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OM#5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파도 속으로 들어가 숨을 잘 쉬어야 한다. 명상이라는 공기통을 가슴속에 넣어 깊게 호흡하면서 파도가 잦아들기를 기다려야 한다. 파도를 몇 번 맞다 보면 파도 타는 법을 배우고 싶어진다. 파도가 무서워 바다에 뛰어들지 않는다면 절대 파도 타는 법을 배울 수 없다. 서핑하는 방법론 책 100권 읽어도 바다에 몸을 던지지 않으면 서퍼가 될 수 없다. 나는 인스타그램의 바다에 몸을 던지는 것을 선택했다.
군대에 명상문화를 보급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인스타 그램을 시작했다. 한 3주쯤 지난 것 같다. 브런치는 호흡이 긴 글을 써야 하는데 인스타그램은 한두 장의 사잔으로 표현을 하는 것이라서 요즘 젊은 사람들과 소통하기 좋은 도구라 생각했다.
내 주변 사람들은 SNS를 하는 사람이 정말 가뭄에 콩 나듯이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상황이라 경험을 나누어 줄 사람은 없다.
에라 모르겠다. 뭐 하다 보면 어떻게 되겠지 라는 호기로운 마음으로 일단 고!!!
나름 인스타 탐색전 후 브런치와 연결고리를 만들고 명상요가 특성을 담은 계정을 개설했다.
계정 아이디는 나의 지향을 담았다.^^
생각을 짧은 이미지와 단어로 시각화하는 것이 어려워서 그냥 사진 한 장에 의미를 담아보기로 했다.
12시간 이상의 고된 데스크 워리어로서 피로를 풀기 위해 요가링을 가져갔다. 훈련 나갈 때 요가링이나 땅콩볼 하나정도 가져가면 피로해소에 아주 좋은 친구가 된다.
온몸을 요가링에 기대어 마사지하고 나서 전투복을 침대 위에 올려두고 사진을 한 장 찍어서 우리 모두 힘내요 이런 7초짜리 릴스를 올렸는데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이 짧은 기록물이 19만 인사이트를 기록하는 일이 발생했다.
숫자를 잘못 본건줄 알았다. 이게 무슨 일이냐고 AI에게 물어보니 인스타그램이 이 게시물을 간택해서 여기저기 뿌리고 있는 거라고 했다. 참 신기한 일이네 이게 뭐라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 주는 것 자체로 그저 신기했고 더 좋은 메시지를 만들어서 올려야겠다 그런 정도의 생각을 했다. 이 기세를 활용해서 군에 명상 요가문화를 더 빠르게 확산시킬 수도 있겠다 싶어서 즐거웠다.
19.8만을 기록하던 날 누군가로부터 연락이 왔다.
계정 허가받은 거냐? 훈련 중에 SNS 하는 거 방첩에서 다 모니터링하고 있으니까 조심하는 게 좋겠다. 여기 사람들이 이 게시물 누가 올린 거냐고 쑥떡거리는 것을 들었다. 그 계급에 당신의 바이오를 가진 사람은 전군에 아마도 당신밖에 없을 것이고 금방 당신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좋은 이야기가 아니고 이상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서 구설수에 올라갈 수 있으니 조심하는 게 좋겠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갑자기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위장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개인계정이고 훈련내용을 언급한 것도 아니고 얼굴이 나온 것도 아니고 훈련장소가 노출된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가 될까? 이해가 안 되는데?
19만까지 노출되니까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 같다고 분명 어디선가 계정을 모니터링하고 있을 거라고 조금이라도 문제가 될 내용은 아예 없애는 것이 좋겠다고 조심해서 나쁠 것이 없으니 올렸던 자료는 내리는 게 어떻겠냐고...
쫄보가 된 나는 19만 인사이트 자료를 보관함으로 옮겼다.
그런 후 하루동안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걱정의 말이었고 나를 염려해서 한 말이었고 그 인사이트를 보관함으로 옮기는 것은 내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으면서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고 혈류가 빨라졌다. 약한 혈관을 타고 내려오던 혈액이 미세한 틈을 타고 피부밖으로 빠져나올 것 같았다.
그 자료를 그냥 두었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보았을 것이다. 릴스 한 장으로 9명이었던 팔로워가 95명까지 늘어났으며 응원하는 목소리들도 들려왔다. 참 신기한 일이었고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관심을 가지는 게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는데 그 소중한 게시물을 그냥 묻어버렸다.
집에 돌아와서 두 가지 생각이 올라와서 너무 괴로웠다.
첫째, 왜 근거 없는 이야기에 이렇게까지 흔들리는지
둘째, 갑자기 게시물이 사라지면 팔로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결국 그 밑바닥은 두려움과 불안이었다. 28년간 군생활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보안'의 촘촘한 그물망에 걸려서 옴짝달싹 못하고 '품위유지의 의무'라는 그물망에 걸려서 넘어지는 것을 너무 많이 보아서 나도 모르게 극도의 두려움이 밀려왔다. 등줄기에서 서늘한 기분이 느껴졌다. 두려웠다. 그건 내 안위에 문제가 생길까 두려움이 생긴 것이었다.
나의 메시지에 공감하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고 영상을 보아준 19만이라는 사람들에게서 스스로 모습을 감춘 것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겨우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인스타그램이 흔들릴까 봐 불안했다. 나의 미래를 위해 벽돌을 쌓아 올리고 있는 과정이고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상태인데 걸어보기도 전에 스스로 주저앉아버린 것 같아서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렇게 나는 돈키호테처럼 보이지도 않는 적들과 싸우느라 기운이 소진되었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있었다. 전투화 속에 나를 구겨 넣고 있었다.
어둠이 내려오자 섬광처럼 내 머리를 스쳐가는 빛이 있었다. 여기서 물러설 거면 처음부터 시작을 말았어야지 부상을 입으면 치료하면 될 것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스스로 몸을 숨기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보기 싫었다.
그래서 새로운 게시물을 올렸다. 나의 직업정체성이 군인인 것을 굳이 감추지 않고, 일어나지 않은 일 수군거림에 몸을 감추지 않을 것이며, 규율에 위배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평화로울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자기 확언을 쏟아부었지만 마음이 요동치는 소리가 들렸다. 긴장된 마음이 풀어지지 않았고, 심장은 계속 빠르게 뛰고 있었다. 밤잠을 설쳤고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명상앱을 켰다. 조용히 호흡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로운 날이 시작되었다는 것에 집중했다.
그리고 삶은 늘 오늘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어제도 내일도 오늘의 점일 뿐이다. 어떠한 조건과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온함으로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 그것이 살아있는 사람으로 사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