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60부터’ 그 말이 마음에 닿을 때

반짝이는 순간들


병원 다녀오는 길이었다.

비가 살짝 내려서 그런지

푸르른 나무들 사이로 풍겨오는 공기가

참 고요하고 운치 있는 날이었다.


그 길에 모자를 쓰고,

간단한 빵과 식자재를 담은 가방을

어깨에 멘 어르신이 걸어가고 있었다.


걸음은 느릿했지만 묘하게 단단하고 평화로웠다.

그 모습이 한 편의 짧은 영화처럼 마음에 남았다.


‘인생은 60부터’ 라는 말은

예전엔 그저 나이 든 사람들을 위한 위로처럼 들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 말이 얼마나 깊은 진심에서

나오는 말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요즘은 ‘노인’이라는 말보다 ‘시니어(Senior)’라는 호칭을 더 자주 쓰는 것 같다. ‘노령자씨’나 ‘어르신’이라는 말에서도 예전과는 다른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단순히 나이를 지칭하는 것을 넘어, 삶의 경험과 연륜을 지닌 존재로서의 존엄과 존중을 담은 좀 더 품격 있는 표현이다.


우리 사회도 점점 나이 듦을 축소나 퇴보가 아닌, 성숙과 통합의 시간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 이어진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노년의 삶을 단순히 ‘늙은 이’가 아닌

‘깊이를 지닌 존재’ 로 호칭하는 느낌이다.


요즘은 잘 살아내는 60대의 모습이 참 멋있고,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방송에 노출되는 잘 관리한 연예인을 보며 많은 시청자가 나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면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닌 거 같다.


주름도, 흰 머리도, 느린 걸음도

그 자체로 깊은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 오랜 시간을 살아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와 단단함, 그리고 품위가 있다.


어쩌면 진짜 ‘멋’은

젊음이 아닌 ‘깊음‘에서 나오는 것 아닐까.


양육자 상담을 하다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 조부모 양육자를 만난다.

집단상담프로그램에 참여한 분도 계셨다.

그들은 단지 손주를 돌보는 분들이 아니다.

자신의 인생 한복판에 또 다른 책임을 껴안고,

조용히, 하지만 더 넓고 뜨겁게 살아내는 분들이다.


또 학회 공개 사례모임에서 시니어 내담자들의

모래놀이상담도 함께 나눈 적이 있는데,

모래상자 안에서 펼쳐지는 그들의 내면 여정을

볼 때, 겸허함과 존경심이 들었다.


더 듣고 싶고, 더 귀하게 여겨졌다.


돌이켜보면, 20살까지는

좋든 싫든, 알든 모르든,

가족과 부모, 사회가

심어준 에너지와 방식으로 살아내는 시간이다.

어쩌면 스스로의 선택보다는

주어진 틀 안에서 반응하며 살아온 시기랄까?…


그게 순응적 에너지이든 반항의 에너지이든,

긍정이든 부정이든 말이다.


그리고 40살이 될 때쯤,

그동안의 좌충우돌 끝에 슬그머니 질문이 찾아온다.

‘이게 진짜 나일까?’하는 사십춘기.

진짜 나를 찾아가는 첫 번째 여정이 시작된다.

그렇게 또 10년, 20년을 내 방식으로 살아보며,

내가 나의 방향을 선택하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이 생각에 이론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 반론의 여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지금 이 순간의 깨달음을 절대적인 진리로 말하기 보다, 그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짧지만 깊게 다가온 개인적인 통찰이다.


하여간 그렇다면,

60세는 어떻게 살아질까?

내가 나를 정말 이해하게 된 그 시점

나만의 방법을 만들고 선택한 그 때


타인의 시선을 덜 신경 쓰게 되고,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고,

이제야 마음껏 나를 살아도 되는 시간 아닐까?


요즘 60대 어르신들은

글을 쓰고, 춤을 배우고, 새로운 친구를 만들며

‘처음’들을 다시 경험한다.

그 얼굴이 맑고, 또 단단하다.

삶을 살아낸 사람만이 가진 온도다.


(역시나 모든 어르신이 다 그렇다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제는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진심으로 다가온다.

그 말 속엔 아마 이런 뜻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부터 나로 살아도 늦지 않다.”


가끔은 ‘발달’이나 ‘성숙’이라는 말이 왠지 계속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압박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더 나아가야 하고,

더 잘해야 하고,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할 것만 같은…


하지만 나는 상담실에서, 또 내 삶에서 배운다.

삶은 반드시 성장의 모양만을 하고 있지 않다는 걸.

멈춤도 필요하고,

후퇴처럼 보이는 순간이 실은 재정비일 때도 많다.


‘성숙’은 거창한 완성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품을 수 있는 용기가 아닐까.


그 용기가 생길 때, 비로소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발달, 성장’이라는 길은

누군가를 앞서는 경쟁이 아니라

’내 삶을 나답게 살아내는 여정’이라고 믿는다.


40부터는 진짜 나를 찾아가는 시간이었다면,

60부터는 그 통찰을 삶에 녹여내는 시간.


나는 오늘도,

그분들의 단단하고 따뜻한 뒷모습에서 배운다.

그리고 내 삶에도

그 멋을 조금씩 덧입혀 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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