○○팀장님 이렇게 직급으로 사람을 부르는 것도 못마땅했다. 부모가 지어준 좋은 이름을 놔두고 왜 꼭 저렇게 불러야 하는지 나는 아직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내가 조직 생활이 체질에 맞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외국에 살다 온 적도 없는 사람이다. 근데 한국에서 한국말 하면서 한국 사람들하고만 평생을 살아왔는데... 사는 게 불편했다. 나도 내가 왜 이런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어디 가서 말도 못 했다. 얘기했다간 외계인 취급받으니깐.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이와 관련된 얘기를 주치의에게 자주 하게 되면서 모든 실마리를 다 풀게 되었다. 영어에는 반말과 존댓말이 없다. 영어라는 언어는 그 자체로 상호 존중의 의미를 담고 있다. (나 사대주의자 아님)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나이와 직급에서 찾는다. 권위를 왜 그런 데서 찾는지 잘 모르겠다. 존경할만하면 알아서 존경한다. 한때 외국인 친구를 만난 적이 있었다. (외국인 친구가 한국어 수준이 고급이었기 때문에 나는 주로 한국말을 했다. 내 영어 실력은 겨우 왕초보를 면한 초보 수준이다.) 내가 한국어보다 영어가 편했던 이유는 복잡한 호칭이 없고 직급과 계급에 상관없이 사람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한국어가 상하 수직의 위계 문화를 반영한다면 영어는 그 언어 자체로 평어인, 수평의 문화를 반영한다. 우리는 학교 선생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Hey, 네오”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렇게 불렀다간 4가지 없다는 소리를 듣거나 또라이 소리를 듣거나 둘 중 하나.
한국어를 석사까지 전공한 외국인 친구였기에 서로의 언어에 대한 얘기를 많이 주고받았는데 그가 내게 해줬던 말이 있다. “언어는 사고를 반영한다.” 난 여전히 한국살이에 적응 중에 있다.
내 사회화는 언제쯤 완성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