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om#7
생각해 보면 폭발물이 내 안에서 터지든 밖에서 터지든 무조건 반경 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치게 되어 있다. 폭발하면 나도 다친다는 것이다. 그걸 알기 때문에 가능하면 폭발하지 않도록 다스리면서 살아간다. 가장 좋은 건 아예 폭발할 가능성을 차단시키는 것. 폭발물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찾아가서 뇌관을 제거하고 머릿속에서 뽑아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 머릿속이라는 것이 너무 복잡한 구조이고 층위가 두터워서 제거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 그래서 보통은 자극(사람, 물건, 시간, 공간)이 바뀌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서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내 허락도 없이 2005년의 Y와 닮은 2025년의 Y가 나타났다. 상관관계도 없고 연관성도 없는 두 명의 직장상사 Y 때문에 종종 냉온탕을 드나들고 있다.
그나마 명상이란 친구가 있어서 뜨거워서 데기 전에 차가워서 얼어버리기 전에 나를 보호하고 있는 중이다.
2005년의 Y이야기를 해 볼까? 진짜 최악의 인성을 갖춘 사람이 있었다. 가족과 떨어져서 사는 그 사람은 주말에만 집에 가고 평일에는 부대옆에 있는 독신간부 숙소에서 살고 있었다. (주로 독신간부 숙소는 미혼인 간부들이 거주하는 곳이지만 기혼이라도 가족과 함께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입주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그 사람과의 악연을 다 적기도 힘에 겨울 정도이지만 머릿속의 폭발물을 제거하기 위해서 한번 끄집어내어 본다. Y는 주말에 집에 갔다 오면 X레이를 많이 찍어서 아주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아는 데까지 한참이 걸렸다. 때로는 떡을 많이 쳐서 힘드니까 오늘은 식당에 특별식을 준비하라고 해라.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상스러운 놈...
평일에 혼자 늦게까지 잠이 안 오니까 너희들이 놀아줘야 한다며 수시로 회식을 주동했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하급자였던 우리가 부담해야 했다. 저녁식사에 약간의 반주 정도면 그냥 그러려니 했을 텐데 노래방, 노래방도우미, 그리고 기분 좋으면 나이트까지 풀코스로 대접받기를 원했다. 미친놈...
돈, 시간, 에너지를 썼으면 정당한 대가가 돌아오는 것이 인지상정이거늘 성질이 어찌나 변덕스러운지 어제 실컷 술 먹고 기분 좋을 만 한데 오늘은 또 어디서 수가 틀렸는지 애꿎은 부대원들을 드잡이 하기 시작한다. 경계를 똑바로 안 했느니, 일을 똑바로 못하느니, 예의가 없다느니, 청소 상태가 마음에 안 든다느니 온갖 구실을 내세워서 그 욕을 다 나에게 쏟아냈다. Y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네가 여군이라서 애새끼들 교육을 똑바로 못 시켜서 이 모양 이 꼴이잖아! 네가 맨날 꼬박꼬박 말대꾸하고 시키면 째깍째깍 안 하니까 애들도 닮아서 저 모양인 거지!!" 그래, 그거였다. 내가 여군이라서 다른 남군들에 비해서 고분고분하지 않고 다루기 힘들다는 게 불만이었던 거다. 비겁한 놈...
부대원 중에 바둑을 아주 수준급으로 잘 두는 병사가 있었는데 심심하면 그 병사를 행정반에 불러다 놓고 바둑을 두었다. 일도 못하게 3시간도 좋고 4시간도 좋고 취사병에게 라면까지 끓여서 대령하라고 하고선 믹스커피에 담뱃불을 비벼 끄면서 침을 뱉어가면서 밤이 늦어 취침시간이 될 때까지 그러고 앉아있었다. 미친놈...
12월 31일 밤 22시였을까? 당직근무자가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왔다. 누가 휴가미복귀를 했나? 탈영을 했나? 그런 일 아니고서야 이 밤에 전화벨이 울릴 일이 없는데.... 호출이었다. Y가 중대 전 간부를 호출한 것이다. 약 20명의 간부들이 그의 앞에 늘어섰다. "야! 너는 뭐 하는 새끼야? 정신이 있어 없어? 왜 애들끼리 차례음식을 만들고 있어!! 니들은 집에서 처자고 애들만 일 시키고 싹 다 미쳤구나?"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인지. 낮에 순찰 다 돌고 당직근무자한테 임무 부여하고 갔으면 됐지. 그럼 밤새 차례음식 같이 만들고 있어야 한다는 건가? 어쨌든 일단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계속 내뱉었는데도 한번 터져버린 그의 분노는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간부들을 한 명 한 명 지목하면서 들들 볶아대기 시작했다. 마구 들들 볶더니 결국 화살은 나에게 꽂혔다.
