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눈을 감았다.

SSOM #4. 짧고 소소한 명상

by ssom

'화'가 났다.

'화'가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화'를 사라지게 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화'가 나를 불태우기 전에 얼른 껐다.

'화'의 불씨가 일어났을 때 얼른 꺼야 한다.

'화'의 불씨가 바람을 타고 내 온 마음의 숲에 불을 지르기 전에 얼른 꺼야 한다.

'화'가 일어나는 것이 보이면 눈을 감아야 한다.

그리고 숨을 깊게 들이쉬고 길게 내쉰다.

'화'라는 친구를 아주 오랜만에 만났다. 한동안 안보여서 사라졌다 생각했는데 아직 남아있었다니 반갑기고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그나마 화라는 친구가 스물스물 움직이는 것을 느끼고 바라보고 잠시 멈추게 하고 다시 올라오지 않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어떤 감정이 휘몰아치기 전에 꼭 눈을 감아야 한다.

우리의 감각 중에 유일하게 내가 자의식으로 콩제할 수 있는 것이 시각, 눈 이다.

눈은 내가 감아야지 하면 감을 수 있다. 다른 감각들은 내가 통제할 수가 없다. 소리를 듣기 싫다고 안들리지 않는다. 완벽한 이어폰이나 해드셋을 착용하면 안들을 수 있겠지만 어짜피 그 기계를 타고 다른 소리가 들려올 것이니까...


눈의 감각을 차단하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신기하게도 호흡이 깊어지고, 차분해 지고 호흡의 깊이를 따라 마음의 산란함도 가라앉는다. 마음이 차분해 지면 내 감정의 바닥을 볼 수 있다. 이 감정의 바닥은 결국 소유와 통제의 욕구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딱 한번만이라도 어떤 상황에서 '화'가 나는지 끝까지 따라가보면 알 수 있다. 결국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서 내가 의도한대로 상황이, 사람이, 조건이 맞아떨어지지 않아서 그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몸과 마음이 불편해지고 그 상태를 '화'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오늘은 '화'가 났다.

지금은 '화'가 가라앉았다.

내일은 '화'가 사라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