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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작은 나만 남아 있을 때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 어떻게 나를 돌볼 수 있을까?


누구에게나 그런 날이 있다.

별일 아닌 말 한마디에도 마음이 푹 꺼지고 괜히 위축되는 날 말이다. 남들은 모르지만 하루가 무너질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만 빼고 다 잘 지내는 것 같아.”


그 누구도 아닌 내 속에서 들려온 말이다. 내 안의 작은 ‘나’가 한 말이었다.


이런 순간 어떠신가요?

+ 회의 시간에 용기 내어 말을 꺼냈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을 때

+ 연인에게 진심을 털어놨는데, “그런 걸로 왜 그래? “라는 반응이 돌아왔을 때

+ 아이에게 화를 내고 돌아섰다가, 문득 죄책감에 눈물이 날 것 같을 때

+ SNS에 올린 글에 ‘좋아요’ 하나 없는 걸 보고 괜히 내가 부끄러워질 때

+ 다들 웃고 있는 자리에서 혼자 그런 척만 하고 있을 때

+ 칭찬받는 동료를 보며, 나도 잘하고 싶은데 자꾸 작아지는 내 마음을 느낄 때


이렇기 생각하거나 느낄 수 있다.

“괜히 말했나…”

“다들 괜찮은데 나만 이상한가…”


내 마음이 작아졌다.

쪼그라들었다.

혼자 있는 것 같다.

“내 안에 작은 나만 남아 있는 것 같다.”


이 말엔 사실 아주 깊은 마음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작은 나는 누구일까?


대상관계이론에서는 우리가 자라며 겪은 주요 관계,

특히 부모와의 관계가 ‘내적 대상(internal object)’으로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고 말한다.


그 대상이 따뜻하고 안정적이면, 마음도 비교적 건강하게 성장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늘 불안하고 작아지는 ‘작은 나’가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이론이다. 생각해 보면 완벽한 부모도, 완벽한 환경도 없다. 그렇기에 누구나 마음속에 어린 시절의 ‘작은 나’를 품고 살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다만 “내 안에 작은 나만 남아 있다”는 느낌이 반복되고 나의 현재 삶이나 관계에 방해가 된다면 어릴 적 돌봄을 받고 싶던 나의 내면이 지금 반복되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아주 외롭고, 겁나고,

보호받고 싶은 상태라는 마음의 표현일 수 있다.


마음이 작아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움츠러드는 그때,
당신만 그런 게 아니다


무언가 큰 감정이 밀려오거나

누군가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 속이 뒤집히듯 아플 때,

혹은 혼자 남겨졌다고 느낄 때,

나는 종종 그 아이와 마주친다.


마음이 작아지는 건 누군가가 나를 콕 찌른 것도 있지만, 내 안의 작은 내가 스스로 움츠러드는 순간이기도 하다. 나도 모르게, 조용히, 깊게 그렇게 된다.


그런 나를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그럴 때 필요한 건 그 작은 나를 혼내거나 외면하는 일이 아니라, 조용히 안아주는 일이다.


“괜찮아, 지금 마음이 많이 작아졌구나.”

“그래, 네가 힘들었던 거 알아. 나 여기 있어.”


마음이 작아지는 그 순간, 내 안의 작은 내가 지금

돌봄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고 토닥여 본다.


독자분들도 그런 경험이 있거나

그런 순간이 온다면 이렇게 말해보도록 제안하고 싶다.


+ 그럴 수 있어.

나니까 이 상황에 더 민감하게 느껴진 거야

+ 내가 너무 별거 아닌 존재처럼 느껴져도,

그건 진짜 사실은 아니야

+ 지금은 작아졌지만, 이 마음도 지나갈 거야

+ 여전히 이 부분에 내 마음이 아프고,

보호받고 싶은 거구나


그리고 조금 더 용기를 내어

누군가와 이야기해 보는 것도 좋다.

지금 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

다그치지 않고, 그냥 들어주는 사람.


그게 친구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고,

상담자일 수도 있다.


반복되고 어렵다면

그 마음은 혼자 안고 있을 일이 아니라,

함께 나눌수록 가벼워지는 경험이 필요한 순간이다.


나는 상담경험을 권하고 싶다.

특히 누군가와 털어놔도 반복된다면 더욱더 권한다.

내 마음을 내가 알아차리기도 어려운데,

타인이 어찌 알겠는가?


때론 안전한 상담 공간에서 따뜻한 눈빛과 말을 건네줄 누군가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상담자는 그런 ‘작은 나’를 비난 없이 이해하고, 함께 있어주는 존재가 되어줄 수 있기 때문에 권한다.


실제 상담 중 내담자에게 자주 만난다.

어른 내담자가 갑자기 참기 힘든 감정을 이야기할 때,

그 안에는 종종 ‘그 시절의 아이’가 있다.


비합리적이지만 절실하고,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 존재하는 감정들.

우리는 그 아이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감정은 과거의 기억을 현재로 되살린다.

그 기억은 때로는 부끄럽고, 작고, 보잘것없다고 여겨지지만, 그 감정을 느꼈던 ‘나’는 그 자리에 존재하며 그렇게 다시 연결된다.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면, 지금 느끼는 것들을 현재 다시 경험하고 마음챙김을 하여 다시 느낌으로써 또 다른 내가 나 마음에 통합될 수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

그 연결이 회복이고,

그 회복이 곧 진짜 나로 살아가는 시작이다.


작아진 마음을 들여다보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회복을 시작하는 다정한 힘이다.

상처는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치유를 시작하는 것 같다.




이번 주에 브런치북 완결하려 하는데,

아쉬움에서 말이 더 길어지네요.

잘 읽히셨을지 모르겠어요.

오늘도 나의 다정함이

당신의 마음에 닿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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