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아! 너도 좀 쉬는 게 어때?

ssom#6

by ssom

마음아! 너는 자꾸 나를 속이려고 온갖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데 나는 이제 쉽게 속아 넘어가지는 않을 테니까 너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하지 마. 그거 해석하느라 나도 힘들거든? 그러니까 너도 좀 쉬는 게 어때? 몸이 쉬고 있으면 내가 얼마나 피곤한 상태인지 알아차리고 너도 좀 쉬면 좋을 텐데 왜 그 조용한 시간을 가만 두지를 않고 계속 떠드니? 자... 나 지금 명상시작하니까 진짜 조용히 하자. 제발!!!


매일 명상을 하기 시작한 지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늘 명상하려고 자리에 앉으면 마음이 말을 걸어온다. 그나마 대화가 되면 너무 다행인 날이지만 이 녀석은 계속 이상한 기억을 끄집어낸다. 가끔은 아주 어릴 적 엄마한테 야단맞아서 막 울던 기억을 끄집어내기도 하고 또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 좋아하던 선배네 자취방에서 어슬렁거리던 20대의 나를 보여주기도 한다.


아니 대체 지금 내가 50살이 훌쩍 넘었는데 그 시절을 왜 끄집어내냐고!!! 오늘 생각할 일도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너는 지금 한가하게 그런 거 뒤적거리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일과 관련된 것을 좀 같이 생각해 줄래? 진짜 도움이 안돼. 도움을 못 줄 거면 그냥 조용히 좀 있어. 가만히 있으라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저기 깊은 바닷속에 깊이 가라앉아있어 줄래?


아주 가끔 마음이가 도와주면 열 번 중 세 번 정도는 가만히 동참해 준다. 1년이 지났지만 마음훈련이 안되어 있는 것이다.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라는 책 제목은 진짜로 잘 지은 것이다. 상상해 봐라. 코끼리가 술이 취해서 그 육중한 몸을 움직이는 것을 상상해 보면 과연 그 코끼리를 길들이는 것이 가능한 일이기는 한 걸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마음을 훈련시키면 애초에 술에 취할 일도 없을 것이니 술 취한 코끼리를 길들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뇌과학적으로 접근하면 우리가 마음이라고 인식하는 그것은 사실 뇌의 이야기 작용의 일부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감성파괴자처럼 느껴지지만 이미 뇌과학에서 수많은 자기 공명기술들과 측정장비들이 그렇게 정의를 내려버렸다. 안타깝지만 가끔은 인정해야 한다.


마음은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할 수 있다. 마음은 내가 움직이지 않는 그 시간에 특히 열심히 일을 한다. 생각해 보면 내가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을 때는 마음은 일을 하지 않는다. 일, 운동, 정리, 먹기, 글쓰기, 책 읽기, 운동하기, 음악 듣기, 여행 그 모든 순간을 떠올려보면 그 순간에는 내 마음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어떤 방식이든 몸을 움직이면 마음은 가라앉는다.


하지만 몸을 다 움직이고 난 후 다시 고요함이 찾아오면 마음이 아주 신이 나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마음이라는 것은 희한하게도 가장 아픈 것에 집중한다. 대부분 즐겁고 행복한 순간의 흔적은 페스츄리처럼 바삭하게 마음에 쌓이고 아프고 힘들었던 순간의 기억은 퇴적암처럼 켜켜이 견고하고 단단하게 기억 속에 자리 잡는다. 그래서 그와 비슷한 순간이 오면 그 태고의 지하에서부터 기억을 끄집어내어서 꼭 어제 아니면 오늘 발생한 것처럼 나를 혼란하게 만든다.


혼란함이 찾아오지 않고 벗어난다면 너무 좋을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사람의 뇌 속에 있는 저장소는 수억만 개의 경험, 지식의 총집합체로 끊임없이 재잘거리면서 스토리를 만들어 낸다. 마음이 혼란스러워진 것도 내가 만들어 낸 스토리 때문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 스토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똑같은 스토리를 무한 반복하기도 한다.


