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객관화에 대하여
– 내 안의 나를 다시 만나는 것에 대한 이야기
“나는 왜 나를 잘 모르겠지?”
“내가 뭘 원하는지도,
왜 이렇게 힘든지도 잘 모르겠다.”
이런 말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상담실에서 꺼내는 문장이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분명히 자신의 감정이고, 내 인생인데 막상 그것을 ‘말’로 설명하려고 하면 어딘가에서 멈칫하게 된다. 생각은 많은데, 정리가 안 되고, 감정은 가득한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왜 나를 잘 모를까?”
이 질문은 꽤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고 있다.
친구의 고민은 잘 들어주고, 문제의 핵심도 곧잘 짚어주는데 정작 나 자신의 문제 앞에 서면 생각이 흐려지고, 판단이 어렵다.
분명히 내 감정인데,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고 지금 내가 왜 이토록 힘든지도 설명하기 어렵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나’는 너무 오래,
너무 가까이에서 함께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기 객관화’란 심리학 용어가 있다. 말 그대로, ‘나를 나 자신이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을 뜻한다. 말처럼 쉽지 않다. 문제라고 느끼지 못했던 많은 감정 패턴이나 생각의 틀이 있다.
지금 떠오르는 예를 들자면,
기혼자의 경우 결혼 이후 시댁이나 처가의 서로 다른 가족문화와 마주치는 경험이다.
명절에 집안일을 누구 중심으로 분담하느냐,
감정을 표현할 때 목소리를 높이는 건 괜찮은가,
식사할 때는 조용한가? 대화를 하는가?
각자 집마다의 문화는 생각보다 많은 점에서 다르다.
처음엔 “그 집은 왜 그래?” 하고 놀라지만 곧 깨닫게 된다. 사실 우리 집도 누군가에게는 이상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내가 자라온 방식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익숙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되고, 배우자와 조금씩 맞춰가게 된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밖’ 그러니까 나, 가족 외의 다른 가족을 경험해 봤을 때 가능한 통찰이다. ‘나’라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스스로에게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그 안에 있는 굳어진 생각과 감정들을‘문제’로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
자기 객관화란 바로 이 지점에서 막히는 것 같다. ‘나 자신’을 낯선 눈으로 바라보는 일은, 내 마음의 문화 안에 너무 깊이 들어와 있기에 그 벽을 안에서 스스로 보기 어려운 것이다.
상담심리학에서는 자기 이해의 어려움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몇 가지 이론을 찾아봤다.
1. 정신역동이론 – 무의식의 렌즈
정신역동이론에서는 지금의 행동과 감정이 과거의 경험, 특히 무의식적인 갈등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예를 들어, 어릴 때 감정을 표현할 때마다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란 사람은 성인이 된 후에도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억압하거나, 무가치하게 여기는 습관이 생길 수 있다. 그렇게 형성된 내면의 렌즈는 지금 내 앞에 있는 상황을 왜곡되게 보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사람은 모른다. 그게 왜곡인지, 혹은 자신에게 얼마나 무거운 짐이 되는지 말이다. 무의식은 ‘보이지 않는 영역’이기 때문에, 내가 왜 그런 반응을 했는지를 스스로 인식하기 어렵다. 그래서 상담은, 그 무의식의 흔적을 조심스레 탐색하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2. 인간중심이론 – 진짜 나를 회복하는 길
칼 로저스의 인간중심이론에서는 사람이 성장하고 변화하려면 무엇보다 조건 없는 수용이 필요하다고 본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줄 수 있는 관계 속에서 비로소 사람은 자기 모습을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상에서 우리는 조건적 사랑을 많이 경험한다. “네가 잘하니까 예쁘다”, “말 잘 들어야 사랑받는다”는 메시지 속에서 내 마음을 조심스럽게 감추고 살아오게 된다.
그러다 보니, ‘진짜 내가 뭘 원하는지’, ‘무엇을 느끼는지’조차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스스로 허용하지 못하게 된다. 상담은 그런 사람에게 “그대로도 괜찮다”는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
천천히 자신을 회복하게 돕는다.
3.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 삶의 해석 틀을 재구성하다
아들러는 인간의 행동을 ‘목표지향적’이라고 보았다. 즉, 지금의 행동은 어떤 목적(예: 인정받고 싶은 욕구)을 이루기 위한 방식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항상 모든 일을 완벽히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은 ‘실수하면 가치 없는 사람’이라는 삶의 신념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삶의 모든 상황을 바라보는 고정된 틀이 된다. 이 신념은 어린 시절 경험이나 가족 내 역할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경우가 많다.
아들러는 건강한 사람은 타인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봤다. 자기만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공감하고 연결되려는 마음이 인간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상담을 통해 ‘사회적 관심‘을 회복하고 자신의 ‘삶의 틀’을 자각하고, 그게 여전히 나에게 유효한지, 지금의 관계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함께 탐색하여 확장하는 과정을 거친다.
자기 객관화가 어렵거나, 멈추었을 때 이런 모습을 경험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괜찮아”라고 자주 말하지만, 막상 밤이면 이유 없이 눈물이 난다. 매번 같은 대인관계에서 상처받지만, 원인을 상대에게만 돌리게 된다. 사람들에게는 잘 조언하면서, 내 문제는 도무지 방향이 안 잡힌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가족 앞에서는 늘 밝지만, 혼자 있을 땐 공허하다.
이런 모습은 모두 자기 객관화가 어려운 상태에서 반복되는 정서적 패턴의 일부일 수 있다. 어쩌면 나의 삶을 더 진지하게 또 넓게 이해하고 싶어진 때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렌즈로 세상을 보고 있는지를 천천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신호이다. 혼자가 어렵다면 상담사와 함께 할 수 있다. 상담을 통해 내가 어떤 방식으로 감정을 억누르거나, 혹은 과하게 반응하는지를 따뜻하고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함께 살펴보는 것이다. 상담은 내 안의 이야기들을 꺼내고 그걸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그러나 따뜻하게 바라보는 경험을 선물한다.
“나도 그런 감정이 있었구나.”
“그때의 내가 참 외로웠겠구나.”
“그래서 지금 이렇게 반응하고 있었구나.”
이런 경험과 깨달음이 쌓이면 내가 왜 지금 힘든지,
왜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지,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가 조금씩 보일 것이다.
상담은, 내가 나를 다시 만나러 가는 길이다.
상담은 문제를 고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향한 이해를 확장하고,
감정을 통합하고,
스스로의 렌즈를 닦아보는 시간이다.
다음 주를 끝으로
‘나를 기록하며 당신을 이해합니다’ 완결하려 합니다.
처음이라 설렘과 미숙함이 공존했지만
읽어주시고 답글 남겨주셔서 글 쓰는 행복에서
공유의 기쁨을 경험하였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