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와 전문가 사이
〈‘저 잘 못해요’라는 말에 담긴 두 가지 마음〉
수요일 밤마다 있는 상담공부모임에 참여했다.
내가 상담 관련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상담사라고 하기엔 자신이 없었던 때가 떠올랐다. 위기 청소년이나 학대행위자를 내담자로 만나며 참 막막했던 때이다.
상담을 어찌해야 할지, 나의 내담자를 어찌 바라봐야 할지 막막할 때 매주 참여해서 도움을 받았던 상담사례 모임이다. 이번이 100기 모임이라는 소식을 듣고, 1백이라는 숫자에 자리하고픈 마음에 오랜만에 참여한 거였다.
여러 해가 지나도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담 관련 교수님이 참 감사했다. 대면모임이 당연하던 시절 빽빽이 둘러앉은 수련생들 가운데에 앉아, 기꺼이 상담시연을 보여주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공부시간이지만 눈물을 흘리던 나와 여러 수련생이 있었다.
이번 모임은 비대면이더라도 시연을 보여주시며 아낌없이 피드백을 건네는 교수님을 보면 인간미와 더불어 참 오래도록 한길을 걸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한 기운이 느껴진다.
시연 시작하며 함께 할 수련생에게 말씀을 하셨다.
“저도 잘 못해요. 우리 같이 해봐요.”
겸손이라기보다 연대의 손짓으로 느껴졌다. 유명 대학의 교수님이라는 완벽함으로 권위를 세우고 거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인정하며 곁으로 다가오는, 경험 많은 전문가가 줄 수 있는 따뜻한 안전기반이었다.
초보와 전문가 사이,
그 사이에 할 발씩 다리를 걸치고 선 나
문득 같은 문장인데,
그 말을 다르게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말끝도 흐리고, 조심스러운 마음이 삐져나온다.
‘자신 없어요,
그리고 혹시 못해도 너무 실망하지 말아 주세요 ‘
사실 그런 의미가 숨어 있다. 나를 먼저 낮춰두어야 덜 불안해지는 아주 오래된 나의 방어기제의 흔적이다.
일하는 장면에서 초보와 전문가 사이, 그 어중간한 지점에 서 있는 나를 자주 마주한다. 어떤 순간엔 18년을 이 현장에서 보낸 사람으로 안정적이기도 하고, 누군가 앞에 서거나 내 의견을 제시해야 하는 순간엔 여전히 ‘잘 못할까 봐’ 흔들린다. 그래서 ’ 저 잘 모르지만~‘라는 말이 자동적으로 나온다.
내 입에서 나올 때와 그 교수님의 입에서 나올 때의 결이 다르다는 게 느껴지며 내가 뚜렷하게 보였다. 그분의 말에는 전문성과 경험에서 나오는 여유와 자신감… 그리고 초보상담자에 대한 배려가 있다. 반면 내 말에는 실수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더 깊게는 버려지기 싫은 마음이 있다.
이 글과 고백을 통해 생각해 본다.
이 둘 사이에 서 있는 나는 초심자의 신중함과 민감함
전문가의 통찰 사이에서 매일 조금씩 균형을 잡아갈 것이다. 성장의 과정이 될 것이다.
불안과 통찰이 동시에 존재하는 …
미숙함과 성장이 얽혀 있는 나
그 사이에 서 있다는 것 자체도 성장의 증거 아닐까?
물론 머물기보다 한 발짝씩 움직여도 보겠다.
“저, 아직 완벽하진 않아요.
그래도 할 수 있어요. 같이 해봐요.”
언젠가 내가 하는 이 말이 나에게도, 누군가에게도 새로운 안전기반이 되는 날이 오도록…
그 길 위에 서 있는 나를
또 이 글을 읽으며
각자의 삶 속에 위치할 당신을 응원해 본다.
“오늘도 나에게 다정할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