특히 기억의 저장소 깊은 곳에 숨겨둔 아픈 기억들과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면 꼭 그 예전 기억에 오늘의 상황이 오버랩되면서 더 힘들어지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화가 났을 때 음악을 듣거나 잠시 고개 들어 하늘을 보거나 그런 순간에는 화가 난 이유와 상황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주위가 고요해지면 화가 난 순간이 떠오르너나 다시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이건 당연한 현상이다.


그래서 마음을 훈련시키면 고요한 순간이 와도 다시 화가 치밀어 오르는 일이 줄어든다. 화가 나거나 슬픔 순간이 잠시 인식되었다가 사라져야지 계속 따라다니면서 너는 화난 상태야. 너는 슬픈 상태야. 계속 화 내. 계속 슬퍼해. 그렇게 나를 조종하게 두면 안된다.


최근에 엄청 인기 많았던 이 사랑 통역되나요? 그 드라마에서 여자주인공이 겪고 있는 제2의 '나'의 모습은 누구에게나 다 있다. 그게 마음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도 그 마음이라는 녀석이 계속 모습을 드러낸다.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돈키호테처럼 그 안쓰러운 마음과 싸우다 보면 기진맥진해서 진짜 중요한 순간에 이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릴 가능성이 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마음이 힘들 때마다 1번부터 6번까지 그날의 상황에 따라서 내 몸을 움직이는 방식을 선택해 왔다.

1. 운동을 한다.(걷기, 요가, 달리기, 헬스, 등산 등)

2. 정리를 한다.(옷장, 주방, 집안청소, 사진정리 등)

3. 손을 움직인다.(글쓰기, 핸드폰, 게임, 식물 가꾸기)

4. 귀를 움직인다.(음악 듣기)

5. 입을 움직인다.(먹기, 수다 떨기)

6. 떠난다(여행)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의 치명적인 단점은 그 순간 당장 시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게 문제다 당장 시행할 수 없다. 그리고 1번부터 6번까지를 다 해도 고요해지면 다시 그 힘든 마음이 올라온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잠도 안 자고 계속 움직일 수는 없고, 누군가와 함께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적어도 혼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있을 때 힘들었던 기억에서 자유롭고 싶어서 명상을 배웠다.


명상을 할 때는 눈을 감는다. 처음에는 5분을 조용히 앉아있기가 힘들었다. 눈앞에 하얀색 검은색 물체들이 움직이고, 허리가 아프고, 반가부좌를 틀고 앉았지만 무릎도 아프고 몸에 은근한 통증이 일어났다. 호흡에 집중하라고 선생님은 말을 했지만 호흡에 집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없었다. 일단 그냥 앉아 있었고 힘들 때는 누워서 하기도 했다. 어쨌든 계속했다. 그냥 했다. 마음이 금세 평온해지지는 않았지만 뭔가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바깥의 소음에서 스스로 차단하고 고요한 상태로 들어가는 시간이 즐거워지기 시작한 건 일 년 정도가 지나서였다. 조용히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하다 보면 빠르게 뛰던 심박수가 안정되고 훨씬 더 안정된 상태로 변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 감각이 깨어난다. 무뎌져있던 감각이 깨어나면 평소에 느끼지 못하는 것들이 훨씬 더 잘 느껴지는 상태가 된다. 눈을 감고 오로지 나를 향해 조용히 시선을 돌려서 나를 잘 느끼게 되면 나의 몸, 정신, 마음 어느 곳을 먼저 챙겨봐야 할지 순서를 정할 수 있게 된다.


순서를 잘 정하면 살아가기가 훨씬 수월하다. 명상을 배우게 된 후 나는 적어도 마음에 휘둘리지는 않는다. 아주 가끔 폭풍이 치면 흔들리기도 하지만 금세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런 힘이 생겼다. 좋은 건 나누면 더 커진다고 해서 명상을 나누고 있다. 나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명상을 통해 조금 덜 힘들게 조금 더 평온하게 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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