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안의 어느 날

작은 우주



주말 늦은 오후, 심심해하던 아이와 버스를 탔다.

아이는 창밖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엄마, 나 이 버스에서 제일 어리다.”

그 말에 나도 주위를 둘러보았다.


웅크린 채 생각에 잠긴 청년,

내릴 곳을 확인하며 짐을 챙기는 어르신,

끝없는 수다와 웃음의 학생들,

그리고 핸드폰 화면에 빠진 사람들.


모두가 한 버스 안에 있었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세계가 공존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누구는 미래를 걱정하고,

누구는 저녁 메뉴를 생각하고,

누구는 오늘을 그냥 견디고 있을 수도 있다.


지구와 여러 행성이 자전하되 충돌하지 않듯,

사람들의 마음도 저마다의 궤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 고요한 공존의 풍경이야말로,

보웬이 말한 분화(differentiation)의 한 장면 같았다.

(물론 감정이 얽힌 관계는 아니나, 같은 버스이니)

가까이 있으면서도 휘둘리지 않고,

서로의 존재를 느끼되 각자의 중심을 지키는 상태.


그런데 문득 생각했다.

만약 이 조용한 공간의 균형이 깨진다면 어떨까?

누군가가 갑자기 울거나,

큰 소리로 전화를 받거나,

버스가 급정거를 하는 순간이 되면

이 공간은 더 이상 각자의 궤도를 도는 우주가 아니다.


그때부터는 레빈의 장이론(Field Theory)처럼

한 사람의 감정이 다른 사람의 긴장을 건드리고,

작은 변화가 전체의 분위기를 뒤흔드는 ‘하나의 장(場)’이 될 것이다.

한숨, 시선, 웃음 등 언어가 아니더라도 감정 한 줄기가

그 장 안을 돌며 서로의 마음에 파장을 주고받는다.


그렇다면 어쩌면,

분화와 장은 순환일지도 모른다.

경계가 단단할 때 우리는 각자의 자전으로 평화를 지키고, 경계가 흔들릴 때 우리는 타인의 궤도를 느끼며

서로의 존재를 배워가기도 한다.


버스는 같은 길을 달리지만,

그 안의 사람들은 각자의 세계를 지닌 별들이다.


조용한 공존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의 장 안을 스치며

살아가고 있다.



건강한 관계란, 자신만의 세계를 품고 있으면서도

때로는 서로의 울림에 반응할 수 있는 유연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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