"네가 여군이라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중대장 네가 문제야. 에이씨 XX!!"
"야! 네 잘못을 알지? 알면 무릎 꿇어! 싹싹 빌어!"
아이고 이 사실을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알면 극대노 하시겠지만, 나는 그날 그가 원하는 대로 장렬히 전사해 주었다. 무릎을 꿇고 싹싹 빌었다.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렇게 해야 이 상황이 끝날 것 같았다. 간부들이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밤을 담배연기가 뽀얗게 낀 방에서 질식사당하는 생쥐처럼 초췌한 모습으로 서 있는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다면 그깟 무릎쯤이야....
그런 시간들이 하루 이틀 사흘 일 년이 지나갔다. 하소연할 곳도 기댈 곳도 없는 일개 중대장이 할 수 있는 건 버티고 견디면서 그에게서 받은 분노를 내 부하들에게 쏟아내지 않고 내 몸에 가두는 것뿐이었다. 그놈을 내 손으로 죽이고 나도 감방에 가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밤마다 그놈을 죽이는 꿈을 꾸었다. 그놈이 안 죽고 나를 쫓아와서 내가 오히려 두들겨 맞는 꿈을 꾸기도 했다. 너무 피곤했지만 잠이 오지 않는 날이 많았고, 말수가 적어졌고, 뼈 마른(?) 사람이 되어갔다. 그때의 나는 분명 제정신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부대의 후배장교들에게 그분이 우리를 좀 힘들게 하지만 어쩌겠냐 조금만 더 견뎌보자는 뜻의 편지를 한통 보냈는데 그게 Y의 손에 들어갔다. 그날 식당에서 밥그릇이 날아왔다. 다행히 내 옆 테이블을 맞고 바닥에 떨어진 것을 보니 오조준했나 보다. 그리고 그 해 인사평가는 업무실적과 무관하게 완전히 바닥을 쳤다. 그 인사평가는 그 후로 10년 동안 나의 뒤를 쫓아다녔다. Y의 분신이 되어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징그럽게 길게 따라다녔다. 그 평가결과를 뒤엎고 군대에서 살아남아야 그 미친 X가 내 인생에 저지른 죄를 멋지게 갚아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대로 되긴 했다.
나름대로 고군분투한 결과의 값으로 나는 지금까지 군대에 남아있고, 엄청 높은 계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저 군인으로서 제법 열심히 살았어요라고 말할 정도의 위치에 올라왔고, 지금 명상을 군에 보급하고 정착시키겠다는 포부를 갖고 살고 있다. 그 Y를 죽이겠다는 계획을 실행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하지만 내 잠재의식 속에는 그때의 그 상처들이 폭탄으로 남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 이후로 비슷한 상황, 말투, 행동을 보이는 사람이 나타나면 상대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일단 온몸으로 거부반응이 나타났다. 한동안 곳곳에 미친 X들이 많이 출몰했었지만 공간이 분리되어 있거나 가끔 만나거나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었기 때문에 나에게 미치는 영향은 2~3 수준이었고 그냥 견딜만했다. 어릴 때 워낙 무거운 압박의 시간을 보내봐서 속칭 맷집이 커졌다고 해야 할까? 이게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내 앞에 Y와 비슷한 사람이 나타났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내 과거의 상처를 건드리는 사람, 나를 공공연하게 깔아뭉개고 무시하는 사람!! 내가 만약 명상을 공부하는 중이 아니었다면 정신건강의학과를 들락날락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20년 전에 만난 폭탄을 떠올리게 하고 트리거가 되어 자꾸만 내 마음을 힘들게 하는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상사'는 성인지 감수성 교육을 매년 받는데 대체 교육의 효과는 언제 발현되는 것일까?
동승한 자가용 안에서 뒤돌아 보지 말라며 바지를 갈아입는다.
삼계탕을 먹고 나서는 다음날 몸이 달라진 것 같지 않냐 몸에서 열이 오르면서 아침에 다르더라며 남자들은 역시 이런 걸 챙겨 먹아야 해. 그렇지 않냐? 너는 어땠어? 저도 그렇던데요. 뭔가 다르던데요. 신나서 떠든다.
몸이 아프다는 사람에게 갱년기 아니냐? 아줌마들은 갱년기 오면 업다운이 심해진다던데.. 그런 거 아냐?
