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심연]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다
요즘은 초, 중, 고에서 '학생 정서 행동 특성검사'를 의무적으로 실시해서 나라에서 학생들의 정신 건강을 스크리닝(screening) 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해 주고 있다. 애석하게도 난 그런 세대에 태어나지 않았고 그 흔한 ‘심리상담소’의 존재 자체도 몰랐다.
‘마음의 병’이라는 것을 말할 수도, 인지할 수도 없는 사회 분위기였고, 그런 것이 있다면 쉬쉬하거나 개인이 억압하고만 살아야 하는 환경 속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내 정신 건강의 심각성과 자살사고는 태어남과 동시에 누적된 결과물이지 지금 뿅 하고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죽음이나 자살 생각을 안 해본 날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지금도 난 여전히 자살 생각을 한다. ‘병적인 자살 생각’을 할 때와 지금의 자살 생각과 차이점이 있다면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처럼 오랜 습관처럼 불쑥 나타날 뿐이지 이내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비유를 하자면 알코올 중독자가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난 뒤 한 번씩 술 생각이 나다가도 이내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나는 내 자살 생각을 믿지도 신뢰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진지해지지도 않는다. 지금은 실행에 옮길 생각 애초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다만 생각할 뿐이다. 이내 습관적 사고 임을 알고 즉시 멈춘다. 증상이 만들어 낸 환영幻影일뿐이고 그저 흘러가는 의미 없는 상념想念일뿐이다.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 없거나 자살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람에게는 왠지 이질감이 느껴진다. 내가 말하는 자살 사고는 질환의 증상으로 파생되는 병적인 자살사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삶과 죽음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실존적인 고민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 그런 실존적인 고민과 성찰 없이 돈과 명예, 권력과 같은 지금의 쾌락에만 좇기 급급한 사람들과는 내 마음을 나누고 싶지 않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우리 인생이 어떻게 살든 죽음이라는 종착역에 달한다는 진리는 아이러니하게 지금 현재의 삶을 충실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은 죽음의 갈망이 내게 준 깨달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