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오후
우산이 없던 나에게
누군가 투명우산 하나를 빌려 주었다.
투명우산이라서 좋았다
밖이 보여서
비 오는 하늘이
비 맞아 촉촉한 나무들이
가려지지 않아서
우산에 작은 구멍이 있었는데
그것도 좋았다
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빗방울을
촉촉하게 느낄 수 있어서
이상하게 그 빗방울이
위로처럼 느껴져서
우산을 내어 준 그 마음이 따뜻해서였을까
생각해 보면 우리는 종종
아무것도 느끼지 않기 위해
두꺼운 우산을 쓰고 살아간다.
아프지 않으려고, 젖지 않으려고,
차단하는 데 익숙해진다.
상담실에서도 비슷한 순간들이 있다.
높게 높게 방어벽을 세워둔 누군가
아무도 넘볼 수 없게,
아무것도 스며들지 않게.
그 벽은 상처를 막기 위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받을 수 있는 위로도 막아두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틈을 내는 순간
눈물이 나고,
원망도 해보고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는 경험들…
비 오는 오후,
투명우산 아래에서
다 막아내지 않아도 된다는 걸 다시 배웠다.
완벽하지 않은 보호에도
조금씩 새어 들어오는 빗물에도
여전히 안전했고
빗물이 느껴져도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