직장 안에서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경계를 위험하게 넘나 든다. 20년 전 Y의 X레이 이야기가 오버랩되면서 확 짜증이 났다. 나는 그걸 다 들어내고 있다. 왜냐고? 글쎄 왜 그러고 있을까? 만약 누군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당장 성희롱으로 고발하라고 말을 해 주었을 텐데...... 아마도 그 20년 전의 Y를 잘 참아내자는 발언을 한 대가를 너무 혹독하게 치른 탓에 굳이 다시 또 그 과정을 겪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큰 것 같다. 그것 또한 나의 선택이니 내 선택의 대가를 내가 가져가면 된다.
명상을 배우면서 인과의 법칙에 대해 더 신뢰하게 되었다. 인간은 결국 지은만큼 받게 된다.
2025년 나타난 Y의 언행들은 고양이수염이 간지럽히는 정도의 강도이지만 그때보다 훨씬 더 큰 자극으로 느껴진다. 최근 7년간 군대에서 양성평등분야는 천지개벽할 정도로 많이 변했고, 적어도 최근까지 내가 만났던 남자들 중에서 이렇게 나오는 대로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그 고양이수염만 한 자극이 큰 갈고리로 긁어대는 것처럼 크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건 내가 느끼는 것일 뿐 Y의 진짜 의도는 물어보지 않았으며, 그런 말들은 듣기 불편하니 나가서 하라거나 조심하라고 경고한 바도 없으니 할 말이 없다. 다만 그 말들이 머릿속에 맴도는 것은 나의 트라우마가 그로 인해 자꾸 건드려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좀 품위 있는 분위기에서 근무하고 싶다.
식당의 위생상태는 엄청 따지고, 맛집에 별점이 4점 이상인지가 중요하고, 식당 직원의 서빙태도는 중요하면서 자신의 말과 행동은 왜 검증해 보지 않을까?
명상은 일어난 사건과 생각을 감각으로 알아차리는 것이라고 배웠다.
나는 명상을 배우고 있는 사람으로서 모든 사건의 가치는 중립이라는 것을 삶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냥 그 자신에게는 그게 아무 문제가 안 되는 것이겠지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사람들 모두 그 사람의 행동과 말을 정말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넘기고 있고,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데 내가 그 부분에 집중해서 신경을 쓰고 있어서 나만 힘들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도 어느 순간엔가 그런 말과 행동으로 누군가에게 갈등을 주었을지도 모르는데?
결국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내 마음뿐이다. 내가 계속 Y에게 신경 쓰면서 내 에너지를 낭비할 것인가? 관심을 끊어버리고 내 삶에 더 집중할 것인가 딱 두 가지의 길 뿐이다. 그 사람의 삶과 내 삶은 분리되어 있는 것이고 내가 그 사람의 삶에 깊게 관여할 바가 아닌데... 오늘은 분명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상사가 죽을 만큼 보기 싫었는데 어느 날은 불쌍해 보이기도 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그저 나와 생각의 층위가 다른 사람이라 언어사용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인가 보다 그렇게 생각되기도 한다.
최근에 유행했던 ~~~ 김 부장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류승룡 배우가 연기한 그 김 부장은 임원승진에서 밀려나고 투자에 실패하고, 후배에게 모욕을 당하는 장면들을 통해서 그 사람이 엄청난 시련의 주인공인 듯 느껴지게 포장되었다. 하지만 김 부장 때문에 힘들어하는 부서원의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은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뒤쳐져서 부서원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회사를 곤경에 빠뜨리고 끝까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깨닫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드라마가 끝나고 나서 주인공이라 안타깝게 비쳤지만 조직사회에서 어느 누가 상대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쏟아부을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이 남았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직장 상사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내 마음이다. 내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에는 아주 흡족한 사람일 수 있다. 나 또한 그 사람의 마음에 흡족하지 않은 부서원일 수 있으므로 그 마음에 들지 않는 상사와의 관계에서 갈등 상황을 겪을 때 그저 갈등 상황일 뿐 그것을 되뇌어서 내 마음을 다치게 하는 발상을 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어쩌면 지금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 누적되어 온 것들이 지금의 생각을 만들어 낸 것일 가능성이 높다. '트리거' 방아쇠를 당기게 하는, 폭탄의 안전핀을 뽑아버리게 하는 사건 : 이 사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큰 사건이 아니다. 아주 사소한 일이 트리거가 되는 경우가 많다. 수십 년 동안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다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면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일들이 한꺼번에 오버랩되면서 지금 눈앞에 있는 대상을 향해 폭발하는 것이다.
오늘도 이 단일의 사건은 그저 하나의 사건일 뿐 과거의 기억들과 상관관계를 만들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내지 않기 위해 명상을 배우고, 수련한다. 명상은 끊임없이 알려준다. 하지만 아직 수행이 덜 되어 있는 나는 가끔 냉탕과 온탕을 오가고 있다. 적어도 나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