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나와 마주하기(자기 수용)
이 제목으로 목차를 써두고, 발행을 망설였다. 내 안의 화나는 감정들이 부끄럽거나, 분노를 쏟아 내는 이들에 대한 별다른 관점 때문은 아니다. 이 글을 읽게 될 누군가의 마음을 더 많이 생각하며 쓰다 보니 그런 거 같다. 그만큼 내 안에도 많고, 주변에 많이 경험하는 타인의 모습이다.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다거나 분노폭발한 경험이 없다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그것이 건강한 삶의 기준이라고 동의하는 사람은 없을 듯 하다. 분노를 느끼고 화를 내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수시로 화가 치밀고, 나조차 놀랄 만큼 분노가 폭발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 쉽게 격하지는 누군가, 혹은 당신에 대해 생각해 본다.
‘화’와 ’분노‘는 일상 언어에서는 비슷하게 쓰이지만, 심리학적으로는 강도와 지속성, 표현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 대체로 화는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수용하는데 분노는 누적된 감정의 결과로 이해한다. 그래서 제목에 ‘분노’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화를 내고 나면 더 외로워지고, 감정이 북받쳐 올라온 날에는 스스로도 왜 그랬는지 몰라 당황스러웠던 사람. 무례하고 거칠게 보일까 봐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세상과 거리를 두며 살아가는 사람. 혹시 그런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더 고립감을 느끼게 되진 않을까, 그게 가장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 화를 내지 말라
+ 감정을 조절하라
+ 차분하게 이야기하라
하지만 감정은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다. 분노라는 감정 뒤에는 의미 있는 말이 되지 못한 슬픔, 오래된 억울함, 마음 깊은 외로움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지금까지 ‘분노’를 다스리는 방법만 배워왔지,
그 감정 속에 담긴 진짜 내 마음의 목소리를 듣고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보지 못한 건지도 모른다.
화를 낸 뒤에 관계가 어색해질까 봐,
다음날 괜히 눈치를 보게 되고,
‘또 내가 문제였던 걸까’ 하는 생각이 맴돈다.
누군가 앞에서 감정을 드러냈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부끄럽고, 외롭게 느껴지는 순간들.
그게 바로 분노 이후에 찾아오는 진짜 어려움이다.
감정은 표현했지만, 이해받지 못했을 때
사람은 더 큰 고립감을 느낀다.
“너는 왜 그렇게 예민해?”
“왜 그렇게 큰일도 아닌 걸로 화를 내?”
그 말들은 분노를 자극하는 게 아니라,
존재를 부정당하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점점 더 혼자가 된다.
말을 아끼고, 마음을 접고,
화가 날 법한 상황에서도 그냥 넘긴다.
하지만 그런 날이 길어질수록
당신 안에는 억울함과 슬픔이 켜켜이 쌓여간다.
그리고 언젠가,
그 억눌린 감정이 또 한 번
예상하지 못한 장면에서 터져버릴 때,
당신은 또 자책하게 된다.
주변에서 나를 피하는 것도 느낀다.
종종 자기 비난을 덧붙인다.
“나는 왜 이렇게 감정 조절이 안 될까”,
“이제 다 큰 어른인데 왜 아직도 이렇게 욱할까”,
“이래서 나는 사람들과 오래 관계를 유지하기 힘든가 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나는 상담 장면에서, 또 삶에서 분노가 많은 사람일수록 사실은 감정이 풍부하고 상처에 민감한 사람이라는 걸 자주 느낀다. 화를 내기까지 얼마나 오래 참고 있었는지, 그 감정을 꾹꾹 눌러가며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를 우리는 잘 모른 채, 그저 ‘결과로 나타난 분노’만을 보고 쉽게 판단하곤 한다.
분노는 종종,
“나 지금 너무 속상해요”
“이건 나한테 정말 중요한 거예요”
“왜 아무도 내 마음을 안 봐줘요?”
라는 말이 되지 못한 감정의 다른 얼굴이다.
이 글은 분노를 터뜨리는 행동을 옹호하려는 것도, 그저 달래기 위한 말도 아니다. 다만 나는, 당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고 해 두고픈 말이다.
분노는 이유 없이 찾아오는 감정이 아니다. 어린 시절이든, 어떤 결정적인 계기에서든 감당하기 벅찬 순간이 당신에게 찾아왔고, 그때부터 마음속 감정들이 폭발하는 길을 걷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누구도 처음부터 분노를 선택하지는 않는다.
분노는 나를 지키기 위해 등장한 감정이었고,
나를 알아달라는 마지막 신호였을 것이다.
언제까지 타인의 이해와 수용만을 기다리며 감정의 격류에 휩쓸린 채 나를 방치할 것인가? 나의 진심이 닿지 않는다고, 또다시 똑같은 방식으로 나를 밀어붙일 것인가?
분노와 함께 사는 내 모습이 어떤가 진심으로 묻고 싶다. 이렇게 질문받고 인식해도 그것이 쉽게 멈춰지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 분노가, 나의 태도가 그동안 무언가를 지켜주고 보호하는 어떤 요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찾기 위해 교육, 상담, 독서 모두 필요하다. 무엇보다 그 마음, 이제는 나 자신이 가장 먼저 알아줘야 할 때다. 분노를 없애야 한다고 다그치기보다, 그 분노 속에 숨겨진 외로움과 두려움, 이해받지 못했던 나를 조금씩 따뜻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감정은 억누른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이해받지 못한 채 남겨질 뿐이다. 그러니 감정을 다스리는 법이 아니라, 그 감정과 나란히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 하루 동안 당신을 괴롭혔던 말들, 꾹 눌러 담았던 억울함, 누군가에겐 사소했지만 당신에겐 깊었던 상처들 말이다.
그 감정들이 분노나 화가 되기 전에, 더 작을 때
조금 더 자주 들여다보자.
“지금 좀 서운해.”
“그 말, 나한테는 아팠어.”
이렇게 조심스럽게라도 말해보는 연습!
그것이 곧 ‘잘 살아가는 법’ 일 것이다. 감정은 잘못이 아니다. 화가 나고, 서운하고, 슬픈 그 마음 자체는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것 알 것이다.
다만 그 감정을 대하는
‘우리의 방법’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을 뿐이다.
어떻게 반응할지,
어떻게 말로 꺼내볼지,
어떻게 나를 지켜낼지를
조금씩 배워가는 과정이 중요할 뿐이다.
이 글이,
누군가의 뜨거운 마음에
작은 숨구멍 하나가 되어주길 바라며,
오늘도 당신에게 다정하세요.
-다정한 상담쌤-