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심연]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다
※ 책에 나오는 ‘주치의’는 과거 치료받았던 정신과 의사이며 주치의와의 대화 내용은 주치의의 허락하에 진료과정을 녹음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주치의> 자 자, 아 아. (녹음) 시작하시죠. 팟캐스트 할래요? 그럼 재밌겠다. (웃음)
몇 주 뒤
나> (정신과 주치의에게 팟캐스트 아이디어 얘기 중) 이렇게 하면 어때요?
태어나서 난생처음으로 먹고사는 생존이 아닌, 나를 위해, 자아실현을 위해, 해보고 싶은 ‘꿈’이라는 것이 생겼다. 주치의와 함께 하려 했던 프로젝트였다. 주치의가 죽었다. 그의 죽음과 동시에 내 ‘꿈’도 연기처럼 사라졌다. 내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그해, 한 달 간격으로 주치의마저 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살면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나날이었다. 주치의는 내 삶의 ‘나침반’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나는 망망대해에 표류하는 배와 같은 형국이었다.
주치의> 이제 (병원) 그만 오실 때도 됐는데(미소)
어느 시점부터 주치의가 계속했던 말이었다. 무시했다. 나는 정신과를 계속 다니고 싶었다.
주치의> 일시적으로 또 오실 일이 있을 겁니다.(치료 종결 때 멘트)
치료 종결 후 수퍼비전으로 면담을 이어갔기 때문에 나는 한동안 내 병세를 잊고 살았다. 정신과 치료라는 것이 완치의 개념이 아니다. 어리석게도 나는 '마음의 병도 암처럼 재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이제 겨우 목숨을 살려놓은 수술에 성공했고 회복과 재활하는 단계인데...인생은 이렇듯 예측할 수 없는 각본 없는 드라마다.
심리적 응급 상황.
누군가가 필요했다. 새로운 정신과를 다시 알아보고 약물치료를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내 심리 상태는 주치의의 죽음으로 인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주치의에 대한 병적 애도哀悼반응은 뒤늦게 시작되었고 새롭게 만난 정신과 의사의 치료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자꾸 예전 주치의가 오버랩되며 자꾸만 비교가 되었다. ‘왜 이렇게밖에 진료를 못하는 걸까?’ 속된 말로 수준 차이가 너무 심했다. 그러니 새로운 정신과 의사가 성에 찰 리가 없었다. ‘주치의를 마음속에서 떠나보내야 다시 치료를 시작할 수 있다.’ 이미 사라진 주치의와의 치료적 기억은 내 병세를 악화시키고 있었고 치료를 방해하고 있었다.
벌써 2명의 정신과 의사를 갈아치운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